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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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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간 이유

[황두진의 영화기행] 피터 잭슨의 〈킹콩> 다시보기

킹콩은 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올라갔을까. 이것은 피터 잭슨 감독의 최신 영화 '킹콩'에 나오는 대사 중의 하나다. 영화 속에서 어떤 대답이 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나만의 대답을 찾아보고 싶다. 뉴욕은 영화와 현실 모두에서 자연재해나 괴물, 혹은 대형 사고와 관련이 많은 도시다. '투모로우'에서는 엄청난 해일 뒤에 온 도시가 꽁꽁 얼어붙었고, 훨씬 이전의 오리지날 '혹성탈출'에서는 폐허가 된 자유의 여신상이 문명의 종말을 암시했다. '고질라'가 도시의 내장 속을 헤집고 다니던 도시도 뉴욕이다. 영화 속의 소위 '악당'들은 워싱턴에 대해서는 편리하게 단추 하나 누르면 발사되는 미사일을 날리면서도, 뉴욕에 대해서는 굳이 직접 찾아가 몸으로 부딪히는 방법을 취한다. 자연이거나 살아 있는 생명체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몇 년 전 이것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9. 11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를 폭탄으로 삼아 뉴욕을 직접 공격한 경우였다. 이처럼 뉴욕은 냉정한 이성만으로는 부족하고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정과 욕망이 동원되어야 비로소 그 느낌이 전달되는 도시다.
킹콩 ⓒ프레시안무비
킹콩은 영과 육을 가진 뉴욕의 공격자 계보에서 단연 선두를 차지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공격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뉴욕의 심벌을 정확하게 골라내는 안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세 편의 킹콩 내전(內典)을 통해 그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두 번,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한번 올랐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올랐던 것은 2편에서였는데, 3편이 나온 지금 이 영화는 제시카 랭의 데뷔작이라는 점, 그리고 미녀와 야수의 구도가 선명하다 못해 거의 에로틱하게 제시되었다는 점을 빼고는 그리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듯 하다. 그리고 나는 이 2편에서 킹콩이 건물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건물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우리는 모두 마천루라고 하지만 엄연히 이들은 계보가 다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소위 미국식 마천루다. 이것은 절대 높이 이상의 수직적 염원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래서 빌딩 위에 수직의 첨탑 부분이 더 붙어 있고 전체적으로는 높은 고깔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킹콩의 머리 위에 인심 좋은 아이스크림 점원이 한 점 더 올려준 것 같이 솟아있는 불룩한 정수리 부분과도 상통하는 디자인이다. 이에 비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비록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가 설계하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유럽식 마천루에 가깝다. 이것은 추상적 이성의 세계다. 필요한 높이에 도달하면 수직적 움직임을 딱 멈춰버린다. 꼭대기가 평평하므로 마치 올라가다 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초기 자본주의의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상징한다면,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계산된 원숙미가 넘쳐난다. 뉴욕이라는 정글, 인간이 만들어낸 대협곡의 정신에 어울리는 것은 당연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그래서 뉴욕의 별명, 즉 '엠파이어 스테이트'라는 이름이 건물에 영구히 고착된 것이다.
킹콩 ⓒ프레시안무비
정글의 왕, 킹콩에게 어울리는 인공의 산은 당연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멀지 않은 곳에 그 보다 약간 낮고 오히려 볼품은 훨씬 좋은, 또 다른 대표적 미국식 마천루 크라이슬러 빌딩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섬약한 조형이라 대장부 킹콩에게 성이 찰 듯하지 않다. 특히 이번 3편에서 정글의 절벽 위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맞이하는 두 개의 석양 장면이 교묘히 겹치면서 '뉴욕=정글'의 영화적 구도는 강조된다. 게다가 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 그러니까 킹콩이 최후를 맞이하던 부분이 또한 범상치 않다. 이곳이야 말로 건축의 역사와 항공의 역사가 가장 극적으로 조우할 뻔한 곳이었다. 이 건물의 설계자들은 여기에 비행선을 계류시킨다는 매우 황당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뉴욕 시장까지 열심이 이를 홍보하고 나섰다. 대서양을 건너 온 거대한 비행선이 이 탑과 연결되어 승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도시 한 복판에 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강한 바람 속에서 비행선을 어떻게 안정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승객은 고사하고 실제로는 밧줄로 신문 몇 부를 배달한 것이 전부라고 전한다. 결국 웃음거리로 끝난 셈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부분은 원래 의도를 살려 계류탑(mooring mast)라고 불린다. 지금은 방송용 안테나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무모함에 탄식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사랑한다. 이런 무모함이 있었기에 '킹콩' 영화 속의 영화감독 칼 덴헴(잭 블랙)이 경찰에 쫒기고 동료들을 잃어가면서 해골섬으로 촬영을 떠나고, 인간이라는 것과 글을 잘 쓴다는 것을 빼 놓고는 도저히 킹콩의 연적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잭 드리스콜(애드리안 브로디)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글에서나 도시에서나 줄기차게 여자(앤 대로우. 나오미 와츠 분)를 구하러 다니며, 현실 속의 감독 피터 잭슨이 전작 '반지의 제왕'의 명성을 잇는 3시간짜리 야심작 '킹콩'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모함에 있어서는 우리의 주인공 킹콩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결국 그 무모함으로 인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지만, 열심히 도망가다 말고 아마도 센트럴 파크 어딘가로 짐작되는 얼어붙은 연못에서 여자와 오붓하게 바디 스케이트를 즐기는 낭만은 이런 무모함의 소유자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기도 하다.
킹콩 ⓒ프레시안무비
마천루, 비행선, 킹콩, 그리고 영화,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여기에 인간의 꿈과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단어들은 아주 원초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본성을 자극한다. 합리적이며 계산적인 세계관만으로는 이런 것들을 상상하고 만들어내기 어렵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비행선 계류탑만큼 킹콩 최후의 옥좌로서 더 적당한 곳은 없을 듯 하다. 이것은 실제적인 의미에서나 상징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정점, 그 자체다. 여러 종류의 무모함이 한 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모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이것이 '영화다운 영화', '킹콩'의 미덕이 아닐까. *사족: 나 같은 건축가에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뉴욕의 옛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1930년대 당시의 뉴욕은 전형적인 항구도시였고 유럽식 마천루는 아직 뉴욕에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허드슨 강가에 발달된 뉴욕 부두의 풍경이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고 위에서 언급한 크라이슬러 빌딩도 잠깐 나온다. 아마도 건축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장면의 고증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이 전개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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