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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래쉬>를 통해 본 미국의 反이민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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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래쉬>를 통해 본 미국의 反이민법 문제

[특집] 정치적,경제적 해법을 무시한 감상주의적 접근이 문제

올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가 현재 미국에서 뜨거운 논란을 모으고 있는 反이민법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내용을 담고 있어 국내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크래쉬>는 어떤 내용인가, 무엇보다 현 부시정부의 反이민법은 얼마만큼의 反민중적 정서를 갖고 있는가, <크래쉬>는 그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고 있는가, 아니면 싸구려 감상주의에서 그치고 만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영화에 불과할 뿐인가. 영화를 통해 본 反이민법의 문제, 反이민법을 통해 본 영화의 문제를 함께 알아본다. - 편집자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크래쉬>의 작품상 수상은 가장 의외의 선택으로 꼽혔다. 전세계 대다수 영화팬들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상을 받으리라 예측했으며, <크래쉬>의 제작진 역시 자신들의 이름이 호명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나 '시카고 선 타임스' 같은 미국 내 유력 언론은 이미 일찌감치 <크래쉬>의 수상을 점쳤다. 전문적인 '인사이드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볼 때 올해의 수상 후보 가운데 아카데미 심사위원단의 입맛에 가장 맞는 작품은 <크래쉬>였던 것이다. 실로 <크래쉬>는 지난해 5월 미국 개봉 당시 많은 지지자를 확보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을 썼던 폴 해기스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미국 사회에서 지금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인 인종 갈등을 다루고 있다. 로버트 알트먼의 <숏 컷>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를 연상시키는, 다중의 캐릭터가 서로 엇갈리고 교차하는 이야기를 절묘하게 엮어낸 것이다. 하지만 <크래쉬>는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만장일치의 걸작'은 아니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인종 문제를 매우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크래쉬>가 작품상을 수상한 뒤에도 아카데미의 선택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대체 <크래쉬>의 무엇이 문제인가?
크래쉬 ⓒ프레시안무비
. 反이민법, 미국 경제 정책의 희생양 최근 미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불법 체류자를 엄중 규제하는 반이민법 논란이다. 12월 미 하원을 통과한 일명 '센센브레너 법안'이 28일부터 상원 심의에 들어간 가운데,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민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3일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시작된 시위는 연방의사당이 있는 워싱턴 D.C.를 포함,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태다. 지난 주말인 25일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50만 명이 집결한 가두행진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지 경찰은 이 시위가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능가하는 이 지역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내 불법 체류자 수는 2000년 840만 명에서 현재 1,100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 국가인 미국 사회가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가 바로 이 불법 체류자들을 끌어안는 문제였다. 그간 미국의 이민법들은 조금씩 규정을 강화해 불법 이민자들의 설자리를 좁혀왔다. 하지만 '센센브레너 법안'은 미국 이민자 규제법 사상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미국 내 불법 체류자들을 처음으로 형사 범죄로 규정한 것. 불법 체류자들은 5년 내에 고국으로 돌아가 임시 근로자로 등록해야 하며, 불법 체류자에게 일자리를 주거나 도움을 주는 고용주와 종교 단체 등도 처벌한다는 법안이다. 또한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지대에는 320km에 걸친 장벽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이 주도한 이번 법안은 9.11 사태 이후 타 인종과 민족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미국 백인 보수층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국경 보호와 테러 방지, 불법 이민을 통제하는 것이 이 법안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해서는 미국 정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불법 체류자와 이민자들이 미국 경제에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25일 주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민자들이 미국 경제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면서, 불법 이민자들을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방안인 '초청 노동자(guest worker)'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들은 주로 백인들이 기피하는 3D 직종에 종사해왔기 때문에,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국 경제가 심각한 인력 수급난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크래쉬 ⓒ프레시안무비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이민 정책은 미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UC 리버사이드 대학 교수이자 소수 민족학 연구자인 장태한 박사는 <아시안 아메리칸: 백인도 흑인도 아닌 사람들의 역사>(책세상, 2004)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미국 사회는 경기가 좋을 때면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민자들에게 호의적인 정책을 펼치는 반면, 불경기에 접어들면 사회적 경제적 불안의 원인을 이민자들에게 돌림으로써 이민 억제 정책을 강화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장태한 교수는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인종 차별주의를 토대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주장한다. 백인 자본가의 이윤 획득과 자본 축적 과정에서 흑인과 라틴계, 아시아계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수탈은 필수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사회에서는 계급 대립보다는 인종간 대립과 반목이 더욱 심각하게 대두될 수밖에 없다. 불법 이민자와 인종 차별을 둘러싼 여러 문제의 핵심은 결국 경제적인 관점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 인종별 스테레오타입의 파노라마 <크래쉬>는 미국에서도 불법 이민자와 인종 문제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36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백인, 흑인, 한국인, 멕시코인, 아랍인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타 인종에 대한 적대감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지방검사 릭(브랜든 프레이저)의 아내 진(산드라 불록)은 흑인 청년에게 차를 강탈당한 뒤 만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집 문 열쇠를 수리하러 온 멕시칸 대니얼을 도둑으로 의심하면서, 나이 많은 유색인 가정부를 무시한다. 이란인 이민자 파라드는 총기를 구입하러 갔다가 무시당해 불쾌해하는 한편, 자신의 전재산인 가게가 몽땅 털리자 이를 열쇠 수리공 대니얼의 잘못으로 돌린다. 로스앤젤레스에 수많은 인종이 살고 있는 만큼,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된다. 백인 경찰 라이언(맷 딜런)은 아버지의 병 때문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가 흑인 안내원의 차가운 응답에 화를 내고, 파트너 핸슨(라이언 필립)과 순찰을 돌다가 지방검사 릭이 강탈당한 차종과 같은 차에 타고 있는 흑인 프로듀서 카메론(테렌스 하워드)과 아내 크리스틴(탠디 뉴튼)을 검문한다. 크리스틴은 거의 성희롱에 버금가는 라이언의 검문 방식에 신경이 곤두서는 한편, 여기에 저항하지 않는 남편 카메론을 원망한다. 한편 릭의 차량을 강탈한 흑인 청년 피터와 앤소니는 밤길을 질주하다 한국인 조진구(대니얼 대 김)를 치는 사고를 저지르고, 조진구를 병원 응급실에 버린 뒤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흑인 수사관 그레이엄(돈 치들)은 부패한 백인 경찰관이 동료 흑인 경찰관을 살해한 사건을 맡는 한편, 검사 릭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을 알게 된 뒤 갈등한다.
크래쉬 ⓒ프레시안무비
<크래쉬>는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보다 분명하게 인종에 대한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끌어들인다. 영화 초반부 길에서 교통 사고가 나자 중년의 아시아 여성은 상대차에 타고 있던 히스패닉계 여성을 무시하며 '재수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흑인들은 위험하고 무례하며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고, 아랍계 이민자는 무조건 이라크 테러리스트와 동일시되며, 멕시코인 열쇠 수리공은 문신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강도로 몰린다. 한국인인 조진구는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불법 이민자를 팔아 넘기는 인신매매범이며, 응급실에 몸져 누운 상황에서도 돈을 밝히는 자린고비다. 물론 <크래쉬>는 우리가 타인에 대해 갖는 편견이 상당히 편협한 것임을 꼬집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외모와 옷차림, 목소리와 눈빛만으로도 적대시하거나 차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후반부에서 대립하던 인종들이 서로 화해하고 상처를 보듬도록 만든다. 이란인 파라드는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대니얼을 이해하게 되고, 라이언 역시 모종의 사건에서 위기에 처한 크리스틴을 구해내며, 신경과민인 진 역시 우연한 일을 계기로 유색인 가정부의 진심을 깨닫는다. <크래쉬>에서 다른 인종과의 갈등에서 타협점이 드러나지 않는 인종은 단 하나, 바로 한국인이다. <크래쉬>는 약간의 눈물과 의도적인 감상주의로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산 것은 바로 그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크래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논자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이 영화에 지나치게 우연이 많다는 것. 로스앤젤레스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인물들은 과도할 정도로 자주 마주치며 얽히고설킨다. 다른 하나는 인종 간 스테레오 타입을 영화의 소재로 택하는 과정에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영화의 인물들은 말과 표정과 행동에서 지나치게 분명하게 타인종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드러낸다. 좋은 말로 하면 캐릭터가 분명한 것이지만, 반대로 이것은 상당히 단세포적인 이야기로 돌변하고 만다. 종교나 성(sexuality) 같은 다른 문제는 여기에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 인종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방식 하지만 <크래쉬>의 더욱 큰 문제는, 이 영화가 미국 내 인종 차별주의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크래쉬>에서 인종 문제는 앞서 설명한 경제적 관점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인종 간 대립과 반목이 경제적 차이나 계급적 차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래쉬>는 이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크래쉬>의 인물들은 인종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제적/계급적 차이는 거의 없다. 백인 캐릭터에서도 릭과 진 같은 엘리트 계급이 등장하고, 흑인 캐릭터에서도 카메론과 크리스틴 같은 중상류층을 설정해놓은 것이다. 반대로 백인 경찰 라이언은 경제적으로는 하층 계급에 속하며, 흑인과 멕시칸과 한국인 등 유색 인종은 라이언과 경제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어쩌면 그것 역시 사실의 한 부분이다. 백인도 흑인도 아시아인도 부유층과 빈곤층이 모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예외를 보편적인 진실로 부풀리는 것은 부당한 사고방식일 수 있다.
크래쉬 ⓒ프레시안무비
미국의 대도시는 거주 지역이 인종적으로 구별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적 생활 수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종 차별주의를 경제적 관점으로 환원하는 것 역시 위험한 논리이지만, 인종 차별주의에서 경제 문제를 제외하는 것은 진실과 더욱 멀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영화가 인종 차별주의를 다룰 때는 더욱 많은 요소들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종 차별주의를 다룬 영화를 이해하는 것 역시 경제뿐 아니라 종교와 성과 문화의 복잡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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