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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버그의 <버블>, 세계 영화계도 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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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버그의 <버블>, 세계 영화계도 버블?

[특집] 극장, DVD, 케이블 동시 개봉 영화로 파장

올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관타나모로 가는 길>(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두 가지 화제를 낳았다. 첫째는 적법한 절차 없이 미군 기지에 억류된 아랍계 영국인의 실화를 그려 정치적 논란을 일으킨 것. 하지만 영화제가 끝날 무렵 또다른 소식이 관심을 끌었다. 이 영화의 개봉 방식이 전통적인 영화 개봉과는 다른 길을 취할 것이라는 소식이 '스크린데일리'와 BBC 인터넷판 등을 통해 퍼진 것이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BBC가 일부 제작비를 투자했고, 따라서 극장에 올리기 전 TV에서 먼저 방영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작진은 한술 더 떴다. TV 방영 직후 극장 개봉뿐 아니라 DVD와 인터넷으로도 공개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존 영화산업의 질서에서 볼 때 돌연변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라는 콘텐츠는 전통적으로 일단 극장에서 개봉된 뒤 비디오나 DVD로 출시되고, 그 다음 유료 케이블 TV와 VOD, 공중파 TV 등에 순차적으로 풀리는 순서를 밟아 왔다. 하지만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이 순서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재 이 영화는 3월 9일 BBC 4채널에서 방영된 뒤 이튿날인 10일 극장에 개봉될 예정. TV에서 먼저 방영된 이 영화가 과연 극장에서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 <버블>, 창구 동시 개봉의 회오리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 이런 배급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신작 <버블> 덕분이다. 지난 1월 27일 미국 랜드마크 시어터 체인 32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버블>은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후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버블>이 극장에서 개봉된 바로 그날 밤 유료 케이블 TV 채널인 HDNet 무비스에 이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나흘 뒤인 1월 31일 DVD로 일제히 발매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극장 개봉작이 DVD로 출시되기까지 평균 4개월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버블>의 행보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아니, 이것은 단순히 '파격'이 아니라 100여 년 미국 영화산업의 구조적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버블 ⓒ프레시안무비
더구나 <버블>의 감독이 스티븐 소더버그라는 사실은 미국 주류 영화계 인사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에린 브로코비치><트래픽><오션스 일레븐> 등을 거치며 당당히 A급 감독 반열에 오른 소더버그가 할리우드의 시스템에 흠집을 낸다는 것이 영 못마땅했던 것이다. 동료 감독들은 <버블>처럼 극장과 DVD로 동시에 개봉하는 영화는 '영화 보기의 은밀한 매력'을 감소시킨다고 비난했다. 영화는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봐야만 그 미학적 진가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극장주들은 <버블>처럼 DVD로 동시 개봉되는 영화가 늘어나면 미국의 극장 매출액은 더욱 떨어질 거라며 불평했다. AMC 시네마나 리걸 시네마 등 미 전역에 3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 극장들은 절대 <버블>에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전미 극장주협회 대표인 존 피시언 역시 "영화 개봉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죽음에의 위협(death threat)"이라면서, 이런 개봉 방식이 일반화되면 미국 영화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버블> 자체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 만한 영화는 아니다. 16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저예산 영화는 그 자체로 실험적인 정신으로 충만하다. 배경은 미국 중부 오하이오 주 작은 마을 파커스버그의 한 인형 공장. 여기서 근무하는 뚱뚱한 중년 여성 마사(데비 도버라이너)와 내성적인 청년 카일(더스틴 제임스 애슐리)은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한데 이들 사이에 매력적인 미혼모 로즈(미스티 던 윌킨스)가 끼어든다. 카일과 로즈가 가까워지면서 마사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로즈가 살해당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버블>은 우리가 할리우드의 번지르르한 영화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황량하고 쓸쓸한 정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소더버그는 할리우드 주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제작 방식을 택했다. 먼저 오하이오와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살고 있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을 배우로 캐스팅했다. 또한 배우들과의 밀착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직접 영화 내용에 반영했다. 카메라는 배우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조명도 최소화했다. 풀 HD 카메라로 찍은 영화는 매우 거칠지만 탄탄한 긴장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소더버그는 이러한 제작 과정을 DVD 서플먼트와 음성해설을 통해 자세히 밝혔다. <버블> DVD 가격은 미국 평균 DVD 타이틀 가격보다 약간 비싼 29달러에 책정됐지만, 그만큼 극장에서 접할 수 없는 보너스 피처를 듬뿍 담고 있다. 극장에 가거나 케이블 TV로 영화를 보지 않는, DVD를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 <버블><굿 나잇, 앤 굿 럭>으로 약진한 2929 엔터테인먼트 이 도발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는 최근 할리우드에 작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마크 큐번과 토드 와그너. 1995년 브로드캐스트닷컴(broadcast.com)을 설립한 사업 파트너인 둘은 4년 뒤 이 회사를 야후에 57억 달러에 팔아 갑부가 되었다. 마크 큐번은 그 돈으로 NBA 구단인 댈러스 매버릭스를 사들여 크게 주가를 높였고, 토드 와그너는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위한 기반을 닦았다. 그 뒤 이들은 2929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를 차린 뒤 조금씩 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로잔나 아퀘트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데브라 윙어를 찾아서>(2002),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한 <갓센드>(2004) 등이 이들의 초기 영화였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2929 엔터테인먼트를 모회사로 각종 영화 관련 자회사를 편입시켰다는 사실. LA를 기반으로 한 2929 프로덕션, 뉴욕을 기반으로 한 HDNet 필름스라는 두 개의 제작사를 두었으며, 배급사인 매그놀리아 픽처스와 예술영화 극장 체인인 랜드마크 시어터, 케이블 TV 채널인 HDNet과 HDNet 무비스, 그리고 홈비디오 회사인 매그놀리아 홈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가지를 쳐나갔다. 영화 제작에서 극장 상영과 DVD 출시, TV 상영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수직 계열화된 회사들을 토대로 통합한 것이다.
굿 나잇, 앤 굿 럭 ⓒ프레시안무비
2929 엔터테인먼트는 독립 예술영화 관객들을 위한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늘려나갔다. 존 C.라일리와 메기 질렌할이 출연한 <크리미널 Criminal>(2004),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키라 나이틀리가 주연을 맡은 <재킷 The Jacket>(2005) 도 그들의 영화다. 그러나 2929 엔터테인먼트의 명성을 확고히 다진 토대가 된 작품은 화제의 다큐멘터리 <엔론 Enron: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2005)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 스캔들로 꼽히는 엔론의 파산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마크 큐번와 토드 와그너는 4월 중순 미국에 이 영화를 개봉하면서 처음으로 여러 개의 창구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방식을 택했다. 랜드마크 극장 체인에서 개봉하던 날 바로 케이블 TV인 HDNet 무비스에서 상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봉 방식이 극장 수입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엔론>은 극장에서만 4백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여 역대 다큐멘터리 가운데 흥행 14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DVD 판매량 역시 상당히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마크 큐번은 자신의 블로그(www.blogmaverick.com) 2월 3일자 포스팅에 이렇게 썼다. "<엔론>에 대한 나의 유일한 후회라면,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동시에 DVD를 배급할 매그놀리아 홈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지 않은 것이다. <엔론>이 극장과 HDNet 무비에 개봉할 때 동시에 DVD를 발매하지 않는 바람에 엄청난 돈을 잃었다." 마크 큐번이 다음 프로젝트인 <버블>을 극장과 케이블 TV 외에도 DVD 발매를 동시에 추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929 엔터테인먼트를 할리우드의 신흥 강자로 부각시킨 또다른 영화는 바로 조지 클루니 감독의 <굿 나잇 앤 굿 럭>이다.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던 CBS 방송 제작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이후 평단과 흥행의 고른 지지를 얻었다. 2929 프로덕션과 조지 클루니와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사인 섹션 8 등이 공동 제작한 이 영화는 미국 내에서는 워너 인디펜던트 픽처스가 배급을 담당했지만, 그밖의 모든 해외 세일즈는 2929 인터내셔널이 맡았다. 제작 총지휘자로 크레딧을 올린 마크 큐번과 토드 와그너가 이 영화의 성공에 반색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굿 나잇, 앤 굿 럭>이 올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고, <엔론> 역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후보에 오름으로써 2929 엔터테인먼트의 미국 주류 영화계 진입이 확고해졌다. 마치 10여 년 전 미라맥스의 와인스타인 형제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큐번과 와그너는 그보다 더욱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할리우드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이들은 20여 편의 영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는 상태다. .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위기 반영 앞으로 스티븐 소더버그는 2929 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창구 동시 개봉하는 HD 영화를 다섯 편 더 연출할 예정이다. 소더버그는 그간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미국의 소외된 지역을 탐색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더버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일종의 '아메리카나'에 대한 영화의 퀼트를 만드는 것"이다. 2929 엔터테인먼트 역시 소더버그 외에도 미국 독립영화계의 여러 인재들을 포섭해 이와 같은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마크 큐번은 독립 예술영화의 경우 이러한 배급 방식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욱 이득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전략은 주류 영화 문화에서 소외돼 있는 일부 관객들을 겨냥한 것이다. 현재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미국의 주요 멀티플렉스는 좀더 지적인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는 전혀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극장에 갈 수 없는 관객들에게는 TV나 DVD로 극장 화제작을 동시에 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버블 ⓒ프레시안무비
현재 <버블>은 32개 스크린에서 약 15만 달러의 수입을 거둔 상태. 이를 두고 <버블>에 적대적인 영화인과 일부 언론은 "당연하고도 다행스러운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배급사 매그놀리아 픽처스는 <버블>의 DVD가 약 10만 장의 선주문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약 5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고 있는 상태다. 어쨌든 <버블>을 둘러싼 화제는 현재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극장 매출액 감소와 DVD 판매량 둔화, 불법 콘텐츠의 유통 등으로 지금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나온 방편일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창구 동시 개봉 영화 배급 방식이 어느 정도 정착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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