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역사는 대부분 승리팀과 골을 넣은 선수에 의해 씌여지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패자'와 어시스트를 해준 선수에게도 팬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박지성(맨유)이 27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에서 펼쳐진 2005~200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웨스트브롬위치와의 홈경기에서 골 만큼 값진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박지성으로서는 시즌 다섯번째 어시스트다. 박지성은 이 어시스트로 프리미어리그 어시스트 부문 공동 3위로 뛰어 올랐다.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던 박지성은 전반 35분 맨유의 첫 골을 만들어 냈다. 박지성은 오른쪽 측면 돌파를 감행한 수비수 리오 퍼니낸드로부터 패스를 받았다.
상대 수비를 등진 채 공을 받은 박지성은 쓰러지면서 뒤에 있던 폴 스콜스에게 공을 연결했다. 중거리 슛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 스콜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력한 왼발 슛으로 선취골을 성공시켰다.
스콜스의 통렬한 슛도 좋았지만 몸의 중심을 잃은 상황에서 팀 동료에게 패스를 해준 박지성의 어시스트도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웨스트브롬위치의 밀집 수비에 막혔던 맨유는 이 골을 기점으로 활화산 같은 공격력을 거침없이 펼쳤다. 맨유는 전반 인저리 타임에 라이언 긱스의 코너킥을 퍼디낸드가 헤딩골로 연결했다. 후반에도 경기를 지배한 맨유는 루드 반 니스텔루이가 헤딩골을 성공시켜 3대0의 완승을 거뒀다.
박지성은 지난 21일 버밍엄 시티와의 칼링컵 8강 전에서 잉글랜드 진출 뒤 첫 골을 뽑아냈다. 컵 대회가 아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박지성의 데뷔골이 곧 터질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도 이어졌다. 실제로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 기회를 잡았다. 전반 10분 폴 스콜스의 패스를 받은 박지성은 전광석화 같은 왼발 슛을 날렸지만 오른쪽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현지시간으로 26일 펼쳐진 맨유와 웨스트브롬위치의 경기는 '박싱 데이(Boxing Day)' 매치. 영국에서는 성탄절 다음날을 박싱 데이라고 부른다. 1년 동안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선물을 상자에 담아 준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박지성이 골 가뭄에 시달리며 일부 영국 언론으로부터 '기복이 심하고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도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북돋워 주었다. "박지성이 골을 넣으면 자신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박지성의 다른 모든 플레이는 현재도 매우 좋다."
'팀 플레이'를 중시하는 박지성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난 이날 어시스트는 자신을 믿어 주고 꾸준히 출전 기회를 준 퍼거슨 감독에 대한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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