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어떤 치정살인극 같은 것을 연상하게 하지만,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2차 대전 당시 저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되던 무렵, 소련군 진영에 불세출의 저격수(쥬드 로)가 등장하여 적의 주요 인물들을 하나 둘씩 제거, 전군의 사기를 드높인다. 이에 위기를 느낀 독일군은 전설적인 그들의 저격수(에드 해리스)를 불러들이고, 드디어 이 두 마리 맹수 사이에 싸늘하고 팽팽한 대결이 매일 같이 연속되는데...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물론 두 명배우의 연기 대결이다. 에드 해리스가 원숙한 남성미의 상징이라면 쥬드 로는 유니섹스적인 인물의 전형. 그러나 냉정한 킬러라는 점에서 둘은 차이가 없다. 누가 더 철저하고 누가 더 정확한가가 결국 게임의 승부를 가를 뿐이다. 대결이 장기화됨에 따라 둘 사이에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묘한 친근감이 교차되는데, 감독은 다양한 공간적 설정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총구로 상징되는 극단적으로 축소된 공간과 도시라는 광대한 공간의 두 무대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다. 영화 도입부에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비좁은 군수송열차의 답답한 공간은 열차가 스탈린그라드에 도착하면서 도시 전체에 대한 조망으로 확대되며, 그 대비의 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온통 불타오르고 있는 도시의 폐허가 주는 비극적 장엄함은 폐쇄공포증을 유발하는 기차 내부의 장면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더욱 더 증폭된다. (그 좁은 곳에서 여주인공은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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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앳 더 게이트 ⓒ프레시안무비 |
좁은 파인더를 통해서 극단적으로 확대되어 보이는 적은 더 이상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는 얼굴에 뾰두라지가 있고 자기만의 표정이 있으며 멀리서 꼬물거리는 과녁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저격수는 일반 군인과는 다르다. 그는 감정을 극도로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쥬드 로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늑대 사냥을 배울 때처럼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그의 몸과 마음이 모두 돌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공간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어쩔 수 없는 친근함은 그가 인간인 이상 그를 괴롭힌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적과 애인을 모두 좁은 공간을 매개로 조우하고 있었다. 전투 장면에 이르면 영화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축소하고 확대하기 시작한다. 공간을 넓게 쓰는 장면에서는 카메라의 위치도 동시에 올라간다. 그래서 적과 아군의 움직임을 동시에 보여주며, 이것은 마치 비디오 게임에서처럼 관객을 묘하게 장면 속으로 참여시키는 힘이 있다. 두 킬러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노리지만 동시에 그들은 총을 통해 상대를 가늠하고 이해하고 또한 예측하려 한다. 그들에게는 총이 일종이 대화의 도구다. 그래서 동료 저격수와 작전을 마치고 복귀하다가 벽에 구멍이 생긴 부분을 뛰어 건너는 그 짧은 순간, 미리 매복하고 있던 적에게 동료를 잃은 쥬드 로는 심각한 좌절에 빠진다. 상대는 백 마디 말이 아닌 단 한 발의 총성을 통해 자신의 그 무시무시한 실체에 대해 모두 이야기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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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앳 더 게이트 ⓒ프레시안무비 |
이 둘의 마지막 대결은 광막한 도시의 폐허를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둘 사이를 오가며 이중첩자 노릇을 하다가 에드 헤리스에게 죽임을 당한 어린 소년의 시체가 허공에 달려 있는 바로 그 도시에서 두 킬러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마지막 승부는 결국 심리전이 된다. 누가 더 정확한 저격수인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게임은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둘은 파인더가 아닌 육안으로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상대를 바라본다. 이미 승자는 정해져 있다. 결국 한 발의 총성이 길고 지리한 그간의 대화에 종지부를 찍는다. 영화는 조금 더 계속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족에 가깝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저격수의 눈을 통해서 바라 본 전쟁이 일반적인 전쟁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전혀 다른 공간적 체험을 수반하다. 저격수는 너무나 생생하게 보이는 적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그 무엇을 느끼며, 동시에 이를 무시해야 한다. 공간적 스케일과 시선은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매우 '건축적'인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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