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치세력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히는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이 한나라당을 향해 작심한 듯 '쓴소리'를 퍼부었다.
그는 "한나라당이 가진자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오해받을 행동을 한 것이 없었느냐"고 지적했다. 또한 "영호남 지역구도", "보혁 갈등구도", "특정세력 대변" 등 "익숙한 것과 결별"하지 않으면 "정권을 장악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가진자 옹호하는 듯한 행동 없었나"**
윤 소장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새정치수요모임'이 공동 주최하는 17일 '지방선거와 한나라당의 진로를 위한 정책세미나' 참석에 앞서 15일 배포한 발제문을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21세기 시대정신을 '개방과 평화'로 규정한 윤 전 소장은 "한나라당이 머리로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인식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전시대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혼돈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위기 중 하나는 시대정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결여에서 오는 위기"라며 "시대정신을 잃은 정당은 정권을 장악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설사 정권을 잡았다 해도 국민 전체의 것으로 견인하는 데는 한계에 놓이고 만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소장은 또한 "많은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재벌과 같은 가진자의 이익을 국가와 사회의 전체적인 이익처럼 생각하는, 가진자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오해하고 있다"면서 "솔직히 가진자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오해받을 행동을 한 것이 없었느냐"고 따져물었다.
윤 전 소장은 또한 "한나라당은 지금 어느 사회의 어느 계층을 대변하고, 어느 사회세력과 연대하면서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면서 "갈등구조에서도, 도전의 사회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은 우군을 갖지 못했으며 고립무원의 존재처럼 밀려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권 되찾기 위한 전략 있나"**
윤 소장의 이런 지적은 당 내부 문제로 이어졌다. 그는 ▲조직체계의 한계 ▲전략의 열세 ▲투쟁성의 결여 ▲헌신성의 부족 ▲연대성의 미흡 등을 차례로 꼽았다.
윤 전 소장은 "지금 한나라당을 보면 특정 정치적 직위만을 위한, 즉 국회의원, 시도지사,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의원이 되기 위한 조직체로 여겨질 정도"라며 "각종 정치적 직위의 공천이 정당의 유일한 역할처럼 돼 버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원내 중심의 조직이 단순히 원내 교섭단체의 활동으로 한정되는 상황"이라며 "지금 한나라당은 원내만 있고 원외는 없다"고 꼬집었다.
윤 전 소장은 또한 "두 번에 걸쳐 정권 장악에 실패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백서 한 권 출간하지 못한 정당이 한나라당"이라며 "한나라당은 정권을 되찾기 위해 지금 어떠한 전략을 구축하고 있느냐"고 추궁했다.
윤 전 소장은 이어 "투쟁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력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면서 "명분 없는 싸움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행히도 오늘 한나라당에는 이런 투쟁성을 찾기가 어렵고 또 투쟁이 있다고 해도 전근대적인 투쟁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장외투쟁'을 은근히 꼬집었다.
***"한나라,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이런 비판을 통해 윤 전 소장은 한나라당에 대한 제언도 덧붙였다.
그는 "단순히 시장을 찾고 공장을 방문하고 고아원을 찾는 식의 방식이 아니라 정책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고언했다.
또한 "과거처럼 영호남 지역구도에 편승하거나 보혁 대결의 갈등에서 반사이익을 확보-유지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고 표현했다.
윤 전 소장은 "한나라당은 특정 집단이나 세력만의 정당이 아닌 전체 국민과 민족의 정당으로 거듭나는 대변신과 대연대를 이룩해야 한다"면서 "현 집권세력에 맞서는 모든 사회세력을 총결집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어야만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전 소장의 발제문 전문.
***지방선거 시점에서 한나라당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1. 머리말
저는 한나라당의 발전을 바라고 한나라당이 우리 정치의 발전과 통합의 견인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뜻에서 저는 한나라당에 대한 3가지 기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희망사항일 수도 있고, 당위적인 지향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한나라당에 대한 고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한때 저의 열정을 불살랐던 정당의 미래를 위한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감 없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3가지의 기대는
첫째, 한나라당은 우리 시대에 맞는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명제입니다. 이른바 시대정신에 합당한 한나라당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의 소회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둘째, 한나라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세상살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이것을 상황 인식이라는 말로 적어 보려고 합니다.
셋째, 한나라당은 정당으로서의 본질과 구조에 대한 객관적인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 그 점에 대해서 저 개인이 갖고 있었던 생각의 일단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는 오늘의 한나라당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되살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2. 시대정신의 본질과 한나라당의 대응
저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을 두 가지로 파악합니다. 하나는 개방입니다. 다른 하나는 평화입니다. 개방은 자유와 평등으로 나아가는 정신적 자세요, 마음가짐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평화는 전쟁을 반대하는 반호전주의며, 동시에 모든 평화세력이나 전쟁에서의 피해민중이 하나의 동지적 관계로 어울리는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는 분명히 21세기의 시대정신입니다. 여기에 근거해서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추구하게 되고, 경제적으로는 시장주의에 입각한 번영의 시대로 달려가며, 사회적으로는 다양성을 기준으로 나와 다른 남이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 이러한 시대정신은 결단코 외면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곧 시대에 뒤떨어지는 낙오자가 된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이나 국가만이 아니라 정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을 개방과 평화로 규정했을 때 그것은 먼저 다음과 같은 논리적인 전제가 정립됩니다. 개방만 해도 그것은 폐쇄와는 정면으로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함께 손잡고 연대하면서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상호간에 이해도를 높이고, 나아가서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로 어울릴 수 있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사실 지난 20세기만 해도 국제사회는 개방보다는 독존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국가나 집단 사이에도 연대보다는 경쟁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민족주의를 강조하게 되었으며, 국제사회에서는 지역 동맹 체제가 중시되는 냉전체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나 집단이라도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더 세계를 가슴에 안고 저편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곧 패쇄적이거나 국수적인 관점에 젖어 자기 나라나 집단만을 절대시하는 민족주의적 쇼비니즘으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한 21세기의 또 다른 성격, 즉 평화는 반 전쟁주의적이고 반 대결적인 성격임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다 함께 손잡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칼과 창을 녹여 보습과 쟁기를 만드는 시대"를 창출하려는 것입니다. 대결과 대립, 갈등은 오늘의 이 시대에서는 지난날의 낡은 구습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립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피와 파괴일 뿐입니다. 설사 그러한 대결을 통해 승리를 얻었다 해도 그것은 한때의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치기에 불과합니다. 실로 우리는 전쟁에 대한 낡은 관념, 호전주의에 사로잡혀서 지난날을 살아 왔던 역사를 안고 있으며 그 전쟁에 지나칠 정도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전쟁을 통해 통일도 국가 건설도 국위 선양도 가능한 것처럼 믿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개방과 평화의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발붙인 이 땅의 시대정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분명히 지금 우리 주변에는 거대한 변화가 마치 눈사태처럼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또는 그러한 변화를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면서 심지어 그것에 맞서려는 움직임까지도 있는 것을 보면 아연할 뿐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실로 지금 우리의 시대를 양대 의식체계로 틀 지워놓는 역기류가 되어 서로 간에 대립하는 상황까지 조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다른 두 가지 역기류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려고 합니다.
1) 그 하나의 역기류는 고착적-인습적인 지속성입니다. 이는 오늘의 시대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거나 절감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의미부여조차도 거부하면서 오직 어제의 것에만 안주하려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의 시대성은 여전히 한국전쟁 시대의 의식에 그대로 포로가 된 것처럼 고착되고 그것이 마냥 되풀이됨으로써 하나의 인습처럼 지속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다른 하나의 역기류는 급진적-저항적 변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맑스를 말하고 알튀제를 주장하면서 문화 헤게모니를 전제하는 18세기적 이데올로기의 급진성에 스스로를 내 맡기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급진적 저항적 변혁성이라 할 만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인식에서는 무엇을 위해 급진적이며 누구를 위해 변혁을 추구하는가에 대해서 명백하게 설명하지 못한 채 단순히 교조적으로만 이데올로기적인 주장만을 내걸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 한국 사회의 시대성은 고착적-인습적 지속성으로 달려가는 한 부류의 역기류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적-저항적 변혁성의 역기류도 있습니다. 이들 양자 사이의 전개는 너무나 복합적이기 때문에 시대성에 대한 대립과 혼돈만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한나라당의 시대정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자문이 그것입니다. 저는 한나라당의 시대정신에 대한 인식을 다음과 같은 말로 규정하려고 합니다. "머리로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인식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전시대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혼돈에 놓여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 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한나라당은 그것이 놓여 있었던 각 시대의 역사성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에서 오는 가중된 혼돈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2) 한나라당은 시대정신을 인식하면서도 또 그것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수용양식의 제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한나라당은 시대정신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해서는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신킬 수 있는 당내 조정기구로서의 메카니즘을 갖지 못했으며 그러한 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4) 한나라당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대정신을 올바로 체득한 그 선도적인 사회세력과도 연대하면서 상호 협의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상관관계를 정립하려는 시도도, 또한 그러한 경험을 갖지 못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점에서 오늘 한나라당의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시대성을 올바로 인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데서 초래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3. 상황인식의 구조화와 한나라당의 지향
상황인식은 한 시대가 놓여 있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습과 성격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상황인식이야말로 우리가 놓여 있는 실제적인 모든 사람들의 삶의 근거지에 대한 의미이자 내용이며 그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 그것은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이자 실체라 해도 좋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인식을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의미로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갈등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전입니다.
갈등이야말로 우리사회의 첫 번째 구조적인 상황입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영역에서 무섭게 진행되는 대립이며 거의 투쟁단계로 돌입하는 대결입니다. 이러한 갈등의 구조화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거대한 체제적인 고착성으로 점점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갈등이 이루어졌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4단계로 전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신분적 갈등구조 : 우리 사회에서 해방 이후 최초로 나타났던 갈등은 신분관계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전근대적인 유습에 의해서 양반-중인-상민의 3대 신분구조의 지속성이 잔존되었던 사회상황에서 양반-지배층과 상민-피지배층의 이중 구조가 신분 평등의 해방에 즈음해서는 사실상 무의미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당시로부터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신분적인 대립과 갈등구조가 의식으로 잔존되었으며 끝내는 신분개념으로 자리잡는 특징을 보여주었으며 그 만큼 큰 영향력도 행사했고 또 지속되었습니다.
2) 권력적 갈등구조 : 신분적 갈등구조가 대체로 6.25 한국전쟁 이후에 상당부분 종식되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대신해서 권력이 중심이 된 특정 통치 세력의 발호에 따라 권력층과 피권력층의 양분적인 갈등구조를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권력을 배경으로 해서 모든 일들을 마음대로 좌우했던 특권층을 빗대어 "빽"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특권층의 발호는 심대해졌으며 여기에 맞서는 피지배층의 대립과 저항의식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3) 경제적 갈등구조 : 산업화를 통해서 경제발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가진자와 갖지 않은자 사이의 대립과 반목이 심각하게 나타났습니다. 재벌, 경영인 등 기업세력을 한 축으로 삼고 다른 한축에는 노동자들의 결집체로서의 노동조합이 그 대립각을 이루게 되는 경제적 갈등구조가 우리사회에서 이제는 갈등의 기본축이 되고 말았습니다.
4) 정치적 갈등구조 : 70년대를 전후로 민주화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갈등구조가 또다른 기본적인 축이 되어 사회변혁의 의미로 내달리는 사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민주화의 의미는 단순히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의 확립이나 민주정치의 실현보다는 기존의 권력층을 몰아내고 피지배 민중들에 의한 새로운 권력체계의 확립으로 내달리는 대 변혁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갈등의 4 단계적 전개가 하나가 끝나고 다른 하나가 생기는 계기성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먼저의 갈등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갈등이 덧붙여지는 갈등의 중첩구조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지금의 우리 사회는 갈등의 중첩 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갈등과 대립이 일상화되었습니다. 하루라도 가두시위가 없는 날이 없고 파업이 없는 기간이 없는 갈등의 표출로 날이 새고 달이 갑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사회는 정상적인 타협이나 의견의 조정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보다는 당장 기존의 질서나 위계구조에 대해서는 맹목적일 정도로 도전하는 것이 전부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도전의 일상화가 곧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성격처럼 되고 말았으며 그 도전이 일으키는 파고가 우리사회 전체를 알 수없는 곳으로 내밀어 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한나라당은 지금 어디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한나라당은 갈등을 해결하고 대립을 완화하면서 사회를 통합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까? 아니면 갈등의 어느 한편에 가담해서 그 한편만을 위해 손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한나라당은 지금 우리 사회의 재벌 등 가진자들을 위해서 손들어 주는 그들의 지원세력입니까, 아니면 가진자에 맞서서 투쟁하는 갖지 못한 자의 우군입니까?
지금 한나라당은 이편도 저편도 아닌 오직 정의만을 위한 엄정한 존재이며 바람직한 통합을 위해 애쓰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재벌과 같은 가진자의 이익을 국가와 사회의 전체적인 이익처럼 생각하는, 가진자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가진자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오해받을 행동을 한 것은 없었습니까?
한나라당이 한국사회 갈등구조의 핵심에 놓여 있고, 도전세력의 지속적인 공세를 받는 존재라는 그 사실 자체가 오늘 한나라당의 위치에 대한 자기 한계를 의미합니다. 갈등구조나 도전에서 정당하고도 가치로운 것을 선점해서 부당한 것이면 한사코 맞서고 그것을 몰아내는 의연함과 엄정함이 한나라당에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위기 상황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4. 한나라당의 위기
지금 한나라당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시대정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결여에서 오는 위기입니다. 시대정신을 잃은 정당은 정권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정권 담당자들의 보조자로 기능하는 한계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설사 정권을 잡았다 해도 국민 전체의 것으로 견인하는 데는 한계에 놓이고 맙니다. 이 점이 오늘 한나라당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제가 앞에서 말한 사회구조에서도 한나라당은 일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지금 우리 사회의 어느 계층을 대변하고, 어느 사회세력과 연대하면서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갈등구조에서도, 도전의 사회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은 우군을 갖지 못했으며 고립무원의 존재처럼 밀려나고 있는 것이 현실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영원한 우군, 철두철미한 지원세력, 그리고 동지적 연대"를 국민 속에 이룩할 수 없다면 그 정당의 미래는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오늘 한나라당의 우군은 누구입니까? 사회의 어느 세력이 확실한 지지 세력의 근간입니까?
저는 이러한 상황은 바로 한나라당의 내부 문제에서도 설명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조직체계의 한계 : 한나라당은 국민정당입니다. 국민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을 보면 특정 정치적 직위만을 위한, 즉 국회의원, 시도지사,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의원이 되기 위한 조직체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각종 정치적 직위의 공천이 정당의 유일한 역할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원내 중심의 조직이 단순히 원내 교섭단체의 활동으로 한정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정당 원외의 튼튼한 지원적인 조직과 활동에서만 효과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지금 한나라당은 원내만 있고 원외는 없습니다.
2)전략의 열세 : 제가 가장 가슴 아픈 것의 하나는 한나라당의 전략적 열세입니다. 한나라당은 정권을 되찾기 위해 지금 어떠한 전략을 구축하고 있습니까? 한나라당의 중장기 정책은 물론이고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인 전략은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정권 장악에 실패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백서" 한 권 출간하지 못한 정당이 한나라당입니다. 김대업 사건, 설훈 사건 등으로 그처럼 큰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연구보고서 한 권 없는 정당이 지금의 한나라당입니다. 저는 당장 이번 지자제 선거의 기본 전략과 각 지역이나 영역별 전략은 무엇인지 물어 보고 싶습니다. 전략이 없으면 정치적 승리는 장담할 수 없기에 효율적인 전략의 설정이야말로 한나라당에서 가장 필요한 것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3)투쟁성의 결여 : 정당은 신사들의 사교 클럽이 아닙니다. 정당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역사를 책임지는 치열한 투쟁의 전위대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의 투쟁성은 얼마나 치열하며, 얼마나 효과적이며, 얼마나 지속적입니까? 투쟁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력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명분 없는 싸움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번 싸움을 걸면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 한나라당에는 이러한 투쟁성을 찾기가 어렵고 또 투쟁이 있다 해도 그것은 전근대적인 투쟁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4)헌신성의 부족 : 한나라당은 군림해 온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소외받는 국민들의 이웃이어야 합니다. 실업자와 가난한 지역주민의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고생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동지로 다가서야 합니다. '참 보수'야말로 가난한 형제를 위하여 옷을 번져 주고 헐벗은 아이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참 인간주의' 그 자체입니다. 이제야말로 한나라당이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5)연대성의 미흡 : 한나라당의 당원들은 단순히 직위와 공천을 위한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민족의 내일을 위한 이념의 동지로 뭉쳐져야 합니다. 이 점에서 한나라당원들 사이의 경쟁은 대립이 아닌 동지적 경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한나라당에서 일어나는 경쟁구도를 보면 이 문제에 대한 적지 않는 한계를 갖게 됩니다.
5. 한나라당을 위하여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저의 소견의 일단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한나라당의 내일을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은 첫째로 시대정신과 사회구조의 상황인식에 적실성이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이번 지자제 선거와 이 다음의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이번의 선거를 기회로 한나라당 스스로 시대정신과 상황인식에 절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둘째로 한나라당의 당직자나 당원이 모두 국민정당의 존재성을 절감함으로써 국민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단순히 시장을 찾고 공장을 방문하고 고아원을 찾는 식의 방식이 아니라 정책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정당은 정책으로 국민들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셋째로 한나라당은 과거처럼 영호남 지역구도에 편승하거나, 보혁 대결의 갈등에서 반사이익을 확보, 유지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한나라당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어느 경영혁신 책 제목처럼 '익숙한 것과의 결별'입니다. "변하라,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라는 말은 지금의 한나라당에게 매우 적절한 주문입니다.
넷째로 한나라당은 특정 집단이나 세력만의 정당이 아닌, 전체 국민과 민족의 정당으로 거듭나는 대 변신과 대 연대를 이룩해야 합니다. 현 집권 세력에 맞서는 모든 사회 세력을 총 결집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어야만 한나라당은 잃었던 10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 세력들만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는 다수의 아픔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지금 어떤 정치세력보다도 큰 항아리에 물울 가득 담고 있습니다. 현재대로라면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항아리의 물은 더욱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항아리는 쉽게 깨어질 수 있으며 한번 깨지면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항아리를 지키고 물을 채우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항아리 속에 담긴 물입니다. 그 물이 맑고 신선한 물이라면 국민들이 한나라당의 항아리를 아끼고 보호하겠지만 그 물이 썩거나 오염된 물이라면 국민들은 가차없이 항아리를 깰 것입니다. 그것이 2002년 대선 패배의 교훈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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