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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은 '쓰레기'?-서울시의 시대착오적 문화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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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은 '쓰레기'?-서울시의 시대착오적 문화행정

시립미술관, 민중미술 작품 상설전시 약속 안 지켜

올해 5월 17일 개관한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유준상)이 상설전시관 마련을 약속하고 기증받은 '민중미술' 작품들을 홀대하고 상설전시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어 미술계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작품들은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개관을 기념하여 기증한 2백여점의 작품으로 이중에는 오윤, 최병수, 박불똥, 홍성담, 임옥상씨 등 80년대 최고의 민중미술 작가로 꼽히던 이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현재 이들 민중미술 작품 중 97점과 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추상주의 작품 등을 한데 묶어 '2002 소장작품전'이라는 타이틀로 한시적인(7월 19일-8월 20일) 전시회를 열고 있다. 또 상설전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확답을 주지 않은 상태이다.

미술계에서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계열의 작품을 한데 묶어 '소장작품전'이라는 애매한 타이틀로 전시회를 연 것부터가 미술관에 대해 감독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 일부 담당자들의 압력 때문이 아니냐는 말이 떠돌고 있다. 또 민중미술계열의 작품을 시 관할의 미술관에서 상설전시를 할 경우 생길 논란이나 부담감 때문에 서울시측이 영구적인 상설전시관 마련에 소극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민중미술은 한국에서 생성하고 발전하여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거의 유일한 사조로 탐미에만 빠져있던 한국 미술계를 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균형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면서 "서울시의 일부 인사들이 혹시라도 작품의 질이나 사상을 문제 삼았다면 몰지각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카소의 '게르니카'같은 작품도 '의식'이 있는 작품이니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 눈치 보느라 기증받지도 못하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작품 기증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한 가나아트의 최열씨는 "기증 당시 서울시와 8개항의 약정서를 체결했다"면서 "서로의 합의를 거쳐 전관을 사용해야 하는 개관기념전 이후에는 상설전시관을 마련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상당히 섭섭하다"고 밝혔다.

최씨는"천경자 화백의 경우 개관할 때부터 70평의 영구 상설전시관을 마련해 준 반면 가나아트가 기증한 작품들은 아직 전시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았다"고 전하고 "서울시 관련 공무원 중 일부는 이 작품들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쓰레기'운운 했다는 말도 들리는데 솔직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의 최효준 학예과장은"기증자와 협약을 맺을 당시 상설전시를 한다는 약속은 했으나 정확한 시기나 전시할 공간의 평수까지 확정을 하지는 않았다"면서 "곧 논의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천경자 화백의 경우는 시립미술관의 설계도면이 나오기도 전인 98년에 협약을 맺은 것으로 천 화백 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영구 상설전시공간을 약속한 케이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가나아트측 관계자는"설계도면까지 보여줘 가며 구체적인 전시공간의 확보를 말한 것은 시립미술관측 이었다"면서 "최근에 일의 진행이 잘못 되어가는 것을 보고 '차라리 담을 그릇이 안 되면 조용히, 명예롭게 돌려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서울시장 앞으로 지난 6월15일에 내용증명 우편까지 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기증 작품의 상설전시는 서울시장이 서울시를 대표해 약속한 일인데 전임이든 신임이든 시장이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지 못했다면 아랫사람들의 직무유기이며, 시장이 보고를 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문화시장으로서의 자질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립미술관에 대한 운영지도 및 감독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 문화관광국 문화과의 한 관계자는"이 작품들이 100%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보기는 어렵고 작품의 수준에도 문제가 다소 있어 보인다"고 주장하면서 "상설전시 문제는 현재 고려중인 사항이라 확답을 하긴 힘들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이며 미술평론가인 심광현 교수는"국립미술관의 문제가 문광부 장관의 책임이이라면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장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문제가 더 커질 경우 모욕감을 느낀 작가나 기증자가 전시를 거부하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70-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문학, 민중가요, 민중미술 등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정치권력의 알레르기는 사실 국민의 정부 이후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꼽히던 양희은의 '상록수'는 국정홍보처의 캠페인에 애용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관계자들이 '민중'미술이라는 이유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작품들을 홀대하고 '쓰레기'로 취급한다면 이는 대단한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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