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진출했다가 지난 해 K리그로 복귀하면서 한때 축구를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8일 오후 벌어지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도쿄 베르디와의 경기를 앞두고 열린 인터뷰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윙 포워드 이천수(울산)가 한 말이다.
이천수는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있었던 지난 해 8월 사우디 아라비아 전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때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본 것은 축구를 시작한 뒤 그 때가 처음이었다. 경기 전날 엔트리에 내 이름이 빠져 있어 집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했지만 들어주지도 않았다. 그 때 악이 받쳤다."
이천수는 "본프레레 감독이 계속 있었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아드보카트 감독으로) 바뀐 게 내게는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천수는 이듬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했다. 당시 K리그에 뛰고 있던 이천수는 6경기 연속골을 넣고 기억에 남는 골 세리머니를 했다. 이천수는 '유럽 진출 밑거름, K리그 더욱 사랑해 주세요'라고 적힌 속옷을 팬들에게 보였다. 멋진 작별인사였다.
하지만 이천수의 스페인 행은 실패작으로 끝났다. 골이 될법한 슛도 골 포스트에 맞고 나오는 등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결국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하위 팀인 누만시아로 임대됐고 이천수는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슬럼프를 동시에 겪었다.
2005년 이천수는 결국 K리그로 U턴했다. 적지 않은 축구 팬들은 '이천수는 이제 틀렸어'라며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축구는 발로 하는 것이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며 2002년 월드컵 때부터 톡톡 튀는 특유의 화법을 선보인 이천수를 질타하기도 했다.
자존심 하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이천수로서는 팬들의 따가운 시선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축구 선수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이천수는 지난 시즌 K리그에서 소속팀 울산을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 선수상까지 받았다. 스페인의 악몽을 훌훌 털고 자신감을 찾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본프레레호에서 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이천수는 지난 1월 16일부터 시작된 해외 전지훈련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죽기살기로 뛰어 반드시 주전경쟁에서 살아 남겠다"는 이천수의 야심찬 각오는 그라운드에서 나타났다. 이천수는 3골 2도움으로 공격수 가운데 가장 빛나는 활약을 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강조하는 공격수의 수비가담이라는 측면에서 이천수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천수는 취재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 중 하나다. '최선을 다하겠다.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 등과 같은 상투적인 말 대신에 기사로 쓸 만한 재미있는 얘기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이천수는 팬들에게 쓸데 없는 오해를 산 적도 있었다. '입천수', '혀컴'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짙게 배어 있는 그의 별명도 이렇게 붙었다.
이천수는 지난 달 28일 대표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인터넷을 통해 본) 나에 대한 팬들의 의견이 예전에 비해 좋아진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 간 자신을 둘러싼 팬들의 비난이 얼마나 거셌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이천수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부임이 내겐 행운이었다"고 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더 큰 행운은 스페인에서 겪은 좌절과 시련이었을지도 모른다. 축구 선수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채찍질 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 네덜란드 토털축구의 사령관이었던 요한 크루이프는 "모든 손실에는 반드시 이득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이천수가 스페인에서 보낸 2년이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라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성장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독일 월드컵에서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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