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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민주당, 대안인가 들러리인가

〈기고〉 '소장파' 곤도 쇼이찌 의원과 만나서

최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일본의 아소 다로 외상의 회담이 있었다. 반 장관은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일본 지도자들의 진솔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또 한번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아소 외상 역시 천편일률 격으로 지난날 흔히 해온 답변을 내놓았다.

앞으로도 한일 간, 중일 간에 당국자들이 만나면 같은 상황이 재연되고 같은 말들이 오가게 될 것이다.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시아를 깔보고 침략대상으로 삼았던 과거 일제의 시각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 아소 외상, 아베 관방상 등과 같은 인물들이 일본 정계의 지도자들로 남아 있는 한, 아시아 나라들과 일본의 관계는 지금처럼 평행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어쩌면 메이지 개혁개방 이래 유지해온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에서 벗어나 구미국가로 변신한다)의 국가 존재양식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화 속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중국, 인도,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과 지난날과는 다른 '아시아의 한 이웃'으로서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인용되는 경구이기는 하지만, 독일 철학자 헤겔의 명제는 이 경우에도 타당한 듯하다. 즉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기 시작한다"는 명제 말이다. 이는 한 사회나 국가의 의식이나 사상은 항상 발빠른 현실의 변신을 따라잡을 수 없어 지체현상을 보인다는 말이다.

일본의 정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또 다른 제국주의 침략에 불과했던 '아시아 해방'을 내세우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인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했던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한 국가의 의식 지체현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제국의 남하를 저지하고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 일본을 방파제로 활용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진주만의 치욕'이나 버마 임팔전선 '콰이강의 다리'의 비극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미일동맹이 강조돼도, 일본인들 마음 속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기억을 지울 수 없듯이 미국인들 마음 속에서 진주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태평양 제해권을 치명적으로 위협당해본 미국으로서는 미일동맹을 내세워도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는 하위 동맹국으로 남아있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집착과 반성 없음은 아시아의 피해국들과 구미 여러 나라들의 일본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크게 한다. 또한 독일의 투철한 반성과 적극적 역할(독일 통일과 냉전 해소, 그리고 소연방 해체와 동구권 붕괴에서의 결정적 역할)은 일본의 성숙치 못한 의식의 지체현상과 사뭇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똑같이 패전국 신세가 되었으면서도 오늘날 아시아에서의 일본과 유럽에서의 독일의 입지를 비교해보면, 세계인의 눈에 비치는 차이는 분명해진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를 일궈냈지만, 독일은 유럽연합을 구축하고 독일 통일을 성취하고 지난날에 적대적이었던 여러 이웃 나라들의 신뢰를 얻었다면 일본은 그 경제적 성취가 무색하게도 지난날의 피해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룩하는 데 거의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겠지만 독일과 일본의 이 같은 역량의 격차는 머지않아 유럽의 행운과 아시아의 액운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본의 의식 퇴행…아시아의 액운 되지 않을까**

조금 장황한 듯한 위의 이야기들은 지난 12월 6일 오랜만에 만난 일본 민주당 소속의 곤도쇼이치(近藤昭一) 의원과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이다.

곤도 의원은 지난 9월 8일에 있었던 중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즈미 돌풍에도 불구하고 아이치3구에서 당당히 당선됐다. 그는 한일관계가 일본의 철저한 과거사 반성과 제대로 된 배상을 통해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일본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곤도 의원이 당선된 것도 '사건'이다.

그렇게 숱한 망언과 마찰을 빚었음에도 고이즈미의 압승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듯했다. 소연방의 해체 등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일본 정치에서 사회당 및 공산당의 몰락을 가져왔다. 좌익 정당은 더 이상 대안세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대안세력으로 기대를 모으면서 등장한 정당이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그 민주당이 자민당에서 온 인사들, 사회당에서 떠나온 인사들, 그리고 시민운동 출신자 등 다양한 성향의 구성인자들로 이루어진 탓으로 정책노선의 일관성을 견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측면은 자민당과 거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또한 야당으로서 우정민영화라는 일본 국내 개혁의 최대 화두를 빼앗기고 "개혁을 막지 말라"는 고이즈미의 선동선전에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야당인 민주당과의 대결보다는 고이즈미의 독주에 반대하여 자민당을 탈당한 이탈파를 이른바 '자객' 후보를 내보내 제거하느냐 여부가 관심사였다.

심각한 국면은 총선 이후의 양상이다. 이미 자민당과 공명당의 공동여당은 군대보유와 해외교전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9조 개정을 확실히 하는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그런데 총선 패배 후 민주당 대표로 새로 선출된 마에하라 세이조는 여당과 함께 개헌에 동조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사회당, 공산당의 몰락 이후 일본 사회의 대안세력으로서 우경화, 재군비화에 제동과 견제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민주당이 백기를 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고이즈미-아소-아베로 이어지는 우경화, 재군비화, 개헌노선은 적어도 일본 국내에서는 거칠 것 없이 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당의 개헌 동조, 재군사화 브레이크 없앤 꼴**

이야기를 하는 곤도 의원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은 가늠할 수 있는가. 나는 의문을 제기했다. 오히려 민주당이 일본의 평화체제 수호에 앞장서고 아시아 국가로서 이웃 나라들과 선린우호의 확고한 정책을 취하겠다는 입장에 섬으로써, 자민당과는 분명히 다른 국가 미래의 전망을 펼쳐 보이는 것이 일본 유권자들의 선택을 가능하게 할 것이 아닐까.

이같은 내 생각의 일단은 지난해 당의장 신분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오사카 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이기도 했다. 즉 일본은 아시아 이웃 나라들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과거사 왜곡, 우경화, 재군사화 등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와 우호관계 수립으로 전환해야 아시아의 이웃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대 아시아 평화 이니셔티브(Peace Initiative) 외교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일본이 독일 모델을 아시아에서 실천하라는 것이다.

일본 민주당이 고이즈미 우경화 드라이브를 거슬러서 일본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불안요인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고이즈미 드라이브의 부속품 역할에 그칠 것인가. 그 선택은 일본 민주당이 대안정당으로 발돋움하여 다음 집권을 기약할 것인지, 아니면 자민당의 들러리로 머물다 소멸할 것인지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와 세계의 흐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심상치 않은 기사들이 뜨고 있다. 지난 총선 직후 고이즈미 총리가 신임 마에하라 민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고이즈미는 중, 참의원 722명의 38%인 272명을 감축하고 의원연금을 폐지하며 지역구에서 낙선한 인사가 비례대표의원으로 부활하는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등, 정치권의 반발은 클지 모르지만 국민지지는 치솟을 인기몰이 식의 정치개혁 프로그램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딜까. '작은 정부' '정치개혁' 깃발을 흔들면서 결국 헌법개정, 재군비화라는 정상을 향해 돌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곤도 의원의 표정이 못내 밝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곤도 의원 같은 젊은 정치인들에 대한 기대를 접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분투와 행운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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