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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졸부근성'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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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졸부근성'을 고발한다

<데스크칼럼> '37억의 축제' 부산아시안게임에 붙여

지난 8월말 태풍 루사로 1천mm 가까운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2백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건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다. 일본은 올해 루사와 엇비슷한 태풍을 네다섯 차례 맞았지만 사망자는 10명이 넘지 않는다.

도쿄 지하에는 폭이 수십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관이 묻혀 있다. 평상시엔 비어 있다가 폭우가 내리면 물을 저장하는 장소다.

도쿄의 인도(人道)는 물론 포장돼 있다. 맨땅이 아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마치 맨땅처럼 물을 흡수한다. 빗물이 하수관으로만 밀려드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일본이 처음부터 이런 걸 만든 건 아니다. 여러 차례 물난리를 격고 나서 막대한 돈을 들여 새로 만들었다.

선진국은 이렇게 다르다.
경제성장, 도시화를 이루며 환경을 파괴한다. 필연적으로 큰 재해를 당한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한 투자가 이뤄진다. 그런 다음에야 선진국 소리를 듣는다.

***한국인 모두 졸부근성에 빠진 건 아닐까?**

우린 아직 겉멋에만 빠져있는 단계다.

강원도. 산허리를 뚝뚝 끊어 길을 냈다가 이번에 무참히 무너졌다. 하천 줄기마다 다리를 놓았지만 비에 쓸려 내려온 토사와 나무들이 그 다리에 막혀 일종의 둑이 돼 버렸다. 거기 막힌 물은 도시로 마을로 밀려들었다.

대충대충 건성으로 길 뚫고 건물 짓고 다리 놓고는 다들 자동차 타고 씽씽 관광이나 다녔다. 우린 이렇게 겉멋에만 빠져 살았다. 그러다 이 난리를 만났다.

하긴 이런 복잡한 얘기까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가 엊그제 일이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입만 열면 선진국 타령이다. 일류국가란 얘기도 서슴지 않는다. 제대로 된 중진국도 만들지 못했으면서 자꾸 자꾸 앞으로만 나아가려, 위로만 오르려 한다.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상전벽해란 단어가 우리 때문에 만들어진 단어인 듯하다. 불과 반세기만에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졸부근성. 한국사회 전체, 우리 국민 모두가 졸부근성에 빠진 건 아닐까?

***정말 우리가 아시아인인가?**

37억 아시아인의 축제. 부산아시안게임이 한참이다. '아시아는 하나다'. TV도 신문도 온통 이 일곱 글자로 뒤덮여 있다.

그런데 정말 아시아는 하나인가? 우리가 아시아인 맞나?

98년 아시안게임이 어디에서 열렸는지, 94년은 어디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98년은 방콕, 94년은 히로시마였다.

언제부턴가 아시안게임은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올림픽, 월드컵, 메이저리그, LPGA. 열광할 만한 것들은 충분히 많았다. 아시안게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부산 개최를 계기로 새삼 아시안게임이, 37억 아시아인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 듯 하다.

이건 아시안게임 문제만이 아니다. 어느 정도 잘 살게 되면서부터 우린 아시아를 떠났다. 외국 하면 일단 미국과 유럽, 일본을 떠올렸다. 한반도의 서쪽엔 눈을 감고 동쪽으로만 발길이 분주했다. 중국이 달라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불어닥친 '중국바람'이 이례적인 일이다.

***외국인노동자 인권문제, 부끄러운 '아시아는 하나다'**

아시아를 떠나며 아시아인도 버렸다. 지금 30만 명이 넘는 외국인노동자가 있다. 절대다수가 아시아인이다. 이들에게 우린 어떤 대접을 하고 있는가?

한국인 특유의 따뜻한 인정으로 살갑게 대해주는 경우도 물론 많다. 하지만 임금착취, 폭행, 인권유린 등등 악행의 기록은 이루 다 옮기기 부끄러울 정도다. 그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상처만 입고, 증오만 간직한 채 떠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불법체류 신분 등 제도적 문제점들이 그들을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하는 점도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그 저류에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에 대한 멸시가 흐르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을 찾아 온갖 수모와 멸시를 참아야 했던 우리가 이젠 거꾸로 고스란히 그것들을 되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 맞고 조롱당하며 몸이 아파도 병원조차 찾지 못하는 외국인노동자, 아시아인들이 많다. 그들의 눈물과 피땀으로 만든 상품들이 화려한 진열장에 즐비하다.

그리고 오늘 우린 '37억 아시아인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아시아는 하나다'를 외친다.

***아시아를, 친구를 다시 찾자**

졸부근성. 그 대표적 특징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사람 취급 안 하는 것이다. 괜히 거들먹거리며 잘난 체 하는 못난이들이다.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군림하려 드는 비겁함이다.

우린 아시아를 향해, 아시아인을 향해, 우리 이웃 외국인노동자들을 향해 그 졸부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온 것 아닐까?

한국인 모두 정말로 애써 오늘의 성장을 일궜다. 자랑스런 성공이다.

하지만 너무 빠른 변화에 우리 모두 정신을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 '장밋빛 환상'이 아른거려 집단최면에 빠져 있었는지 모른다. 선진국병, 일류국가 증후군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비만 하루 쏟아져도 수백 명이 죽고 수조 원의 재산피해를 입는 나라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챙기고 살펴야 할 일은 터무니없이 많다. 겉멋에 빠져 거들먹거린다고 저절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제 졸부근성을 벗어던지자. 우리의 처지를 제대로 살피고, 위아래를 다시 보자. 잃었던 친구들을 다시 찾자. 함께 조금씩 나아가자.

37억 아시아인의 축제, 2002 부산아시안게임이 가져다 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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