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는 최근 '황심(黃心) 잡기'라는 말이 생겨났다. 줄을 잇는 황우석 교수에 대한 병문안과 격려 발언 등 유력 정치인들의 '황우석 도우미' 행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나라당 '빅3'라는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황 교수를 격려 방문했거나 할 예정이다. 여권에선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12일 격려방문을 했고, 민주당 한화갑 대표도 최근 공식석상에서 황 교수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유력 정치인들이 당면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피력하는 것은 어찌 보면 긍정적인 일이다. 대개의 경우 사안이 민감할수록 반응이 미적지근하거나 회피하기 일쑤인 '보신주의'와 비교해보면 그렇다. 하지만 적극적인 행동의 배경에 모종의 '의도'가 있거나, 상황을 왜곡시킬 소지가 다분한 경우,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침묵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다.
이는 황 교수 문제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취재 과정에서 협박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해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하고, 그 뒤엔 의혹 해소 요구를 일축해 버리는 듯이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고 한 '부적절한' 발언의 예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현직 대통령 발언의 무게와 등가 비교할 일은 못되지만 유력 정치인들의 '의도적인' 황우석 감싸기가 적절치 않게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황 교수 비판하면 좌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1일 황 교수를 문병해 "(황 교수는) 우리나라의 보배 중 보배인데 편찮으면 안된다. 난치병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힘내서 열심히 연구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황 교수 연구의 '검증론'에 대해 불편해 하는 시각이 내포돼 있음이 분명했지만,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의례적인 행동쯤으로,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논란에 특별한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봐줄만 했다.
하지만 13일 동국포럼 강연에서 박 대표는 "황우석 교수 문제에까지 이 사회는 이념적으로 풀고 있다. 보수, 진보로 편을 갈라 이념 잣대로 재단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황우석 교수 문제와 이념 문제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누가 황 교수 문제에 이념을 갈라 재단하고 있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황 교수 연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좌파라는 해괴한 논법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황 교수 연구에 대한 문제제기를 주도한 민주노동당, 〈프레시안〉, MBC 'PD수첩' 등에 대해 평소 한나라당이 '좌파정당', '좌파매체'로 백안시해 온 관성이 박 대표에게까지 이어진 탓일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그 정도라면 다행이겠지만, 박 대표의 의도는 다른 데 있어 보인다. 이 발언이 나오기 직전 박 대표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사립학교법 문제를 거론했다.
"현 정부는 사학법 개정을 날치기 통과시켜 전교조에 우리 아이들을 맡기게 했다. 우리나라 장래를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 간첩을 민주화 인사라고 하지 않나, 강정구 교수를 검찰의 중립성까지 훼손하며 지켜주질 않나, 이런 것들을 지적하면 색깔론으로 몰아간다."
결국 박 대표의 발언 속에는 사립학교법 대치 전선에 황 교수 문제를 끌어들여 지지여론을 확장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됐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황 교수 문제를 이념 문제로 가르고 있는 쪽은 박 대표이며, 이는 황 교수 논란과 사학법 논란을 해결하는 데에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되는 정치 논리일 수밖에 없다.
***황 교수 비판하면 악인?**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선악 개념을 적용한 '황우석 감싸기'도 사태 해결과는 동떨어진 측면이 다분하다.
손 지사는 지난 11일 황 교수를 문병한 후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황우석 교수는 역시 믿음직했다. 몸은 힘들어 링거주사를 꽂고 있었지만 안광은 빛나 자신에 차 있었고, 내 손을 꼭 잡은 황 교수의 손에서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중략) 황 교수의 손을 쥐고 있는 나의 가슴에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썼다.
손 지사가 왜 이런 감상적 접근법을 앞세웠는지는 분명치 않다. 일부에선 대번에 "황우석 신드롬에 편승해 떠보려는 게 아니냐"는 빈축이 나왔지만, 이는 그저 추측일 뿐이며 이로 인해 뜨는 일도 없을 듯하기에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황 교수 문제에 대해 차분한 합리적 접근이 절실한 때에 유력 정치인의 감정 자극식 접근은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손 지사는 앞선 8일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황우석 바이오센터 기공식'에 다녀온 뒤 미니 홈페이지를 통해 황 교수의 연구에 문제제기 하는 쪽을 "보이지 않는 악인"이라고까지 몰아붙였기에 더욱 그렇다.
손 지사는 그 글에서 "황 교수의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악용하려는 외국의 사례에 여러분과 함께 분노했다. 또 힘들어 하는 황 교수를 보면서 우리 모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숱한 시련을 안겨주고 신화를 전복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악인들에게 강하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황 교수의 연구에 더욱 힘을 싣고 확고한 믿음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국민 모두가 힘을 모으면 분명 우리는 승리자이며 황 교수가 우리의 기수가 될 것을 믿는다"고 썼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그날 손 지사는 기공식 현장에선 "황 교수를 탄압하는 이들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한다.
요컨대 손 지사에게는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충분히 의심 가능한 문제제기를 한 소장 과학기술자들과 몇몇 언론이 사회적 배격의 대상인 셈이다. 평소 합리적이기로 소문난 손 지사이기에 이런 주장이 아연하기도 했지만, 대권을 꿈꾸는 그가 사회적 현안에 대한 한쪽의 의견을, 비록 그것이 소수라 할지라도 선악으로 재단하는 발상은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본질 호도하는 정치인들의 '황우석 접근법'**
이 외에도 유시민 의원은 지난 7일 한 강연에서 "(PD수첩이) 황우석 박사 연구를 검증하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PD수첩 프로듀서가 검증하는 것은 내가 가서 검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부당한 방식으로 과학자를 조지니까 방송국이 흔들흔들 한 것이다. 광고 끊기고 난리 아니냐"고 말했다.
PD수첩이 취재과정에서 언론윤리를 어긴 게 사실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유 의원의 이런 주장에는 황 교수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 자체를 부당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녹아 있었다.
또한 그가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박사 문제에 관해 글을 쓴 것은 '(PD수첩이) 논문의 진위를 캐고 있더라 이런 부당한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피디수첩에 광고 떼라고 압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언론은 노 대통령이 이를) 알면서도 왜 아무 조치 안했느냐고 한다. 그러면 대통령이 MBC 사장을 불러서 조인트 까냐. 피디를 잡아다가 지하실에서 달아매냐"고 극단적 이분법을 적용한 것도 노 대통령에 대한 옹호 논리로는 빈약해 보인다.
또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13일 외신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황 교수팀의 윤리성과 정직성 문제는 황 교수의 사과 회견으로 매듭지어졌다"고 말해 끝나지 않은 '윤리' 문제를 자의적으로 매듭지어버렸다.
한 대표는 지난달 28일 한 토론회에선 "황 교수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서구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연구했다면 이런 윤리문제가 나왔을까 의구심이 든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업적이 나왔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거기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고 국수주의적 발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도를 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부 정치인들의 이런 태도는 황 교수 연구 논란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덧씌우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황 교수 사태의 국면은 이미 이런 정치권의 추임새에 휘둘릴 단계를 넘어 섰지만, 오로지 국민감정에 편승한 일부 정치인들의 '제멋대로'식 접근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우리 정치권의 단면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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