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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문학으로!"…청소년 문예지 창간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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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청소년을 문학으로!"…청소년 문예지 창간 붐

청소년 문화에 자양분 공급하는 계기 될까?

  요즘은 아무도 시나 소설을 읽지 않는다. '문학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이미 식상한 표현이 됐다. 젊은이들도 문학에 관심이 없다. 문화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영화에 몰두한다. '문청(문학청년)'이라는 표현은 이제 먼지 쌓인 책장을 뒤져야만 찾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20대 작가를 찾기 힘들다. 최근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작가들의 나이는 대부분 30대다.
  
  20대 젊은이들의 사정이 이럴진대 10대 청소년들은 오죽할까 싶다. 요즘 청소년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인터넷을 사용하며 생활한다.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는 홈페이지 게시판, 휴대폰 문자, 메신저 대화 등이 장악하고 있다. 이런 공간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전통적인 문학의 언어와 크게 다르다. 10대 청소년과 20대 젊은이들에게 문학은 너무 낯설다.
  
  청소년들이 편안하게 글 쓸 수 있는 공간을 열겠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 문학의 부흥을 외치는 이들이 나타났다. 1960~70년대에 〈학원(學園)〉이 했던 역할을 2000년대에 다시 이어받겠다는 것이다. 〈학원〉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의 창작을 향한 열정을 담아내는 매체였다. 최인호, 전상국 등의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중고등학교 시절 〈학원〉에 작품을 기고하며 문학적 역량을 키웠다.
  
  문학동네는 오는 6월 창간을 목표로 청소년 문학 계간지〈풋〉의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3~18세의 청소년들과 문학을 매개로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풋〉의 편집위원은 소설가 류소영과 시인 이병률, 시나리오 작가 김현진으로 짜여져 있다.
  
  〈풋〉은 문학계간지다. 그러나 반드시 문학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문학을 중심에 놓고 청소년 문화 전반을 다룰 계획이다. 소설가와 시인 외에 시나리오 작가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데서 이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풋〉은 문학평론가와 작가들에 의해 엄선된 작품을 싣는 것을 통해 신인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 온 전통적인 유형의 문학계간지와도 다르다. 치열한 문학적 수련을 거치며 다듬어진 글이 아닌 청소년들이 편안하게 쓴 글을 싣겠다는 것이다.
  
  "영상문화가 팽창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들이 더 늘어났다.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것 같다." 김현진 편집위원의 말이다. 그는 요즘 청소년들이 글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글을 쓴다는 것이다. 단지 전통적인 매체가 아닌 온라인 공간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글을 쓸 따름이다.
  
  문제는 온라인 공간에 글을 쓰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위가 제대로 된 의미의 글쓰기가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글쓰기를 더욱 부담스러워 하게 만든다.
  
  "청소년들이 전통적인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 한다. 그런 글은 자신들이 쓸 수 없다고 여긴다. 그 대신 블로그에는 편안하게 글을 쓴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대부분 남과 소통할 수 없는 글이다. 블로그에 실린 글처럼 편안한 형식으로 쓰되, 남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청소년들을 위한 글쓰기 공간을 열어 주고 싶다."
  
  김현진 편집위원은 이렇게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진지한 고민을 담아내는 매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청소년기
  
  그런데 문학동네가 청소년 문학을 다루는 매체를 내기로 한 것은 사실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나 둘 선보이기 시작한 청소년 문예지는 올해 들어 모두 9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지역의 문인과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것이다. 경남 지역의 교사와 문인들이 창간한 〈통통〉, 경기 지역의 문인들이 만든 〈문학我〉등이 그것이다.
  
  이들 매체들이 지향하는 바 역시 대부분 비슷하다. 청소년들이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문학我〉의 경우 창간호에서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문인들의 편지를 실었다.
  
  이처럼 청소년 문학을 다루는 매체가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 시기는 동화를 읽기에도 또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읽기에도 모두 부적합한 시기다. 일종의 문학적 사각지대인 셈이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적절한 읽을거리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청소년을 위한 읽을거리뿐 아니라 청소년기의 섬세한 감수성을 제대로 녹여낸 작품도 흔치 않다. 청소년기의 경험으로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성인이 된 뒤에 과거를 반추하면서 쓴 것이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현재 겪고 있는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최근 이같은 인식에 공감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이같은 공감대가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을 낳았다고 본다."
  
  〈풋〉의 류소영 편집위원이 내놓은 해석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옛 문화예술진흥원) 역시 이런 인식에 공감한다. 문예위는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청소년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을 2006년도 문예진흥기금사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리고 이 사업에 1억867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문예위 관계자는 "시ㆍ도 교육기관 등에 청소년 문예지 홍보ㆍ구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진학 위한 글쓰기와 구별지어야
  
  한편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데 대해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푸른작가〉 박일환 편집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요즘 많은 대학들이 문학특기자 선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문예 백일장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청소년들을 특기자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제도는 문학에 재능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입시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단지 대학 입학만을 겨냥하여 글을 쓰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거의 글을 쓰지 않는다. 문학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의 진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생겨나는 매체들이 청소년들이 문학특기자 전형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으려면 보다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각종 백일장이나 청소년 문학상에 응모하는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엽서시〉(www.ilovecontest.com/munhak)와 같은 사이트에는 " 대학 백일장은 (수장작을 고를 때) 서정성을 주로 보나요? 창의성을 주로 보나요?"와 같은 글이 종종 올라온다. 이처럼 입상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쓸 경우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문체를 개발하기 힘들어진다. 진솔한 고민과 체험이 녹아 있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과거 각 언론사의 신춘문예가 권위를 갖고 있던 시절, 작가 지망생들이 신춘문예 수상에 걸맞은 유형의 글쓰기를 연습한 경우가 많았던 것과 닮았다.
  
  이처럼 대학입학을 위한 수단으로 글쓰기를 익힌 청소년들이 대학에 진학한 뒤에 문학에서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서는 청소년 문학관련 매체를 만드는 이들이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 입학과 같은 특정한 목표를 염두에 둔 글쓰기가 아닌 청소년들의 솔직한 고민을 담아내는 글쓰기를 연습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년 문학이 가진 풍부한 가능성을 충분히 끌어내야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청소년 문학이 갖는 가능성을 너무 협소하게 받아들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청소년 논술전문지 〈논〉의 편집인인 이윤호 씨의 말을 들어보자. "어차피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청소년 문학상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을 모두 입시문제와 관련짓는 것은 위험하다.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은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교육을 받는 시기로 규정돼 온 청소년기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윤호 편집인은 우리 시대의 화두가 하드웨어의 문제에서 감성과 상상력의 문제로 넘어가면서, 문학이 갖는 교육적 의미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문학을 통해 얻는 추체험(다른 사람의 체험을 마치 자신이 체험한 것처럼 느끼는 일)이 개인의 성장에 있어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은 이런 공감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즘 청소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이들이 '나는 이미 책을 읽고 있는데, 어른들이 또 책을 읽으라고 한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주로 보는 책은 책다운 책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윤호 편집인은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지나치게 계몽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이 현실과 마찰하는 과정을 겪으며 청소년들은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 이같은 성장 과정에서 겪는 진통을 진솔한 글로 담아내면, 그것이 청소년 문학의 훌륭한 성과가 된다.
  
  문화적 황무지를 기름지게 할 소중한 거름이 되길
  
  이런 시각을 받아들이면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판타지 문학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접하기 어려웠던 게 못내 아쉬워진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시리즈를 단지 가벼운 읽을거리 이상의 텍스트로 대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도, 이들 작품이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과 어떤 매개고리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규명하지는 못 했던 것이다.
  
  청소년들이 판타지 문학 작품을 진지하게 읽고 있을 때 필요한 작업은 이들 작품의 어떤 측면이 청소년들이 깊은 공감을 끌어낸 것인지를 살피고, 그것이 현실과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통해 어른들의 문학과도 다르고, 어린이 문학과도 다른 청소년 문학이 설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청소년 시기를 둘러싸고 진행된 논의는 주로 입시경쟁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아무리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는 사람도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청소년 시기를 문화적 황무지로 방치해 왔다.
  
  대학입시에서 논술고사가 도입되면서,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교양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매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풀로엮은집에서 올해 창간한 청소년논술전문지〈논〉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매체는 비록 대학입시의 논술고사 때문에 생겨난 수요를 겨냥한 것이지만 단순한 수험서가 아니다. 상당한 수준의 인문학적 깊이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청소년 문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매체들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흐름이 황무지와 다름 없이 방치되어온 청소년 문화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거름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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