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가가린(구 소련의 우주비행사)이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을 보는 기쁨보다 더한 기쁨은 페널티 킥을 막아내는 것 뿐이다."
역대 세계최고의 골키퍼로 불리는 구 소련의 레프 야신(1990년 사망)은 페널티 킥을 막아낼 때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골키퍼 이운재가 스페인 호아킨의 승부차기를 막는 순간 국민들은 하나가 됐다. 두 손을 모으며 얼굴을 찡그리던 이운재 골키퍼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표팀 내 다른 모든 포지션들에는 무한경쟁 체제가 뿌리 내렸지만 골키퍼는 그렇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 이래 골키퍼 자리를 거의 독점해 온 이운재의 아성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월드컵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주전 골키퍼인 이운재와 나머지 골키퍼들 사이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비록 이운재가 독일 월드컵에서도 주전 골키퍼가 된다 하더라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만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표팀의 골키퍼 이운재는 자전적 에세이 〈이기려면 기다려라〉를 펴냈다. 이운재는 이 책에서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뛸 기회를 얻었을 때의 느낌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명단이 발표되자 몸이 떨렸다. 첫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인생에서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김병지의 그늘에 가려있던 이운재는 2001년 홍콩 칼스버그 컵을 기점으로 수면 위로 부상했고, 결국 2002년 월드컵의 주전 골키퍼가 됐다. 칼스버그 컵 파라과이와의 3, 4위 전에서 골키퍼 김병지는 공을 몰고 가다 상대에게 빼앗겨 위기를 자초했다. 그 뒤 이운재는 김병지의 벽을 넘어 주전 골키퍼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이운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 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 전을 앞두고 주전 골키퍼 자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은 끝까지 이운재와 김병지를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였고, 두 선수는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이는 월드컵 직전 펼쳐진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각각 이운재, 김병지가 골키퍼로 번갈아 나선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 해설위원)도 "사실 폴란드 전을 앞둔 상황에서 이운재가 골키퍼로 나설 가능성은 절반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아드보카트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이운재 골키퍼에 대한 질문이 터져 나왔다.
'이운재 골키퍼가 예전같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표팀의 정기동 골키퍼 코치는 "아직 대표팀에는 이운재만한 골키퍼가 없다. 이운재가 2002년에 비해 체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큰 문제는 없다. 전지훈련을 통해 체중만 줄이면 2002년 때와 같은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며 '리틀 칸'이란 별명을 얻었던 김영광과 서른셋의 나이에 늦깎이로 태극마크를 단 조준호는 오는 15일부터 시작되는 6주 간의 전지훈련에 이운재와 같이 참가한다. 이운재가 독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가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을 통한 자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골키퍼도 다른 포지션처럼 경쟁을 통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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