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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한 다수도 쿼터 축소반대투쟁에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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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한 다수도 쿼터 축소반대투쟁에 가세

[특집] 중견영화평론가 김영진, 축소찬성론자 조희문 글 반박

조희문 상명대 영화학부 교수가 뉴 라이트 진영의 인터넷 사이트에 기고한 글 「최민식 씨, 국민들은 뭘 모르는 것 같은가?」가 영화계 안팎으로 큰 논란과 비판을 불러 일으킨 가운데 중견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15일 자신이 소속된 영화전문지 FILM2.0의 인터넷 사이트에 긴급제언의 형식으로 조 씨의 글을 반박하는 「마녀사냥은 이제 그만」을 올려 스크린쿼터 사태를 둘러싼 논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김 씨의 이번 글은 특히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에 대해 그 동안 '비판적 지지'의 입장, 곧 축소 현실론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쿼터제도의 정당성과 그 원칙에 대해 지지 입장을 가져 온 이른바 '온건한 다수'까지도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와 함께 대정부 투쟁에 참여할 움직임을 가시화 하는 것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진 씨는 이번 글을 통해 "조희문 교수가 정부의 쿼터 축소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지지 옹호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감정적 논리로 일관했다"면서 "이것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조장하는 꼴"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김 씨가 조 씨를 '감정적 선동주의자'로 비판한 데에는, 조 씨가 자신의 글에서 현재의 영화계와 1인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스타급 배우들, 특히 최민식 씨를 향해 "장가간 아들이 번쩍거리는 외제차를 타고 시골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서는 '아직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러는데 손자들 다 클 때까지 돌봐주고 생활비도 계속 보내 달라'고 한다"는 식으로 언급한 부분 때문. 이에 대해 김영진 씨는 조희문 교수가 '한국영화계 전체를 잘 나가는 스타배우들의 위상과 동격으로 놓아 공격하려는 교묘한 계산을 숨긴 채 최민식 씨가 스크린 쿼터 유지 옹호를 위한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그를 과녁으로 지목해 도마에 올렸다'고 반박했다. 김영진 씨는 또 영화시장의 개방은 궁극적으로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조희문 교수와 재경부 및 외교통상부 등 정부의 주장에 대해 "한국영화의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지 못한 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1988년 당시 UIP 등 할리우드의 직배(직접배급)가 이루어진 시기에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최악의 수치를 나타냈음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이는 곧 '개방=한국영화의 경쟁력 강화'의 논리는 허구이며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성장한 실제 이유는 스크린쿼터라는 안전판과 함께 내부 시스템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던 영화계 내부의 절박한 자기노력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영화의 경쟁력 강화는 오히려 스크린쿼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김영진 씨 글의 골자다. 김 씨의 이번 글은 조희문 교수와 같은 '준비된 경제논리자'에 맞서는 대항논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스크린쿼터 사수투쟁 진영에 새로운 원군으로 작용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쿼터 투쟁 진영은 17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의 촛불집회를 강행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쿼터 논란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 오동진 프레시안무비 수석기자 . 다음은 김영진 씨의 글 「마녀사냥은 이제 그만」의 전문.
스크린 쿼터 폐지를 주장하며 배우 최민식을 공격한 조희문 교수의 칼럼은 쿼터 축소 논란을 통해 대중문화 종사자들의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일부 언론의 논조와 비슷한 불편함을 던져주었다. 적어도 영화전문가라면 좀 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유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분열이 더 큰 분열을 낳고 갈등이 더 큰 갈등으로 확대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하지는 말아야 한다. 상명대 영화과 조희문 교수가 12일 뉴라이트 닷컴에 '최민식씨에게 묻습니다'란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스크린 쿼터의 존재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이 대담한 글은 여러 언론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삽시간에 상당한 반향을 얻었다. 그의 글은 '최민식씨에게 묻습니다'라는 제목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특정인을 겨냥해 마녀사냥을 기획하고 사안의 복합성을 단순화시켜 정해진 결론을 내린다.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학자인 그가 왜 이런 문제에 대해 객관성을 가장한 감정적인 선동으로 생산적인 토론의 활로를 망쳐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이미 2004년에 스크린 쿼터 축소 논란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 지지 입장을 글로 밝힌 적이 있지만, 그 입장에서 별로 수정할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희문 교수의 글에 대해서는 뭔가 발언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학자나 비평가는 당면한 영화계의 문제를 균형감각 있게 다뤄야 하는 직업인들이라고 믿는다. 조희문 교수의 글에는 그런 균형감각이 결여돼 있었다. 십 수 년 전부터 일관되게 스크린 쿼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표명해온 전문가가 내놓는 식견으로선 동의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고,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을 통해 대중문화 종사자들의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일부 언론의 논조와 비슷한 불편함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화전문가라면 좀 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유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분열이 더 큰 분열을 낳고 갈등이 더 큰 갈등으로 확대되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국영화 발전은 영화시장 개방 덕분? 조희문 교수는 이 칼럼에서 일관되게 영화시장의 개방은 한국영화의 경쟁력 강화를 낳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확신하는 이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최근 한국영화가 걸어온 길을 속 편하게 뒤틀어 자기 식으로 끼워 맞춘다. 그는 먼저 한국영화계가 위기라고 엄살을 부리는 일부 영화인들의 이면에 있는 현실에선 늘 대박영화가 존재했고 그 자명한 성공의 훈장이 스크린 쿼터 유지론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지레 염려하고 있다.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왕의 남자>와 <투사부 일체>를 예로 든 그는 '한국영화가 붕괴위기에 빠졌다고 한숨쉬던' 1991년에도 <서편제>, <투캅스> 같은 영화가 선풍을 일으키며 패배주의적 분위기를 바꾸었다고 말한다. 2006년과 1991년을 간단하게 등치시키는 그의 시간감각은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국영화계가 어떤 시절을 겪었는지에 관한 진실을 감추고 혹세무민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 1991년은 역사적으로 드물게 한국영화가 바닥을 치는 시장 점유율을 기록한 해였고 한국영화는 대중문화의 천덕꾸러기였으며 현장의 영화인들은 한국영화가 지구상에서 어쩌면 영영 존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라면 흥행에서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공자님 말씀같은 논리를 포장하기 위해 동원되는 이런 수사는 그냥 넘어간다 해도,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영화 시장 개방 정당화 논리는 미국영화 직배반대 투쟁이 있었던 1988년의 사건을 언급할 때부터 심하게 울퉁불퉁해지기 시작한다. 조희문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영화직배는 한국영화계의 질적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시장개방으로 경쟁에 몰린 영화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질 좋은 한국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미국영화 수입이 자유화된 후 예전에 비해 훨씬 늘어난 숫자의 영화들이 극장에 쏟아지며 극장 인프라의 환경 개선을 촉진시켰고, 시설이 좋아진 극장을 관객들이 더 많이 찾기 시작하자 한국영화들도 덩달아 흥행에 선전한 결과 오늘날의 한국영화산업 부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그때 외국영화직배를 반대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사과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조희문 교수는 심지어 미국영화 개방이 한국영화계의 체질 개선을 이뤄냈다는 과감한 논리까지 동원하고 있다. 한국영화 발전의 원동력은 개방이 아닌 영화인들의 절박함이었다! 상황의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개방=발전이라는 등식을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된 이 단순논리 공식은 한국영화의 역사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도 갖추지 못한 학생들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치욕스런 사고의 산물이다. 조희문 교수의 말대로 미국영화직배 당시 한국영화계는 역사상 가장 어두운 암흑기의 맨 끝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마련된 영화사 허가제는 소수의 제작사들에게 영화산업을 독과점할 권리를 주었다. 영화를 정책 홍보수단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던 역대 독재정권 체제에서 소수의 영화자본가들이 의무적으로 한국영화를 대충 제작했고 실제 수익은 외화 수입을 통해 거둬들였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영화계가 전근대적이었다는 조희문 교수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미국영화 직배 투쟁이 그 체제 안주적이고 기득권 수호에 급급했던 일부 영화 제작자들과 수입업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단정하는 그의 시각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글의 흐름에 따라 현재의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도 소수의 영화자본가를 옹호하는 그릇된 싸움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독자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싶었겠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 당시 미국영화 직배를 반대했던 대다수의 영화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자식의 심정으로 오랫동안 통제만 받고 지원은 없었던 영화계의 현실에 비춰 미국영화의 직배가 소수의 영화자본가들을 멸망시키는 길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자신들의 미래를 막을 것이라는 암담한 마음으로 미국영화직배를 반대했던 것이다. 그때 아직 영화계의 주류가 아니었던 상당수의 제작자, 감독, 배우, 기타 스탭들의 절박했던 심정이 오늘날의 한국영화산업을 이끄는 에너지가 된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희문 교수는 스크린 쿼터가 한국영화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가의 보도라면 미국영화 수입이 자유화됐을 때도 반대하지 않는 것이 일관된 태도가 아니었겠느냐고 말한다. 스크린 쿼터는 영화산업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며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스크린 쿼터 제도가 한국영화산업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었다는 점을 따로 강조해야 한다. 그때부터 펼쳐진 상황은 조희문 교수의 주장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영화 직배가 시작된 후 몇 년 동안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조희문 교수가 대박영화로 거론했던 <서편제>와 <투캅스>가 나왔던 (조희문 교수는 1991년으로 당겨 말했지만) 1993년에도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형편없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신문 잡지에서 한국영화에 관해 가장 많이 보고 들은 말은 '위기'라는 것이었다. 산업적으로 장밋빛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고 사실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내가 영화주간지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무렵에도 한국영화계는 위기였다. 스크린쿼터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 위기에 서서히 출구를 마련해준 것은 한국영화계 내부의 시스템의 변화다. 88 올림픽을 전후로 비디오데크가 각 가정의 거실에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영상 콘텐츠 확보의 필요성을 느낀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한국영화계는 처음으로 대자본이 들어온 규모의 영화산업이 무엇인지에 관해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나 이는 더디게 진행됐다. 대자본을 등에 업고 젊은 제작자들이 주류로 올라서며 세대교체를 이뤘던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영화계의 산업적 미래는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한국의 젊은 영화제작자들은 변화된 투자 환경에 의지해 할리우드의 물량 편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제작과 배급 유통을 아우르는 메이저 영화사의 형태를 꾀하려 들었다. 할리우드 직배사들 처럼 일 년에 10 편 이상의 영화를 배급하는 시네마 서비스와 같은 제작사가 자기 골격을 갖추려 들었던 것도 이 무렵이다. 난산이었고 숱한 부작용을 낳기는 했으나 이후 금융자본, 극장 자본을 등에 업은 한국의 주요 메이저 영화사들은 모두 이렇게 다량의 영화제작과 배급형태를 시도했다. 거기에 국민의 정부 시절에 유입된 거액의 영화진흥기금이 종자돈 기능을 하고 검열 철폐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한국영화는 산업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게 1990년대 후반부터 벌어졌던 현상이다. 지금 한국영화계가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거두고 있는 승리는 스크린 쿼터라는 최소한의 안전판을 등에 업고 한국의 영화인들이 할리우드 방식을 벤치마킹해 제작과 배급과 유통 시스템을 지키려는 전투적인 자세로 노력한 끝에 얻어낸 아주 힘겨운, 처절한 생존의 산물이다. 이렇게 되짚어 보면 미국영화 개방이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높인 것이라는 조희문 교수의 주장은 악의적으로 보이기조차 하는 왜곡이다. 그러므로 그의 논지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미국영화직배에도 불구하고 대자본의 투자환경을 업은 한국영화계는 스크린 쿼터라는 안전장치를 장착한 채 제작과 유통을 아우르며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그런 출구를 애타게 겨우 찾아냈다. 한국영화계의 불행한 모순 영화산업의 속성은 고약한 데가 있어서 다른 분야에 비해 유통망의 확보 유무가 수익과 관련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책이나 음반은 진열대에 모든 신작들이 고르게 전시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극장에 제대로 간판이 걸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다른 분야의 문화 생산물에 비해 영화는 50:50의 경쟁이 불가능한 산업이다. 10:90의 구도로 경쟁하는 산업에서 성장 가능성은 없다. 이미 다른 데서도 썼지만, 영화만 잘 만들면 산업이 흥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너무 순진하거나 무모한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전 세계가 할리우드 영화에 잠식돼 있는 현실은 거꾸로 이를 잘 말해준다. 세계 대다수 나라의 영화인들이 영화를 잘 만들 재주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영화산업이 생존할 토양 자체를 할리우드 영화가 먹어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영화가 배급되고 팔릴 유통망이 줄어들면 제작도 위축된다. 그럼 점차적으로 그 나라의 영화산업이 쇠퇴한다. 브라질과 같은 남미의 사례는 스크린 쿼터의 폐지가 곧 영화산업의 궤멸로 이어지는 극명한 예다. 스크린 쿼터 축소가 장차 폐지로 이어지고 그럼 한국영화산업은 망할지 모른다는 영화인들의 두려움은 엄살 차원에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다. 특정 영화가 다수의 극장 스크린을 차지하는 것은 지금 이곳의 어떤 멀티플렉스에 들러 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광역개봉 전략은 현대 할리우드 흥행 영화를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한국영화계의 불행한 모순은 거기서 시작된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제도를 등에 업고 바로 이 할리우드식 배급관행을 이 땅에 정착시켰다. 당장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고 언젠가 폐지되면 한국영화의 이런 배급방식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물량 면에서 세계 최고인 할리우드 영화계는 끼워 팔기 방식으로 한국 극장가를 미국영화 위주로 재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여론이 냉담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영화계가 소수의 흥행 대작 위주로 굴러가는 배급질서를 방치한 데서 오는 모순 탓이 크다. 관객들은 지금까지 일부 한국영화 화제작과 할리우드 대작 영화만을 극장에서 지속적으로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2004년에 내가 '스크린 쿼터 논란에 붙여'란 제목의 칼럼에서 주장한 것도 바로 그런 점이었다. 당시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연동제 형태로 생각할 수 있으며 스크린 쿼터에서 빠지는 일수는 마이너 영화 쿼터제로 충당할 수 있다는 타협책을 제시한 것은 지혜로운 제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스크린 쿼터 문화 연대회의에서 전향적으로 그 문제를 검토했으면 일보 후퇴하고 이보 전진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특정 영화가 전체 극장 스크린의 1/2를 차지하는 물량공세를 벌이는 무한경쟁의 배급 시스템을 한국영화계가 방치한 것도 상당수의 관객들에게는 몰인정한 처사로 비칠 것이다. 특정영화의 프린트 벌수를 최소한 200개나 300개로 제한하는 공정경쟁 배급 질서를 제안하는 자발적인 노력을 일찍 보여줬더라면, 일부 흥행 영화만을 전진배치하는 극장의 관행에 영화계가 단합된 목소리로 더 강력하게 개선의 의지를 보여줬더라면, 오늘날의 여론에서 훨씬 우호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산업적인 면에서 스크린 쿼터는 한국영화계의 효자였으나 문화적인 면에서 자기모순을 빚어낸 것이다. 한국영화의 지반은 여전히 위태롭다! 조희문 교수의 논지는 이런 문제의식과는 아예 동떨어진 채 스크린 쿼터 폐지가 한국영화계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비약적인 논리로 영화계와 대중의 간극을 더 넓히려 애쓰고 있다. 불행하게도 스크린 쿼터를 방패막 삼아 일궈낸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은 여전히 위태로운 지반 위에 서있다. 불과 일 년 전 이맘때만 해도 한국영화계는 심심치 않게 위기설에 시달렸다. 영화 서 너 편만 흥행성적이 좋지 않아도 금방 도산 위기에 몰릴 만큼 영세한 메이저 영화사와 절반이 넘는 흥행수입을 극장에 배분해야 하는 왜곡된 수익구조와 극장자본의 지휘로 스타 마케팅에 의존하는 영화산업의 폐쇄적 투자 관행에 휘청거리는 것이 곧 한국영화계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여타 사회 분야에 비해 내부 토론 구조가 열려 있는 한국영화계는 이제부터라도 산업적 안정세를 바탕으로 모순을 스스로 풀어내는 합리적인 자정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한국영화를 위해서는 계속 스크린 쿼터가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스크린 쿼터 유지는 한국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생존의 안전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가 감정적 선동을 하는가? 조희문 교수가 공격한 최민식씨는 이렇게 위태롭게 유지되는 영화산업에서 가장 모험적인 행보를 보이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드문 존재감을 지닌 배우다. 안성기, 송강호, 설경구 등과 함께 그는 양질의 한국영화를 대변하는 신망을 얻었으며 실패 속에서도 그 신망을 잃지 않았다. 영화의 예술적 소통 가능성을 대중적 틀 안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들은 누구보다 영화계 내부에서 먼저 존중해줘야 할 존재들이다. 조희문 교수는 한국영화계 전체를 잘 나가는 스타배우들의 위상과 동격으로 놓아 공격하려는 교묘한 계산을 숨긴 채 최민식씨가 스크린 쿼터 유지 옹호를 위한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그를 과녁으로 지목해 도마에 올린다. 조희문 교수의 관점은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하며 토론을 시작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상황의 전후 맥락을 짚는 담담한 토론 대신에 "장가간 아들이 번쩍거리는 외제차를 타고 시골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서는 '아직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러는데 손자들 다 클 때까지 돌봐주고 생활비도 계속 보내 달라'고 한다"는 식의 감정적인 선동을 자극하는 비유를 들어 글의 주제를 세운다. 이런 수사법으로는 스크린 쿼터를 둘러싼 숲의 문제를 나무로 가리는 어리석음을 어쩌지 못한다. 평단의 말석에 있는 처지로서 조희문 교수의 이런 글 논조가 자칫 언론의 소란스런 중재를 거치며 증폭돼 감정적인 분열을 조장하는 사태를 최소한으로 막고 싶었던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다. 평단의 선배께 반론을 쓰는 것은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여하튼 그가 자신의 칼럼에서 최민식씨에게 질의한 상당수의 질문이 앞서 밝힌 이 글의 논지를 통해 충분히 답변됐다면 좋겠다. 다만, 그가 칼럼의 말미에 스타급 배우들의 개런티에 대해 꼬투리를 잡는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해서는 따로 첨언할 필요를 느낀다. 그는 스타급 배우들이 '흥행이 크게 되었을 때 보너스(런닝 개런티)를 받는 것만큼 흥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출연료를 반납하거나 미니멈 개런티 방식으로 전환할 용의가 있습니까?'라고 선정적으로 묻고 있다. 나도 예전에 스타의 권력화 현상이 영화산업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쓴 적이 있으나 이런 식으로 도발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최민식씨는 상황에 따라 그렇게 할 용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영화 제작자를 향해 흥행이 됐을 때 이득을 보는 만큼이나 흥행에 실패하면 돈을 투자자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리는 주장이다. 창의력을 파는 문화산업 종사자들에게 수익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자고 하는 것은 지독하게 근시안적일뿐더러 문화 생산물의 보이지 않는 파급력을 전혀 존중하지 않은 발언이다. 이득을 보면 가져가고 손해를 보면 토해내라고 주장하는 그런 사고방식이 투자자가 아니라 학자의 머리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는 그의 글 전반에 깔려 있는 기조 이상으로 그 자신이 훨씬 비문화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걸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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