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환 민주당 사무총장이 4억 원의 공천헌금 수수 의혹을 받고 경찰에 체포된 사건은 전국이 '돈공천 몸살'을 앓고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였다.
한나라당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 사건에 이어 민주당 조재환 사무총장의 '사과상자' 사건이 터지면서 정치권에서 "다음은 누구냐"는 경계심이 먼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특히 각 당의 지지율이 높은 지역에선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등식에 따라 각종 불법, 편법을 동원한 은밀한 돈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40여 일 남은 지방선거일까지는 지속적인 공천 비리 적발 사태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조재환 사건, 호남에선 예견된 일**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21일 조재환 사무총장의 공천헌금 수수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 죽이기의 일환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반발했으나,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광주전남의 지역정가에서 나온 그간의 뒷말에 비춰보면 이번 사태 역시 "예견된 일"이었다.
호남 지역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조 총장이 전북 김제 출마자에게 4억 원을 공천 대가로 받았다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전남광주 지역 출마자들에게서는 얼마를 받았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가뜩이나 광주전남에서 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을 받으려면 1억~10억 원, 광역의원 공천에는 3억 원을 내야 한다는 설까지 퍼져 있던 터였다. 그간 당이 자체적으로 입수한 제보를 토대로 공천 헌금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인 지역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번에 조 총장이 '특별당비'를 받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소한 불법적인 돈 공천으로 인한 파장만큼은 줄여보자는 속내다. 그러나 특별당비나 후원금제도 역시 합법으로 가장만 했을 뿐이지 돈을 통한 공천이라는 점에선 공천헌금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전남북 지역 정가에선 액수의 제한이 없고 돈을 낸 사람의 인적사항도 공개할 의무가 없는 특별당비나 후원금제도를 당이 악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는 민주당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열린우리당 경기도당에서도 광역 및 기초의원 비례대표 후보등록 신청자에게 선거경비부담금 명목으로 최고 1억4500만 원의 특별당비를 선납토록 요구해 논란이 된 것도 비슷한 경우다.
이에 대해 공천을 받지 못하면 돈을 즉시 되돌려주고, 공천을 받은 사람도 선거 이후 비용을 100% 환급받게 되기 때문에 '공천 장사'와는 거리가 멀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공천신청 단계부터 돈으로 인한 진입장벽을 치고 있다는 비판 만큼은 피해 갈 길이 없다.
***한나라는 전국이 '지뢰밭'**
허태열 사무총장이 공천비리와 관련한 자체감찰을 중단하긴 했으나 한나라당은 호남권을 제외한 전국이 '지뢰밭'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당 지지율이 높아 한나라당 간판만 딸 수 있으면 당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과 영남권에서 공천을 둘러싼 돈거래 잡음이 많이 나오고 있다.
최근 파문을 던진 서울 서초구 김덕룡 의원, 중구 박성범 의원의 공천 헌금 사태는 수도권 공천 헌금 사건의 일각일 뿐이다. 경기도 용인이 지역구인 한선교 의원이 용인시장 예비후보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인천지검 공안부는 인천 중ㆍ동ㆍ옹진군 당원협의회 위원장인 한나라당 서 모 전 국회의원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인천지검은 서 전 의원의 승용차에서 미화 5226달러와 엔화 4만2000엔, 사무실에서 현금 300만 원 등을 압수해 공천과 관련이 있는지를 수사 중이다.
이 외에도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한나라당 서울시의원 공천을 신청한 Y씨는 공천을 받기 위해 당원협의회장인 J씨에게 전달하느라 6000만 원을 J씨의 기업체 직원 은행계좌에 입금했다가 공천에서 탈락하자 다시 돌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에서는 곽성문 의원이 공천 신청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경남에서는 오근섭 양산시장이 공천심사위원들에게 서화를 전달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남 고성에서는 공천 신청 시 금품을 건넨 J씨와 경쟁자인 또 다른 J씨, 연락사무소 사무장 B씨, 지역 국회의원 K씨 등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되는 일도 발생했다.
***우리당 "우리는 깨끗하다"?**
열린우리당은 당 지지율이 낮은 사실을 거론하며 "공천희망자 쏠림이 없어 공천 비리가 발생할 수가 없다"고 피해 가고 있으나, 지지율이 높은 전북 지역이나 수도권 일부에선 상황이 다르다는 말이 많다.
전북지역 정가에선 2~3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했으나 전략공천 방침이 정해진 지역을 중심으로 '돈 공천설'이 떠돈다. 경기도 이천 시장 경선에 나섰던 모 씨는 지역당원협의회 간부 2명에게 550만 원을 건넨 것이 선관위에 적발돼 검찰에 고발됐다.
정동영 의장이 한나라당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비리 사실이 드러난 뒤 "이럴 때일수록 우리당 의원들은 실수하지 말고 당을 위해 힘을 보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유사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경계한 대목이다.
한편 우리당은 조재환 총장 사태에 대한 입장 표명을 미룬 채 사태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우리당 관계자는 "한나라당 뒤에 민주당 건이 터졌는데 수사당국의 칼끝이 다음에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다"고 '형평성' 문제를 떠올리며 "그러나 우리당에선 과열 경쟁으로 인한 일부 잡음은 있을지 몰라도 돈 공천은 제보 받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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