지난 3월 15일 유엔 총회를 통해 신설된 유엔인권이사회의 초대 이사국 선거가 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다. 총 47개 이사국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 한국을 포함해 64개 국이 출마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예정인 가운데 국내 14개 인권사회단체가 한국 정부를 향해 따끔한 충고를 했다.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 등 14개 인권사회단체들은 8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인권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인 이사국 선거 출마를 국내외 인권 상황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9일 유엔인권이사회 초대 이사국 선출
기존의 유엔인권위원회는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점령 등 서구 강대국들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특정 국가에 대해서만 결의안을 채택해 '인권을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설될 유엔인권이사회는 △지위가 유엔총회의 직속 기구로 격상되고 △모든 유엔 회원국들의 인권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보편적 정례검토제도(Universal Periodic Review)를 운영하며 △이사국 선출 및 퇴출 제도를 마련했고 △연중 최소 3회 10주 이상 개최하도록 하는 등 기존의 유엔인권위원회보다 한 단계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인권사회단체들은 "유엔인권이사회가 전 세계의 인권증진과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논의와 협력의 장이 될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며 "초대 이사국 선거가 이사회의 초기운영의 성패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9일 열릴 이사국 선출에서 아시아에 배정된 이사국 수는 13개 국이다. 현재 한국, 일본, 중국 등 18개 국이 입후보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후보국들은 유엔 전체 회원국 191개 국의 절대과반수인 96표의 찬성을 얻어야 이사국에 선출된다.
한국 정부는 이사국 입후보를 결정한 후 지난달 19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제안에 기초해 국내외의 인권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자발적 공약을 발표했다.
발표된 공약에서 한국 정부는 우선 국내 인권상황 개선과 관련, △여성차별철폐협약 선택의정서 가입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 가입 검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조약 일부 2008년까지 비준 △인권교육 강화 등을 약속했다.
또 국제사회 인권 증진을 위해 한국 정부는 △국제인권조약 감시기구 개혁 논의에 지속적 기여 △국제인권조약 미가입국들의 주요 조약 가입 독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역 인권기구 설립 논의에 적극적 참여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가보안법·이주노동자·평택·FTA…한국은 이사국 자격 있나?"
그러나 인권사회단체들은 한국 정부의 이같은 공약이 그 내용과 작성 과정을 볼 때 "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인권증진을 위해 수행해야 할 막중한 책임과 역할에 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우선 공약의 작성 과정에서 정부가 시민사회와 어떤 논의도 시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실제 주무부처 간 논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또 공약이 영문으로만 작성돼 있어 정부의 인권정책과 이사국 선거 입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접근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도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또 내용에서 보더라도 이들 단체들은 "이주노동자협약 등 한국정부가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는 주요 인권조약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헌법상 기본권인 결사의 자유에 관한 자유권규약 조항의 유보 철회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의 자질 평가에 있어 무엇보다 기본적인 국내외 인권상황 개선에 대한 정부의 의지면에서도 한국 정부가 이사국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인권 문제들에 대한 정부의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들 단체들은 △여전한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과 남용 △점점 늘어가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단속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책 외면 등을 꼽았다.
또 이들은 지난 4일 평택 미군기지에서 벌어진 경찰과 군 병력의 폭력적 시위진압도 비판했다. 정부가 무리하게 주한미군의 기지 이전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평택 주민들의 거주권과 발전권이 침해를 받았을 뿐 아니라 500여 명을 연행하는 무리한 진압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그 대비책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어 국민들의 건강권ㆍ교육권ㆍ노동권ㆍ식량권 등 많은 인권침해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고 이들 단체들은 경고했다.
이들은 "국내외 인권상황의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국가들이 이사국으로 선출된다면 이는 앞으로 유엔인권이사회의 활동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올 수 있다"며 "정부는 이번 유엔인권이사회 선거 출마를 국내외 인권상황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주 스위스 제네바에 자리잡은 비정부기구(NGO)인 유엔 워치는 후보국들의 인권 상황 등을 종합 검토한 보고서를 통해 영국 등 29개 국이 적격이라고 평가하고 한국은 인권 문제국가들에 대한 유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는 '조건부 지지' 국가로 분류했다.
국네앰네스티도 지난달 1일 후보국들의 국내 인권 상황을 평가한 자료를 발표하고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넓은 차별과 열악한 노동조건, 낮은 급여 등의 처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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