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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美 동북아 패권 전략에 평택 내줄 순 없다"

미군기지 이전지역 주민들 "우릴더러 어딜 가라고"

전국적으로 한파가 몰아친 11일, 경기도 평택역 앞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반대 열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날 낮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 한반도 평화실현! 2차 평화대행진'이 열린 것. 지난 7월 평택 팽성읍 대추리에서 열린 1차 평화대행진에 이어 평택관련 두 번째 대규모 집회였다.

이날 '평화대행진'에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미군기지 확장 대상지역인 평택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주민 150여 명 및 해외에서 팽성 주민들을 지지하기 위해 찾은 조세 보베 등 해외 인사들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노동자, 농민, 학생, 민주노동당원 등 7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내년에도 농사짓자", "오는 미군 막아내고, 있는 미군 몰아내자" 등의 구호 속에 집회 열기로 한파를 녹이며 오후 6시 촛불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미군 막아내서 내년에도 농사 짓자"**

가장 먼저 집회 분위기를 띄운 사람은 프랑스 농민운동가 조세 보베. 보베는 해외 참가 인사들과 함께 연단에 올라 팽성 주민들과의 연대 의사를 밝힌 뒤 "유에스 고 홈!(U.S Go Home)"이라고 연달아 구호를 외쳐 참가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어 연사로 나선 권영길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미국은 동북아 패권 장악을 위해 평택에 아시아에서 제일 큰 미군 전진기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평택을 미군에 내주고 어찌 한반도의 평화를 얘기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경식 전국농민회 총연맹 의장은 "10년 전 WTO라는 괴물이 나타나 우리 농민들을 고향에서 쫓아내 농약 마시고 죽게 만들더니, 이제는 미국과 WTO의 앞잡이인 노무현 정권이 폭력경찰을 동원해 농민 두들겨 패 죽이고,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에서 평택 농민들을 내 몰고 있다"고 말했다.

전재환 민주노총 비대위 위원장도 "미국은 WTO와 초국적 자본을 앞세워 노동자와 농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또한 군사력을 앞세워 이라크 양민들을 학살하고 평택을 군사전략기지화해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이 어찌 평택 팽성 주민들만의 일이겠느냐"고 지적했다.

***"미군 평택 이전은 동북아 패권 장악 전략…전쟁 위협 고조"**

이어 주한미군철거가 등 민중가요 공연으로 분위기를 돋운 뒤 미군기지 예정지인 팽성 주민들이 무대에 올랐다. 팽성 주민들은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한 '팽성은 우리땅'을 불렀고, '고향의 봄'을 부를 때는 참가자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들은 무대에서 내려가면서도 아쉬운 듯,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평택역까지 찾아준 참가자들이 고마운 듯 "우리를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풍자한 탈극과 미제 미사일을 발차기로 격파하는 태견 시범, 각종 문예단의 공연 등이 이어지며 흥을 돋궜다.

***"온 몸을 던지는 것 말고는 미군 막을 방법이 없다"**

'평택미군기지확장 및 강제토지수용저지 투쟁 선언문'은 올해 초부터 직접 평택에 거주하며 주민들의 싸움을 돕고 있는 문정현 신부가 낭독했다.

문 신부는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한미 양국이 자행하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기지확장과 강제토지수용을 단호히 반대한다"며 "온몸을 던지는 투쟁 외에는 강제철거를 막을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한 이들은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평택시민을 비롯한 국민의 지지와 동참을 백방으로 조직해 나갈 것이다"며 "또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반대하는 세계의 평화애호 민중들과도 힘을 합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오는 1월 14일에는 주민 촛불 500일 기념행사를 열고, 2월 12일 정월 대보름에는 제3차 평화대행진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4시경 참여정부, 평택시장, 국방부, 부시, 평택시의회 등 '평택 오적'이 적힌 상여와 트랙터 3대를 앞세우고 평택 시가지를 행진한 뒤 평택 시청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경찰과의 충돌 없이 오후 6시경 마무리됐다.

***매향리 주민들 "사격장 폐쇄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한편 이 날 집회에는 54년만에 미군 사격장을 폐쇄시킨 화성군 매향리 주민 150여 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매향리와 평택 팽성은 불과 30Km 거리다. '쿠니 사격장' 폐쇄 활동에 앞정 선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위 위원장은 "평범한 농민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부 부처와 미군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며 팽성 주민들을 걱정했다.

전만규 위원장은 "사격장이 폐쇄되고 나니 소음, 위험도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 우의도 좋아지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평택 주민들도 꼭 이길 것"이라 말했다. 이어 전 위원장은 "정부와 미국은 매향리 쿠니 사격장 폐쇄시키니 군산 앞바다에 사격장 만든다고 하고, 용산 기지 몰아내자고 하니 평택에 기지 만든다고 한다"며 "조삼모사식 행태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결론은 주한미군 전면철수밖에 없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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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평성 주민들의 한탄…"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뭘 하겠나"**

"이 나이에… 돈이고 뭐고 못 나간다"

11일 제2차 평화대행진이 열리는 평택역 앞에서 만난 팽성읍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부가 준다는 돈으로 다른 곳으로 나가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농촌에서 젊은이들을 찾기 힘든 것은 비단 이곳 팽성만은 아니다. 이 나라 어느 곳의 농촌에서도 젊은이들을 찾기란 힘들다. 다들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겠지만, 상황과 능력이 되는 이들은 이미 다들 농촌을 떠났다.

남은 이들은 '땅을 버릴 수가 없어서' 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못 떠난 이들이다. 그러하기에 팽성읍 주민들은 더욱 마을을 나갈 수가 없다. 평생 살아 온 이 땅을 떠나 살 곳도 마땅치 않거니와 평생 먹고 살아 온 농사를 버리고 새로운 일을 찾기에는 나이도 너무 많다.

***"평생 농사 외에 다른 일은 해 본 적 없다"**

젊은 시절 평택시 팽성읍 대두리로 시집 와 줄곧 여기서 살았다는 한 여성(51)은 늦게 얻은 중학교 3학년 아들, 그리고 중풍으로 운신이 힘든 남편(58)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친정이 백령도라는 그녀는 "친정에서도 농사 짓는 것 외엔 배운 것도 없고, 여기 와서도 농사만 짓고 평생을 살았다. 이제 와서 돈을 얼마를 주든 그 돈으로 뭘 해먹고 사냐"며 한숨을 쉬었다.

중풍으로 운신이 힘든 남편을 집에 두고 영하 10도 가까운 날씨에도 평택역 앞으로 나온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 그대로 "내년에도 농사짓고 살기" 위해서인 것이다.

도두리에 사는 정현대(60) 씨는 6000평 가량 벼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평당 15만 원을 준다니 보상금도 꽤 받을 수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못 나간다"고 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평생 농사 짓던 땅을 떠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농사 짓다 죽는 것이 꿈이여. 평생 살아 온 여기 버리고 어디 가서도 못 산다"며 467일째 매일 저녁 7시 열리는 촛불시위에도 안 빠지고 참가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에서는 수용지역의 경우 평당 15만 원을 쳐준다지만, 이 수용지역의 주변 농지는 개발 기대감에 평당 130만 원까지 치솟은 곳도 있어 상황은 더욱 복잡하기만 하다.

***"돈 준다지만 그 돈으로는 전세금도 모자라"**

올해 80세인 할머니의 사정은 더 딱하다. 하나뿐인 아들도 죽어 없고 며느리, 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할머니는 대학교 1학년인 손자도 돈이 없어 휴학중이라고 말했다. "지금 있는 쬐끄만 땅으로 겨우 겨우 먹고 사는디… 돈 준다지만 그 돈으로 작은 집 전세도 못 얻는다"고 읊조렸다.

남편도 아들도 잃고, 함께 사는 며느리도 몸이 약해 어디 가서 일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할머니는 "여기서 나가라는 얘기는 우리더러 죽으라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나눠주는 전단지의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보던 할머니는 기자와 인터뷰 중에 갑자기 종이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화가 나서 그러지.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기껏 세금 내놨더니 그 돈으로 땅 사서 미군한테 갖다 바친다잖어. 화가 안 나?"

***먹고 살 길 막막한 건 보상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 전체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며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두리의 경우 60여 가구 중 25가구가 토지 수용을 받아들이고 정부에 땅을 팔았다. 그러나 25가구 중 이사를 나간 집은 아직까지 2가구뿐.

농사 짓던 땅도 팔고 보상금도 받았는데 왜 아직도 이사를 안 나갔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숨을 내쉰다. 돈은 받았지만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평생을 살아 온 이곳을 버리고 마땅히 갈만한 곳도, 가서 먹고 살 일도 막막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내년 봄, 그들은 들에 씨를 뿌릴 수 있을까**

평택기지 대책위 김용한 위원장은 "3월 파종 전 아마도 1~2월쯤 정부가 행정대집행(강제철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토지강제수용 결정이 내려진 만큼 정부가 강제철거에 나설 경우 정부와 주민들 사이에 물리적인 마찰이 예상된다.

정부가 강제로 내 쫓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머니(80)의 대답은 단호했다. "절대 못 나가지. 나를 죽여서 시체로 드러내지 않고서는 내가 살아 있는 한은 한 발자국도 못 나가."

예년보다 일찍 온 혹한 속에 평택읍 주민들은 날씨 때문이 아니라 사는 문제 걱정으로 더욱 춥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꽁꽁 얼어버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내년 봄에도 파종하고 농사지을 수만 있다면 이런 추위쯤은 문제도 아니라는 팽성읍 주민들. 그들에게도 이 추위가 지나고 나면 봄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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