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가 조성우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
- 영화제일 뿐인가? 요즘은 영화 제작도 하고, 투자도 하고, 가수 매니지먼트도 하고, 판권 사업도 하지 않나? 이제 M&F는 영화음악회사가 아니라 영화사라고 해야겠다. 그런 일들은 솔직히 음악 할 때 만큼 내게 만족을 주진 못한다. 사업은 나를 잊고 나를 즐겁게 만드는 작업은 아니다. 제작은 음악 할 때 만큼 재미있진 않더라. 다만 회사의 수익 구조를 위해서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영화 음악만 해선 M&F같은 작곡가 그룹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영화사업을 다각적으로 펼치는 걸 고려하게 됐다. 저예산 영화로는 <영매>를 제작했고, 박흥순 감독의 <내사랑 말순씨>를 제작했다. 매니지먼트는 가수 이지훈 씨를 맡고 있다. <형사>와 <외출>에 투자를 하기도 했고. <야수>와 <청춘만화>의 판권도 갖고 있다. 그런데 앞으론 돈 되는 상업 영화를 해 볼 작정이다. - 허진호 감독의 차기작도 제작하지 않나? 사실이다. 허진호 감독은 대학 때부터 절친한 친구사이기도 하다. - 올해는 영화음악은 안 하나? 몇 작품 있다. <가족의 탄생>이 있고, 일본에서 제작되는 작품도 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가미카제를 다룬 내용이어서 고민 중이다. 또 KBS와 함께 영화음악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 왜 영화음악을 하나? 사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안다. 사실 나도 감독에게 매여 있는 그런 구속이 싫다. 사실 영화음악은 하던 일이 천직으로 굳어진 경우다. 무언가 일을 하다 보면 하던 일에 애정이 생기지 않나. 내겐 영화음악이 그랬다. 어느 정도는 의무적인 애정도 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정말 영화음악을 좋아한다. 영상에 음악이 부여됐을 때 관객의 감정이 끄집어내지는 걸 보고 있노라면 내가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 그렇다면 지난해는 아픈 한 해였을 것 같다. <형사>와 <외출>에선 마술이 통하지 않았다. 상처 받았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사실 지난해는 가장 재미있는 한 해가 될 거라고 믿었었다. <외출>은 친구의 작품이다. <형사>의 이명세 감독과도 오랜 동안 알던 사이다. 음악적으로 최고의 한 해가 될 거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세간의 기대가 너무 컸다. 두 영화 모두 <가문의 위기>에 밀렸다. 그 때 여러 가지로 실망했다. 우리나라 관객과 평단에 대해 불만이 컸다. - 그게 어렵다. 대중예술가에겐 어디까지 예술적인 실험이 허용되는가 말이다. <형사>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했던 하지원과 강동원의 노래는 참신한 시도였지만 결국 대중한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중은 진정한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떠먹여줘야 할 때도 많다. 정말 그런 고민 꽤 했다. 지금은 받아들이고자 한다. 스스로 객관적이지 못했던 거다. 하지원과 강동원이 따로 노래를 부른 뒤 그 노래를 붙여서 하나의 듀엣곡을 만든다는 건 실험이었다. 원래는 극장의 앞과 뒤에서 노래가 따로따로 흘러나온다는 게 설정이었다. - 어렵다. 이명세 감독은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란 걸 분명하게 내게 알려줬다. 솔직히 난 그런 실험들은 다소 반대했다. 국내에 그런 사운드 설비가 갖춰진 극장이 얼마나 되겠냔 말이다. 이명세 감독은 때론 나도 감당하기 힘든 음악적 실험을 요구하기도 했다. - 조성우의 영화음악은 늘 영화 안에서 논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실험은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이다. 내 음악엔 안정감이 있지. - 어느 순간에는 그런 안정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나? 사실 영화 음악은 관습화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많다. 멜로 영화에는 잔잔한 멜로디, 액션 영화에는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전형성이 있다. 그걸 탈피해보려고 했던 게 <형사>다. 잘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 조성우란 이름은 한국 영화 음악에 오리지널 스코어를 정착시킨 인물로 기억된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얘기다. 이제 다음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지금의 행보로 보면 영화음악의 산업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영화음악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한국 영화음악은 이제 개인 영화 음악가가 인정 받는 단계에까진 와 있다. 다만 영화음악이 창작적 가치를 인정 받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금 영화음악 작곡가들은 용역인들이다. 예를 들어 영화사가 음악 작곡가에게 5000만 원을 주고 영화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그 안에서 영화음악을 만들고 남는 돈이 수익이 되는 구조다. 당연히 투자가 덜해질 수밖에 없다. - 건축 용역처럼 그런 식이면 부실 공사가 생기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영화음악가가 영화음악의 판권을 갖고 영화사나 감독이 그 음악의 판권을 빌리는 형태가 되야 한다. 일본의 히사이시 조나 사카모토 류지 같은 음악가들은 다 그렇게 한다. 이제 다음 패러다임이라면 영화음악이 영화와는 별개로 완전한 대중 예술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영화음악가의 지위부터 영화 작업에서 온전히 인정 받아야 한다. - 무슨 악기를 좋아하나? 피아노다. 역시 피아노가 내 주무기인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음색들도 끊임없이 탐구한다. 새로운 음색이 영화에 새로운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형사>에서는 '얼후'라고 불리는 중국 전통 악기를 사용했었다. 음색은 곧 영화의 정서니까. - 요즘은 '미디 사운드'로 대부분의 음색을 표현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생음악과 기계음을 구분하지 못하니까. 그게 싫다. 홍콩 영화를 보면 온통 미디 사운드로 도배가 돼 있다. 고급스럽지가 않다. 생음악과 기계음은 당장은 구분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100분 동안 내내 미디 사운드를 듣노라면 꼭 공장에 들어갔다 온 느낌이 든다. - 요즘 감독들은 영화음악가만큼이나 음악을 잘 안다. 어떤 감독이 음악을 가장 잘 활용하던가? 박찬욱 감독이다. 감독이 음악을 잘 쓴다는 것은 음악을 작품 속의 하나의 캐릭터로 활용한다는 걸 뜻한다. 난 그런 감독들이 좋다.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감독들 말이다. 그런 상상력과 마주하면 나 스스로도 힘이 난다. 봉준호 감독을 보면, 왜 저런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허진호 감독을 만나면,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성찰을 느낀다. 이명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철저한 철학을 지니고 있다. - 어쩌면 영화음악보다 영화 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를 하는 것 아닌가? 감독부터 스태프까지 영화인들이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헌신이 좋다. 어떤 감독들은 자기밖에 모른다. 하지만 어떤 감독들의 상상력은 정말 국보급이다. 열 명 중 서너 명은 정말 놀랍다. 그걸 보는 게 즐겁다. - 그 열 명 중에서 서너 명이 모두 조성우 음악 감독 주변에 있는 모양이다. 정말 그렇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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