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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 놓고 외무부-교황청 '타협'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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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 놓고 외무부-교황청 '타협' 시도

[외교문서] 외교 修辭에도 '팽팽한 긴장감'

1974년 지학순 천주교 원주교구장의 구속사건과 관련, 당시 박정희 정권과 교황청 당국이 재판과정에서 그의 신병 처리를 놓고 '타협'을 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에는 성사에 이르지 못했다.

이 사건은 지 주교가 그 해 7월6일 필리핀에서 귀국하다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연행되면서 국내외 관심사로 부상했고, 지 주교는 불구속 재판을 받다가 같은 해 8월12일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외교통상부가 5일 공개한 당시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미 1월부터 당시 우리 정부가 교황청을 상대로 지 주교의 정치활동을 문제 삼았고 7월부터 수시로 진행된 면담에서 흐릿하게나마 '타협'이 시도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타협'이라는 단어는 루이지 도세나 주한 교황청 대사가 7월11일 노신영 외무차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당시 도세나 대사는 "(지 주교를) 구속하지 않아 감사한다"고 했으나 노 차관으로부터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불구속이겠지만 유죄가 선고되면 판결에 따라야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다시 구속하겠다는 뜻인가"라고 반문했다.

도세나 대사는 이어 "징역이 선고되면 따라야 한다"는 노 차관의 답을 접하고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어떤 타협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한 것이다.

도세나 대사는 타협안을 묻는 질문에 "선고 이전의 타협을 원한다"며 "왜냐하면 판결이 내려지면 사태가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므로 나로서는 이 사건의 심리를 천천히 진행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 후 김정태 외무부 차관보는 재판이 시작된 8월1일 도세나 대사에게 "조용히 처리하려고 노력했으나 지 주교는 소위 양심선언을 발표해 물의를 일으켰고 교황청은 우리가 기대한 타협을 위한 반응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공소장을 전달했다.

김 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가톨릭교회와 대립할 의도는 없으며 외무장관은 아직도 조용히 해결될 길이 있으면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둔 뒤 "지 주교를 원주교구장에서 해임하는 등의 조치가 있으면 설득력 있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군법회의는 국방장관이 재판중지를 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 주교를 해임하면 타협의 여지가 있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 타협이 더 이상 구체화된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다만 교황청이 우리측 교황청 대사를 불러 이 사건에 대한 교황의 반응 등을 설명하며 '선처'를 당부한 대목들이 눈에 띄었다.

교황청측은 8월11일 지 주교에 대한 15년 구형설과 관련, "교황께서 보고 받고 놀라움과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며 "교황께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변함 없기를 바라면서 본의 아니게 저지른 지 주교의 일시적 과오에 대해 대통령 각하의 특별하신 은혜가 베풀어지기를 앙망한다"고 전했다.

교황청측은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각지의 주교단에서 항의나 호소문이 바티칸에 몰려들고 있으므로 선고 이전의 지금이 매우 심각한 시기(serious moment)"라고 규정한 뒤 "교황청은 지금까지 원만한 해결을 바라고 사건의 진전을 주시해 왔지만 사태가 악화되면 방관만 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며 경고성 발언도 곁들였다.

교황청 카사롤리 대주교는 1심 선고 이후인 8월14일 "교황은 지 주교의 재판결과를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다"며 "교황은 한국 정부가 지 주교의 좋지 않은 건강을 고려해 모종의 특별배려를 베풀기를 희망하며 그런 조치는 전세계 가톨릭사회에서 일고 있는 부정적 대한(對韓) 여론 무마에 공헌하게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 후에도 우리측은 가톨릭 신부와 신도들의 '종교외 활동'을 하지 않도록 교황청이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교황청측에서는 "신부들에게 포교활동에 전념하고 정치활동에는 가담치 말라고 권고했으나 복종치 않고 있다"고 한 뒤 교황이 직접 내린 지시라며 지 주교에 대한 면회주선을 부탁하기도 했다.

또 우리측 외무장관은 같은 해 11월2일 도세나 대사를 만나 "만약 입국 목적 이외의 활동을 계속하면 법에 따라 추방할 것"이라며 '반체제 활동'에 관여한 외국인 카톨릭인사 36명(주교 2명, 신부 33명, 수녀 1명)의 명단을 통보했다.

한편 이번 외교문서에는 벨기에 신부 2명이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은 것과 관련, 우리측 외무장관과 주한 벨기에 대사가 그 해 12월31일 언론의 자유 문제 등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면담 내용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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