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증명 우편. 생소한 법률용어다.
보통 소송을 준비 중인 당사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편지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보낼 편지를 복사해서 우체국에 가져간다. 복사본과 정본이 일치하는지 확인받은 후, 복사본은 우체국에 맡기고 정본만 보낸다.
왜 이렇게 복잡한 편지를 보낼까. 자신은 편지를 보냈지만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고 발뺌을 하게 되면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분명히 보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는 것이다. 정보통신부가 문서의 내용과 보낸 날짜를 공식 증명해 준다.
***정부, 국회제출 문서를 내용증명 우편으로 발송**
정부와 국회 사이에 내용증명 우편이 등장했다. 정부와 국회가 법정소송을 준비하나?
사연은 이렇다.
지금은 정기국회 회기중이다. 예산회계법상 정기국회 개회일까지 정부가 반드시 국회에 제출해야 할 문서들이 있다. 2001회계연도 세입세출결산, 2001회계연도 기금 결산과 예비비 사용총괄서 같은 것들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 이 문서들을 제출했다.
그런데 국회는 문서접수를 거부했다.
헌법 82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정부가 보낸 문서에는 총리 부서가 빠져 있어서 반송한다는 것이다. 총리가 없으니 총리 부서가 빠져 있을 수밖에.
이에 대해 정부는 '총리가 공석일 경우에는 관계 국무위원만 부서하면 된다'며 문서들을 재차 국회에 보냈다.
여기 등장한 게 내용증명 우편이다.
정부가 국회 제출기한을 어기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내용증명 우편으로 보낸 것이다.
***'위헌이다', '아니다' 팽팽한 대치**
그런데 3일 국회는 재제출된 문서들을 다시 반송했다. 신경전이고 줄다리기다.
국회는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총리대행체제로 운영하든지 아니면 빨리 총리서리를 임명해서 부서가 된 문서를 보내라는 것이다. 총리서리 자체에 대한 위헌논란이 있긴 하지만 총리서리의 부서가 있는 문서를 접수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받아주겠다고 한다.
반면 총리실은 총리가 문서 부서를 거부한 경우라면 몰라도 아예 총리가 공석인 경우의 부서 결여에 대해선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위헌 논란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팽팽한 대치다. 이러다 예결산 심의와 법안 처리에 큰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문제이긴 하다. 청와대는 금주 중 총리서리를 임명하겠다고 했으니, 새로 지명된 총리서리가 부서해서 문서를 보내면 국회는 접수할 것이다.
***국민들은 뭐라 할까?**
하지만 국회와 정부 사이에 내용증명 우편까지 등장한 이 기막힌 현실을 뭐라 불러야 옳을까? 국민들은 뭐라 할까?
오기와 고집, 기 싸움으로 뒤범벅된 정치판의 오염물이 사방팔방으로 튀고 있는 형국이다.
'문서 핑퐁게임'에 매달려 있을 정부와 국회의 담당 공무원들 입에서 어떤 '욕지거리'가 튀어 나오고 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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