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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것들의 공허함, 혹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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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것들의 공허함, 혹은 진실

[건축가 황두진의 영화기행] 어바웃 슈미트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여러 번 볼 필요가 있는 영화다. 그 감동은 보는 사람의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마도 한창 나이의 젊은이라면 이 영화가 그리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오히려 같은 잭 니콜슨 주연의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혹은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심지어 <성질 죽이기>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이들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나이는 먹었지만 근사한 여자들과 연애를 즐기는 등, 그런대로 인생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 이후의 삶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보험회사의 중역으로서 네브라스카 오마하 교외의 근사한 저택에 사는 그를 딱히 인생의 실패자라고 할 수는 없다. 42년간 함께 산 아내가 있고, 집을 떠나 멀리 사는 외동딸 또한 똑똑하고 깜찍스럽다. 누가 봐도 성공한, 그리고 행복한 미국 중산층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외형 속에 감춰져 있는 그의 삶은 고통스럽다. 그것은 그의 삶이 전적으로 상투적인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바웃 슈미트 ⓒ프레시안무비
보험회사 중역이라지만 정확한 명칭은 부사장 서리(acting vice-president).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는 미국 회사들의 직위를 감안할 때, 은퇴할 나이의 직책으로서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 증거로 은퇴 직후 그의 자리는 자식 뻘의 아주 젊은 사람으로 즉시 대치되며, 그의 자존심은 다소 상처를 입는다. 먹고 사는 걱정은 없다지만 한 때 포춘(Fortune)지에 자기 얼굴 사진이 나올 것을 상상했던 사람으로서는 그다지 기대를 충족하는 삶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그의 삶은 이제 은퇴식을 전후로 하여 본격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직장 동료들은 그에게 화려한 축사를 건네지만 내용이 하나도 없는 공허한 문구들의 나열일 뿐이다. 혼자 자리를 빠져나와 바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 이제부터 그가 겪을 고독의 나날들이 투영된다. 우선 그의 아내가 갑자기 죽는다. 그냥 함께 사는 늙은 여자 이상의 의미가 없던 아내이기는 해도, 아내의 죽음은 그를 절대적인 고독의 세계로 내몬다. 장례식은 장의업체에게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에 불과하며 '잠시 떠난 것일 뿐' 등의 문구로 점철된 상업용 카드의 조의문들 또한 지독히 상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아끼는 딸은 그의 마음에 정말 들지 않는 물침대 세일즈맨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편지들은 아내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와 한 때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인간적이며 너무도 예의 바른 사람 슈미트. 그래서 항상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세상은 마냥 잔인하기만 하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삶의 발견은 두 가지 경로로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가 자선단체를 통해 아프리카에 있는 엔두구(Ndugu)라는 소년의 수양 아버지가 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위니바고(Winnebago)라고 불리우는 모터 홈이다. 그는 엔두구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쓰면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삶의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평생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 온 사람답게 결코 솔직한 진실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슈미트에게는 아직도 슈미트의 환상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세상은 아직도 자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어바웃 슈미트 ⓒ프레시안무비
이 영화에서 모터 홈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우선 이것은 매우 미국적인 소재다. 다른 나라에도 모터 홈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에서처럼 그 존재가 그 나라의 역사 및 지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 이들에게 집이란 잠시 정차 중인 자동차와도 같다. 혹은 '움직이는 생활환경'(dynamic living environment)'인 자동차야말로 궁극의 집은 아닐까. 언제고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고, 움직임 그 자체를 즐기는 미국적 유목민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모터 홈이다. '미국인들은 이동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라고 했던 것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었던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큰 이 모터 홈을 몰고서 슈미트는 자기가 태어난 마을, 자기가 다니던 학교, 그리고 지역의 박물관 등을 방문한다. 마치 집을 지고 움직이는 집게처럼 뒤뚱거리면서. 그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바로 딸의 결혼식. 그나마 자기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그 딸마저 뒤죽박죽 집안의 부실한 녀석과 결혼시켜야 하는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슈미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이 어려운 역할을 눈부시게 해낸다. 자신을 극도로 억제하며 신부 아버지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태도와 언변으로 하객들을 대한다. 일본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는 '혼네(本音)'에 대한 '다테마에(建前)'의 완벽한 통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야말로 그의 본성 가장 깊은 곳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이제 습관은 제2의 천성이 되고 말았다. 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온 슈미트. 어느 날 그에게 날아온 아프리카로부터의 편지에는 엔두구가 그린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사람. 하나는 어른이고 하나는 어린이다. 그 그림을 보며 혹은 울고, 혹은 웃는 슈미트의 모습을 엔딩 신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 장면에서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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