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분야에서의 국민주권, 즉 '사법주권'을 도외시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법 관행이 비판의 도마위에 올랐다.
우리나라 사법관행의 반(反)사법주권성은 새삼스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이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검찰 개혁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고, 앞으로 2년반뒤인 2005년에는 국내법률시장이 외국계에게 전면개방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국내법률시장이 붕괴하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힘든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법조인 의식은 후진국, 국민 법의식은 개도국 수준"**
법률전문 NGO인 법률소비자연맹은 24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법주권의 실태와 법률서비스의 선택권보장'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법원, 검찰의 개혁문제와 WTO(세계무역기구) 뉴라운드의 법률시장개방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나라 법률시장의 개선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주제발표에 나선 한국사법연구소 김대인 이사장은 조목조목 우리나라 사법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이사장은 "사법주권은 사법분야에서의 국민주권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사법 또는 준사법기관 등의 조직구성이나 재판제도 및 법률서비스의 공급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나 법조가 아닌 결국 법률소비자인 국민이요 시민이라는 말"이라고 정의내렸다.
김이사장은 그러나 "사법제도와 법조인의 의식은 후진국 수준, 국민의 법의식은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며 사법주권 차원에서 볼 때 개선할 문제점이 즐비하다고 지적했다.
김이사장은 구체적인 한 예로"우리나라는 구속왕국"이라고 정의내리며"2000년에만 4만7천6천명이 구속됐으나 그중 기소가 실제로 이뤄진 것은 24%였고 재판결과 76%는 구속이유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검찰의 구속권 남용을 질타했다. 그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이런 구속수사 관행은 검찰의 수사독점에 기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마철 물퍼내기식 부실재판',소액재판의 재판시간은 42초, 형사재판은 7~8분**
김이사장은 또 검찰개혁과 관련,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한 검사의 상명하복관계는 검사가 정의와 진실에 대한 의무보다는 상사의 명령에 구속돼 인적, 물적 독립성을 상실될 우려가 있고, 그 우려는 국민의 의혹으로 왕왕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며 검사동일체 원칙의 파기를 주장했다.
그는 변호사 수임료와 관련해서도 "통제불능의 변호사 보수문제는 수임료 산정때 합리적 기준이나 원칙, 사전사후의 통제도 없이 공급자인 변호사 임의대로 터무니 없이 비싼 수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으며 이는 사법주권에 전면배치되는 관행"이라고 질타했다.
김이사장은 또한 사법시험제도와 관련, "사법시험의 합격정원을 국가가 통제해 법률시장의 공급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권익을 심각히 침해하면서, 결과적으로 기존 법조계의 기득권을 확보해 줌으로써 법조 3륜(판사.검사.변호사)간의 검은 거래 등이 파생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제반 문제점으로 인해 국민의 사법주권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구체적 예로 소액재판의 경우 1사건의 재판시간이 불과 42초, 형사재판의 경우 7~8분에 한 사건이 끝나는 '장마철 물퍼내기식 부실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2005년 법률시장 개방되면 국내법조계 초토화**
김대인 이사장은 이처럼 국민의 사법주권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2005년 국내법률시장이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외국법조계에 개방되면 우물안 개구리격인 기존의 국내법조계는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이사장은 우선 "기업의 경우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국제적 법률서비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국내기업은 외국계로부터 양질의 법률서비스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우리나라 변호사는 총 5천여명에 불과하나 미국,영국의 경우 소속 변호사 숫자만 1천명이 넘는 대형로펌이 많고 전문역량도 뛰어나 국내 법률서비스 산업이 외국계에 예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이사장은 또 "지적재산권 컨설팅, 조세컨설팅, 노무컨설팅의 분야에서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전문성이 부족해 외국계에게 시장을 잠식당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국내 법률시장이 외국계에게 종속될 경우 기업정보, 조세관련정보 등 중요기밀의 해외 유출 등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이사장은 이같은 개방상황에서 국내법조계가 살아남기 위해선 현행 사법시험제도를 전면 손질해 법률서비스 공급자를 대폭 확충하고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며 조세법원등 전문재판부를 신설하는 등 종합적 비상대책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마디로 말해 국내 법조계 기득권층의 저항에 발목잡혀 사법개혁을 늦추다가는 몇년후 국내법률시장 전체의 붕괴 및 해외종속이 불가피하다는 경고였다.
***시장경쟁 통해 전관예우 같은 폐단 없애야**
김이사장의 주제 발표가 끝난 뒤 각계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들은 김이사장의 문제점 지적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방법론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자민련 김학원의원은 "검찰동일체 원칙이 검사들을 일일이 지시하고 중립성을 저해하는 요속가 있다"고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일선검사의 독립수사를 통한 검찰독립에 대해서는 "검사가 자기독단에 빠져 수사에 나설 경우 검찰은 전황에 빠지고 각 검사의 들쑥날쑥한 수사기준이 국민들의 불만만 가져올 것"이라고 반대했다.
김의원은 또 검찰총장을 선거에 의해 선출제로 하는 방안과 관련, "고도의 법률지식이 필요한 자리인데 법 지식이 없는 이가 됐을 때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히고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이 출마해도 선거는 결국 정치색과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반대의사를 밝혔다.
한나라당 임호성의원은 "검찰이 수사기밀과 수사보안을 이유로 변호사 입회를 독선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현행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사과정에서 변호사 입회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의원은 "조서나 수사상 서류를 작성할 때 컴퓨터단말기를 피의자가 정확히 보도록 함으로써 불안하고 당황한 상황이지만 자신이 하는 말과 증언을 확인하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것들은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이 내부지시만 내리면 되는 문제"라며 "진술과 기록이 다른 일이 있는 만큼 피의자나 사건 관련자들의 모든 진술을 녹음하여 테이프 형태로 보관해서 사건 당사자들이 원할 경우 2~3천원의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의원은 현재 사법당국이 우리 법률이 대륙법 체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이유에서 배심원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 대목과 관련해서도 "이미 사법은 영·미법화 했고 공법도 국가우위를 기초로 하는 대륙법적인 해석이 무너진 상태"라며 "배심원제도를 실험적으로 시도해볼만하다"고 밝혔다.
경찰대학교 법학과 이관희교수는 "판사의 양심적인 재판을 위해 법관의 서열화를 없애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선후보들이 공약으로 당선후 1년 이내에 '사법개혁심의위원회'를 만들도록 시민단체 등이 운동을 해야 하고 특히 사법개혁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원회에 판.검사는 각 1명으로 참여를 제한하고 법학자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학민 소비자보호원 경제생활국 서비스거래팀장은 "법률소비자는 사건이 났을 때 약하고 모르고, 해결 후에도 불만과 불편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하고 "소비자는 없고 단지 의뢰인만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법률시장의 특징"이라고 부연했다.
장팀장은 "법률분야가 권위가 아닌, 국민의 삶을 위한 한 방편이자 도구라고 여긴다면 법률서비스의 상품화도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변호사가 능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가 공개되어 '전관예우'같은 것이 사라지게 해야 하며 투명하고 오픈된 수임료체계에 대한 연구와 노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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