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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는 지금 인도양에서 무얼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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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는 지금 인도양에서 무얼 하고 있나?

원양에서 은밀히 진행중인 일본의 군사대국화

일본 열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인도양. 2001년부터 이 푸른 바다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배치돼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느덧 인도양 주둔 4년을 넘긴 이들은 먼 바다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수행하는 미군 함정에 대한 연료보급을 이유로 인도양에 파견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들은 그 뒤 이라크전쟁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인도양에 남아 연료 보급은 물론, 수상한 선박의 나포 및 요격, 불시의 공격에 대비한 전투훈련 등 사실상 원양해군으로서의 실력을 조용히, 착실하게 쌓아 왔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언론들이 중국의 원양해군화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오히려 중국에 앞서 원양해군으로서의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일본 자위대가 '자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활동을 하고 있음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다. 이미 일본은 지난 1991년 쿠웨이트 파병을 시작으로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의 이름표를 달고 캄보디아(92년), 모잠비크(93년), 자이레(94년), 골란고원(96년)으로 이어지는 자위대 파병을 감행했다. 1945년 이전의 '보통국가'로 돌아가려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논란'에 막혀 있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본은 이미 '보통국가'다.

그러나 PKO와는 차원이 다른 실질적인 '전투행위'를 포함한 작전을 일본이 인도양에서 수행중이라는 것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주둔 중인 일본 육상자위대의 활동은 비교적 알려졌으나 인도양 해상자위대의 활동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및 아시아 문제에 관한 웹사이트 〈재팬포커스〉는 최근 인도양에 파견된 일본 해상자위대의 활동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보통국가' 일본이 먼 바다에서 벌이고 있는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비판했다. 또 〈아사히신문〉도 5회에 걸친 연재기사를 통해 인도양 해상자위대의 활동이 일본의 평화헌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재팬포커스〉의 "일본의 인도양 해군 배치 : '보통국가'에서 일어나는 원양에서의 군사대국화(http://www.japanfocus.org/article.asp?id=549)"와 〈아사히〉의 "일본의 원양 해군 : 4년간의 인도양 작전은 헌법과 미일동맹을 새로 만들었다(http://www.japanfocus.org/article.asp?id=550)"를 바탕으로 인도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 활동의 실상을 알아본다.

***인도양에 파견된 해상자위대의 1차적 임무는 '연료 보급'**

일본 해상자위대의 구축함과 연료 등 군수품 보급함은 지난 2001년 11월 인도양에 파견된 이래 여러 작전을 수행 중이다. 2001년부터 2005년 중반 사이에 47척의 해상자위대 소속 함대와 9260여 명의 선원들이 그 지역에 교대로 파견돼 작전에 참가했다. 시작은 군수품 수송함 하마나(8150톤급)의 파견이었고, 이듬해 12월 일본 정부는 공군 방어 시스템을 갖춘 이지스함 콩고까지 파견했다.

2001년 통과된 테러대책특별조치법에 의한 이 파견은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미군과 인도양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다국적군에게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들은 2005년 10월 8일까지 다국적군의 552척의 함대에게 155억 엔 상당의 연료를 공급했다.

일본군으로부터 연료 보급을 받은 선박은 미군이 296회, 영국군이 23회, 프랑스군 55회, 독일군 12회, 스페인군 10회, 그리스군 10회, 네덜란드군 7회, 뉴질랜드 15회, 파키스탄 57회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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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선이 연료를 넣기 시작하면 40명의 선원들이 갑판 위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다녔다. 그들은 연신 욕설을 퍼부었고, 일반적으로 작업은 1시간에서 5시간이 걸렸다.

2003년 3월은 이라크 전쟁이 막 개전되려는 시점이었다. 연료 보급선인 토키와호는 연료를 넣어주는 이 고된 작업을 하루에 평균 7차례나 반복했다. 그들은 한 달 동안 휴일도 없이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했다. 선장은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나는 선원들의 건강이 몹시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1시간동안 연료를 보급 받으면 대략 나흘의 항해가 가능했다. 대부분 미국 국적의 함대들은 임박한 이라크 전쟁을 위해 아라비아해로 모여들고 있었다.

- '일본의 원양 해군 : 4년간의 인도양 작전은 헌법과 미일동맹을 새로 만들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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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자위대가 수행하는 연료 보급은 인도양에서 테러리스트 조직들과 싸우고 있는 다국적군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싸우라는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 중인 함대들이 걸프만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도양을 거쳐야 했다. 이들은 모두 일본 해상자위대로부터 연료를 보급받았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2003년 3월, 일본은 2만㎘에 달하는 연료를 각 나라의 함대들에 보급했다. 이는 그 전 달의 2배에 해당되는 양이었다.

〈사진 1 : 연료보급 중인 두 척의 선박 사진〉

미군 관리는 2003년 3월 요코스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에게 감사를 표했다. 항공모함 '키티 호크'에서 근무했던 그는 2003년 2월 아라비아해에서 일본 자위대로부터 연료를 보급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지난 4년간 일본이 보급한 연료는 대략 41만㎘에 달한다. 이는 400척의 일본 선박들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연료의 양과 동일하다. 이 중 90%가 미국 함대에게 지급됐다. 그 양은 2002년 3월의 4만㎘를 절정으로 최근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한 달에 10여 척의 함대들에게 연료를 공급해준다.

2003년 인도양에 파견됐던 시바카 마사히로(51)는 일본이 연료 보급이라는 임무를 완성하는 데는 "대략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 쉽게 끝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인도양의 자위대 배치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테러 활동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도양은 조용한 '불안정한 전투지역'이었다**

일본의 인도양에서의 작전의 임무는 연료 보급에만 제한돼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사히〉는 해상자위대의 뜻밖의 임무 중 하나가 수상한 선박에 대한 요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방위청에 따르면 인도양에서 일본 해군이 "매우 많은 선원들"을 체포했지만 이들이 정말 테러리스트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더욱이 일본이 '항구적 자유작전(OEF)'과 '해상봉쇄작전(MIO)'에 참가해 행한 많은 '임무'의 상당 부분이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양에 파견된 함대는 군수품 보급선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도 이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호송 선박과 기뢰 제거 소해정 등도 인도양에 파견돼 왔다. 이들의 공식적인 임무는 연료 보급선의 호위와 보호였지만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는 소위 '적들의 공격'은 실질적인 '전투 행위'의 가능성도 높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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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사격을 준비하라!"

저녁 8시가 넘긴 시간, 오만만을 항해 중이던 쿠라마호의 갑판에 장교의 명령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선원들은 헬멧을 쓰고 방탄조끼를 서둘러 입은 후 갑판 위에 있는 기관총에 총알을 장전하기 시작했고 배 위의 공기에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미확인 물체가 쿠라마호의 좌측으로부터 20노트의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레이다에 잡혔다. 그 물체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무전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배 위의 모든 이들은 이 물체가 자살폭탄 테러를 시도하려는 선박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만약 그 배가 이 속도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사격을 가할 것이다"라고 1함대 사령관 혼다 히로타카(58)는 생각했다. 히로타카의 바로 아래 지위로 이 배의 선장이었던 히라노 테루츠쿠(44)는 긴장했다. "첫 번째 공격이 되겠구나."

그 배가 눈에 띈 지 한 시간이 지난 후의 상황이었다. 그 그림자는 500미터 근처까지 접근했다. 그 배가 결국 항해등을 켰고, 실체는 이란의 경찰 선박으로 드러났다. 위험은 사라졌다. 그들이 아라비아 해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2년 2월 3일의 일이었다. 첫 시작부터 마치 '부분적인 전투지역'과 같았다.

- '일본의 원양 해군 : 4년간의 인도양 작전은 헌법과 미일동맹을 새로 만들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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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일은 종종 일어났다. 바다 위에서는 매일 매일 자살폭탄 테러에 대한 연습이 반복됐다. "정체 불명의 비행체가 30마일 거리에서 우리 선박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비상 경고가 함대 전체에 울려 퍼지면 선원들은 재빨리 각자의 위치를 잡았고 경고방송이 몇 차례 나간 뒤 경고 폭탄이 발사됐다.

2000년 예멘에서 미군 구축함이 작은 배에 의해 테러를 당했던 경험은 이런 훈련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었다. '항구적 자유작전'이 여전히 진행 중인 아라비아해에서는 일본 함대들뿐 아니라 모든 작전에 참가중인 선박들이 테러의 위험으로 긴장하고 있다. 작은 보트뿐 아니라 낮은 고도로 함대를 향해 돌진할 가능성이 있는 소형 비행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진 2 : 이지스함 콩고〉

2002년 12월 일본 정부가 최첨단 성능을 갖춘 이지스함의 인도양 파견을 결정한 것은 역시 이 지역에서의 작전이 '불안정한 전투'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지스함 파견의 명분은 물론 연료 수송에서의 안전 확보다. 연료를 공급하는 시간 동안 두 척의 함대가 오랜 시간 서로 같은 방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때 적들의 공격에 노출되기가 매우 쉽다는 것. 따라서 아주 먼 거리의 목표물도 잡아낼 수 있는 레이다를 가진 이지스함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또 선원들의 배 위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분도 이지스함의 파견을 정당화시켜줬다. 공습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각종 장비들을 갖춘 호위선도 테러대책특별조치법 하에 '정당하게' 파견됐다.

비록 최전선의 장교들은 "우리의 임무는 미국과 영국군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일본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4번째 부대 첫 번째 함대의 사령관 타카시마 히로시(53)는 "연료 보급 활동은 올바르게 판단된 것이지만 이지스함의 파견에 대해서는 어떤 특별한 언급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 파견을 "미일 동맹의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헤이세이의 군사대국화'는 조용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인도양 함대 배치는 육상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비하면 별다른 난관 없이 이뤄졌다.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파견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일본 내에서도 이에 대한 어떤 공개적인 비판이나 토론도 나오지 않았다. 학자들은 물론이고 언론인들도 이 작전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는 베일을 벗길 생각을 하지 않는 침묵과 방관 속에 이들은 오늘도 인도양의 바다 위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배치는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일본 역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지난 15년간 자위대의 실질적인 군사력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매우 효과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재팬포커스〉에 "일본의 인도양 해군 배치 : '보통국가'에서 일어나는 원양에서의 군국주의화"라는 글을 쓴 리차드 탠터는 이같은 일본의 움직임을 '헤이세이(平成·현재 일본의 국왕·125대 왕·1990년 즉위)의 군사대국화'라고 규정했다.

이미 1990년대에 시작된 이같은 움직임은 1997년 미일 신(新)군사안보협약의 이행에서 더욱 강화됐으며 특히 2001년 9.11사태 이후 지난 5년간 일본은 빠르게 군사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교전수칙, 군 조직 구조, 군사 전략 등에서 극단적인 군사력 사용에 대한 기존의 억제 정책의 많은 부분을 제거했다. 소위 '정상적인 국가' 수준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본의 야심은 자신들의 세계전략 하에 일본을 편입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욕심과 맞물려 더욱 힘을 받았다.

〈사진 3 : 고이즈미〉

2003-2004년 미사일방어시스템(MD)의 구축과 이라크 파병이라는 두 가지 중대한 결정에서 일본의 야심은 절정에 달했다. 해상자위대의 4년간의 인도양 파견을 비롯해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서도 일본은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핵무기 보유를 제외하면 정보의 공유 등 안전보장의 모든 면에서 일본은 (미국에게) 영국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발언은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아미티지는 지난달 19일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이라크전을 전면적으로 지원한 영국과 '동급'이 됐다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야심의 희생양이 됐던 동아시아 국가 등의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보이고 있는, 인도양에서의 해상자위대 활동을 포함한 일련의 움직임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인도양에 배치돼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군에게 연료를 보급해주고 있는 해상자위대의 활동이 직접적인 전쟁 참가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거세다. 먼 인도양에서 이미 4년이 넘도록 미국의 대테러전을 조용히 '측면 지원'하고 있는 일본 열도를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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