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임즈>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영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이지만, 내 주변의 건축가들을 보면 같은 흑백영화 중에서는 독일 감독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하다. 비쥬얼로만 보면 <메트로폴리스>가 훨씬 상상력을 자극한다. 록 그룹 퀸의 <라디오 가가> 뮤직비디오에서 시작해서 <매트릭스>나 <마이너리티 리포트><블레이드 러너> 등등 메트로폴리스의 이미지들을 반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영상물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모던 타임즈>의 감동은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온다. 우선 여기에는 동시대성이 있다. 이 영화는 미래나 과거의 어떤 허구적 시점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모던 타임즈>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 사회의 모습을 텍스트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평범한 한 사람이 기계문명시대를 살면서 겪는 고독과 소외가 짙게 우러난다.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셈이다.
 | |
|
모던 타임즈 ⓒ프레시안무비 |
|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떤 공장이다. 그런데 이곳은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오래된 공장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곳은 더 이상 음습하고 삐걱거리며 석탄 연기가 자욱한 그런 곳이 아니다. 철골과 유리로 지어지고 빛이 충만하며, 먼지 하나 없이 살균된 공간. 그곳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인 찰리가 일하는 곳이다. 외관상으로 이곳은 이전에 비해 훨씬 쾌적하고 인간적인 작업환경인 것처럼 보인다.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매우 청결하며, 모든 물건들은 정해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하기만 하면 만사가 다 잘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찰리는 결국 이 공장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콘베이어 벨트 시스템이다. 찰리에게 이것은 기계가 되라고 강요한다. 이것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그 위에 있는 부품들을 역시 일정한 시간 내에 조립할 것을 강요한다. 일순간의 방심은 금물이다. 금방 그 뒤의 부품들이 밀려 들어오며 작업자는 마치 저승사자를 연상하게 하는 감독관의 질책을 들어야 한다. 결국 찰리는 일종의 마비 증세를 보이며 심지어 정신병자 취급까지 받게 된다. 이런 찰리를 인간적인 연민과 공감의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적응력이 떨어지는 답답한 존재로 여기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인생관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936년. 당시 유럽에서는 히틀러의 나찌즘이 바야흐로 전쟁의 기운을 몰아오고 있었다. 전 세계가 아직 그의 실체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있던 상태에서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고, 레니 리펜슈탈의 전설적인 다큐멘타리 <올림피아>가 제작된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던 타임즈>를 이해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히틀러 동조자라는 의심을 받았던 기업인, 바로 헨리 포드다. '포디즘'이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이름 자체가 근대산업사회와 동일시된다. 그는 '우리 회사 종업원이 살 수 있는 차'를 만든다는 이념 하에 새로운 타입의 공장을 지었고, 그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벨트 콘베이어였다. 벨트 콘베이어는 포디즘의 핵심 개념들인 표준화, 분업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시스템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포디즘의 시각적 아이콘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놓았다. 결국 이 세계는 '기계' 내지는 그것의 연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건축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19세기에서 20세기에 넘어오면서 많은 건축가들이 성당이나 주거에 못지않게 산업을 위한 시설들로 눈을 돌렸다. 피터 베렌스의 '아에게' 공장이나 그로피우스의 '파구스트'공장, 오귀스트 페레의 '에스데르스' 방직 공장 등은 지금도 근대건축사의 귀중한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
|
모던 타임즈 ⓒ프레시안무비 |
'밝은 대공간'이라는 주제는 이들 모두에게 공통의 관심사였으며, 어떤 의미에서 공장은 '기계미학'이라고도 불리는 근대적 미학이 시도되기 가장 좋은 분야이기도 했다. 그러나 포디즘은 이것을 더욱 극한으로 몰고 갔다. 어떤 공장의 규모는 이제 수백 미터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더 이상 그 공간의 주역이 아니었다. 인간은 벨트 콘베이어의 종속물로서 속도와 공정의 일부가 되어 갔다. 건물의 스케일 또한 인간과는 전혀 무관했다. 아득하게 넓고 까마득하게 높은 거대한 공간에서 인간은 고작 개미처럼 꼬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모던 타임즈>는 바로 이러한 시대에 대한 절규였다. 여기에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공포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몇 년 후, '기계에 의한 대량학살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
|
모던 타임즈 ⓒ프레시안무비 |
'기계'는 아직도 살아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산업을 초월하여 도처에서 전혀 다른 모습과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혹은 정치를 통해, 때로는 문화를 통해 '기계'는 여전히 우리들 속의 찰리를 구속하고 복종시키려 한다. 이에 대한 절규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모던 타임즈>는 바로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가 만들어진지 70년이 지났지만 그 동시대성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