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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용 민족주의'가 '패러다임 전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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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용 민족주의'가 '패러다임 전환'인가

[기자의 눈]강금실 '포퓰리즘'은 한나라당과 무엇이 다른가?

"영토주권의 문제, 민족자존의 문제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민족이 최우선입니다. 민족 앞에 여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지극히 반민족적인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며 허구에 가득 찬 일제 식민사관에 다시 한번 심한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19일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강금실 전 장관이 한나라당의 청와대 회동 불참을 비판하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한 토막이다. 그는 "긴급히 만든 자리에 제1야당 대표들이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금실 전 장관의 비분강개의 근저에는 '선거용 민족주의'가 농밀하게 녹아 있어 대단히 유감스러웠다. '일본' '독도' '민족주의' 등 대중적 인화력이 높은 키워드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국내정치화시킨 그에게서 이제 '정치 신인'이라는 꼬리표는 떼도 될 듯싶다.

***박근혜-이명박에게 날아간 두 개의 화살**

"마흔여섯 돌을 맞는 사월혁명, 그리고 독도"라는 글의 제목이 시사하듯 강 전 장관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감상적 자극을 통해 한나라당에게 반민주-반민족 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정확하게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민주개혁세력'을 자칭하는 여권의 통상적인 '역색깔론'을 그대로 답습한 꼴이다.

우선 그는 "4.19는 전사회적인 혁명으로서 이 땅에 민주주의의 맹아를 틔운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한 뒤, 4.19를 최근 일본의 EEZ 침범 문제와 연관시키기 위해 '6.3 항쟁'을 징검다리로 활용했다.

강 전 장관은 "4월 혁명은 한일 굴욕회담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시작된 6.3 항쟁으로 이어졌다"면서 "6.3 항쟁으로부터 42년이 지난 오늘, 일본 정부가 독도 인근 우리 측 배타적 경계수역(EEZ) 안으로 해상보안청 소속의 탐사선을 진입시킬 거라고 예고하고 있어 당시에 못지않은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고 했다.

6.3 항쟁은 단순히 글의 역사적, 논리적 연결을 위해 끄집어낸 것이었을까? 1964년 6.3 항쟁이 박정희 정권 시절 발생한 대표적인 대규모 반정부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화살은 역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진대제 경기도지사 후보 측이 똑같은 논지의 논평에서 "4.19 정신은 한일 굴욕회담에 대한 반대투쟁인 6.3항쟁으로 이어져 일본에 대한 우리의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 한나라당이 (청와대 만찬 불참에) 이런 저런 구실을 대고 있지만 당의 뿌리가 박정희 전대통령과 연관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일본 육사를 졸업한 박전대통령은 친일파로 비판받고 있으며 4.19 정신을 군화발로 짓밟았던 분이다. 박 대표는 박전대통령의 큰 딸이다"라고 적나라하게 적시한 것에서 확연해진다.

또 하나의 화살은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날아갔다. 강 전 장관은 "제가 수도 서울의 시민대표가 되면 다보스 포럼을 비롯해 세계 지도자들이 모이는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해 20세기의 파시즘, 나찌즘의 과오에 대해 어떻게 반성하고 미래로 가는 공동체를 어떻게 건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명박 시장이 다보스 포럼에서 "일부 아시아 정치지도자들이 과거역사에 얽매여 국가간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던 사건을 상기시키려는 노림수가 담겨 있음이 자명했다.

***정치화된 민족주의, 포퓰리즘의 덫**

강 전 장관은 "우리 정부가 지향했던 '조용한 외교'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면서도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조용한 외교' 노선은 무엇을 했는지를 따져본다든지, 당면한 EEZ 사태에 우리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한마디 제언도 없었다.

강 전 장관의 글이 오로지 '한나라당 때리기'를 위한 정치적 의도를 듬뿍 담고 있기에 '4.19혁명 46주년'을 접한 감상과 일본의 EEZ 침범에 대한 몇 마디는 그저 외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하기에 강 전 장관이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도쿄지사를 지탄하며 "나는 단순히 이시하라의 반대편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대척점을 넘어 서울을 미래도시, 세계도시로 만들고 싶은 욕망과 상상력을 갖고 있다"고 대비시켰으나, 그의 두 발은 이미 '정치화된 민족주의'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여준 셈이 됐다.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이를 민족주의라는 지상명제로 덧씌우고 정치적 기획의 한 영역에 위치시켜 공분을 재조장하는 기존 정치권의 패턴을 강 전 장관이 그대로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여권의 지방선거 의도를 의식해 청와대 만찬에 불참한 한나라당의 '옹졸한 태도'만큼이나 강 전 장관의 머릿속에서도 온통 선거공학만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강 전 장관이 기존 정치를 그토록 희화화해 비판하지 않았다면, 나아가 그와 차별된 '새로운 정치'를 들먹이지 않았다면 이런 지적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보라색에 상생의 의미를 담아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 요체는 '진정성'과 '포용성'이라고 했다. 강 전 장관이 첫 행보로 청계천을 방문했을 때, '이명박의 청계천'과 '전태일의 청계천'이 적어도 새로운 의미로 재평가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를 바란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진부하고도 지극히 표피적인 수준의 '민주-반민주', '민족-반민족' 대립구도를 내세워 당장의 국민 여론에 편승하려는 강 전 장관의 태도에서 '강금실 정치'의 실체는 더없이 초라하게 오그라든 것 같다. 그도 그저 그런 정치인 중의 하나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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