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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중국,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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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중국, 바이-바이!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4>

지난 주 인도 신문 힌두스탄타임스 지에는 중국과의 관계를 논한 칼럼 한 편이 ‘인도-중국, 바이-바이! (Hindi-Chini, bye-bye!)’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었다. 1962년 10월 20일 중국군이 히말라야를 넘어 중-인 전쟁을 일으킨 40주년을 맞아 중국과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글이었다.

이 제목은 중-인 전쟁 전까지 중국에 대해 극도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네루 당시 수상이 ‘인도와 중국은 형제국 (Hindi-Chini, bhai-bhai)’이라 하던 구호를 패러디한 것이다. 고매한 인격자로 국민에게 존경받던 네루는 믿었던 중국에게 발등을 찍히는 바람에 현실정치에 어두운 몽상가로 비판받으며 심한 곤경에 처했다. 라드하크리슈난 대통령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자 네루는 ”우리 모두 환상 속에 살고 있었다“고 탄식했다.

네루를 따르던 인도인들은 중국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비동맹정책을 추구한 네루 정부는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다. 1954년에는 ‘평화공존 5대 원칙’에 합의, 두 나라의 우의를 과시했다. 1959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면서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고, 이 무렵 중국이 인도를 제쳐놓고 파키스탄과 국경 확정 협정을 맺으면서 인도와 중국 사이에 국경 순찰대 사이의 충돌이 잦아졌지만 네루는 두 나라 사이의 근본적 우호관계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국도 네루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았다. 전쟁 3개월 전에는 중국군이 인도군 요새 하나를 완전 포위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극심한 공격을 자제하고 포위를 풀어준 일도 있었다. 인도는 영국이 1914년 티베트와 국경을 정했던 시믈라 조약을 이어받는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당사자끼리 새로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어느 나라도 히말라야 산맥 건너편에 영토의 야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어떻게든 잘 해결되리라는 전망이었다.

인-중 전쟁은 인도의 자살골과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너무 깊이 들어갔다. 인도군이 스스로 주장하는 경계선인 맥메이헌 라인 북쪽에까지 진지를 구축하는 작전을 시작하자 중국군이 예상 밖의 대대적 반격으로 나온 것이다. 인도군은 일패도지했고, 나흘만에 분쟁지역의 요충지를 모두 점거한 중국군은 진격을 멈추고 협상을 요청했다. 이에 불복한 인도군은 반격에 다시 실패해 더 큰 수모를 겪었다.

힌두스탄타임스 지의 필자 말호트라 씨는 전쟁 발발 후 인도 정부의 대응이 잘못된 극심한 예 두 가지를 지적한다. 그 하나는 전투병과 출신이 아닌 가울 장군을 반격전의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인도군이 참담한 패배를 겪은 후 외신기자들이 라드하크리슈난 대통령에게 가울 장군까지 포로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대통령이 씁쓸한 얼굴로 “유감스럽게도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또 하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전쟁 발발 후 18일간 온 정계가 크리슈난 메논 국방장관의 인책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네루 수상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사회주의자 메논 장관은 인도 비동맹정책의 기수로서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였다. 그는 1957년 이래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 인도군의 현대화에 막중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만, 당시는 ‘중국의 배신’을 초래한 장본인으로서 정치공세의 표적이 되었다.

인-중 전쟁에서 중국은 “인도의 도발에 대해 최소한의 대응에 그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그 덕분에 제3세계에서도 침략자라는 지탄을 면할 수 있었으며 그후 인도와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의 힘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 네루 정부에게는 망신살의 원인이었던 셈이다.

이 일을 돌아보며 요즈음 남북관계의 어수선한 모습을 생각해 본다. 이런저런 곡절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남북관계의 발전을 여전히 바라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염원 때문에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사실도 믿기 싫어하고 군사도발에 대한 북한의 책임에도 눈감고 싶어한다면 네루 정부 못지 않게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확인도 되지 않은 핵개발을 이유로 진행중인 관계까지 냉각시키려 드는 것은 불신을 키워 관계를 악화시키는, 파괴적이고 부도덕한 태도로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 네루 수상의 중국 신뢰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이 인-중 전쟁의 마무리 과정에 임하는 중국의 태도로 확인되었다. 중국이 용인할 한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강경파에 떠밀려 그 한도를 넘어버린 데 문제가 있었다.

북한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닐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북한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서 우리의 필요와 소망에 맞출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실현해 나가는 길이다. 그런데 한쪽에는 무조건 믿자고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무조건 믿지 못하겠다고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말호트라 씨는 네루 측과 그 반대자들이 모두 정치논리에 휘말려 현실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지금 우리 정계의 대북정책 논란에 대해서도 똑같이 들어맞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거인들이 전쟁 40주년을 맞아 과거를 정리하고 상대를 다시 보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는 판국에 우리는 민족과 국가의 최대 과제를 놓고도 믿음직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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