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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대학은 이제 보통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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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靑 "대학은 이제 보통교육기관"

김진경 교육비서관, 정운찬 서울대총장 간접비판

김진경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이 18일 "우리의 대학 교육에는 엘리트는 없고 엘리트주의만 남아있다"며 국립대 특수법인화에 대한 일각의 반대주장을 비판했다.

***김진경 "대학 취학률 80%를 넘어, 이제 대학은 '보통교육기관'"**

김 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자신의 블로그 '백년대계'에 "엘리트는 없고 엘리트주의만 있다...국립대 특수법인화와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를 보는 시각"이라는 글을 올렸다.

김 비서관은 이 글에서 우리 대학이 그 출발은 '독일 교양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비서관은 "엘리트주의 대학관이 대학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서 대학구성원 전체와 국민들 의식 속에 일반화되어 있는 현상은 문제"라며 "이런 관점은 대학 취학률이 80%를 넘어서 보통교육 단계로 진입한 대학의 현실과 배치되기 때문에 우리 교육구조의 왜곡을 지속시키고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비현실적인 엘리트주의 대학관을 바꿔나가는 의식전환 작업과 함께 진전되어나갈 수밖에 없다"며 "그런 점에서 경제계와 사회 일각에서 국립대 특수법인화를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주장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보통교육 단계에선 학생선발 제도 느슨해져야"**

김 비서관은 또 "보통교육의 단계로 들어서면 학생들의 진로분화가 대학 이전이 아니라 대학진학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라며 정부의 입시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서울대 등을 비판했다.

그는 "대학 학생선발 제도는 느슨해지고 대신에 대학은 엄격한 질 관리 체제를 갖추어 학생들이 대학입학 이후에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학입시 경쟁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에서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었을 뿐 갈수록 치열해져 초중등 교육이 끊임없이 획일화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의 이같은 '엘리트주의적 교육관'에 대한 비판은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서울대 정운찬 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 등 대학교육 정책을 놓고 현 정부와 여러차례 충돌해온 정 총장은 지난 14일 서울대에서 열린 개교 59주년 기념식에서 "현 정부가 대학을 너무 속박한다"며 "현재 우리사회에 생산적인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균등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었다.

다음은 김 비서관이 블로그에 게시한 글의 전문이다.

***엘리트주의 대학문화의 공과 과**

독일문화의 가장 빛나는 시대가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대개는 괴테의 시대를 이야기할 것이다. 괴테의 시대에 독일은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음악 등 거의 모든 문화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을 낳았다. 어떻게 독일에 괴테의 시대가 가능했을까? 프랑스와 독일을 비교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시민계급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대혁명 이전부터 시민계급 출신의 엘리트들은 활발하게 상류사회인 궁정으로 진출하면서 힘을 키우고 있었다. 이렇게 궁정사회로 진출한 시민계급의 엘리트들은 끊임없이 자기 지위를 높여가려 했다. 궁정사회에서 지위를 높여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매너를 갖추어 사교계에서 높은 평판을 얻는 일이었다. 따라서 좋은 매너를 중시하는 관행과 의식은 점차 시민계급 전체로 퍼져갔고, 종국에는 국민 전체로 퍼져나가 프랑스의 국민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엘리아스는 이렇게 좋은 매너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국민의식을 '문명'이란 용어로 나타내고 있다.

독일의 경우는 프랑스와 아주 대조적이다. 독일은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이 상대적으로 늦었고 따라서 시민계급이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독일이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봉건 토지귀족인 융커였다. 자본가로 변신한 토지귀족들이 상류사회인 궁정으로 활발하게 진출해 들어간 반면 시민계급의 엘리트들에게는 그 길이 철저하게 막혀 있었다. 이렇게 상류사회로의 진출이 막힌 시민계급의 엘리트들이 주로 진출해간 곳이 독일의 대학이었고, 이 대학을 거점으로 문학, 철학, 역사, 예술의 꽃을 피우게 되는데 그 대표주자가 괴테였다.

당시 독일의 상류사회인 궁정에서는 프랑스어를 쓰고 프랑스식 매너를 매우 존중했는데 괴테로 대표되는 시민계급의 엘리트들은 이러한 매너를 속물주의로 매도하고 의식적으로 독일어로 창작을 했으며 학문과 문화예술상의 창조를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이렇게 학문과 문화예술상의 창조를 높게 평가하는 태도는 자존심이 상해 있던 당시의 독일 시민계급에게 쉽게 받아들여졌고, 궁극적으로는 독일 국민들 속에 널리 자리 잡아 하나의 국민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엘리아스는 이것을 '문화'란 개념으로 나타내고 있다.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유럽의 대학관**

유럽의 대학관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주의에 입각해 있다. 이 엘리트주의 대학관의 근저에는 "사람은 태어날 때 일정한 자질을 타고 난다"는 플라톤의 관점이 오랜 전통으로 깔려있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진로를 대학 이전단계에서 일찍 분화시킨다. 그래서 일단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그 사회의 엘리트로 간주되고 자유와 다소의 방종까지도 허용된다. 엘리트로서의 자질을 타고 난 학생들이니까 특별한 경쟁체제를 만들지 않아도 제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럽 나라들의 대학 취학률이 아직도 30%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유럽 대학의 엘리트주의 전통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나라들 중에서도 독일의 대학관은 가장 엘리트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독일이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대학이 가졌던 특수한 지위 때문이다.

***유럽의 대학관, 미국의 대학관 그리고 한국 대학**

한국의 대학에 가장 먼저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이 독일 대학의 엘리트주의인데 우리는 이것을 '독일 교양주의'라고 부른다. 문화예술상의 창조를 높이 평가하는 이 '독일교양주의'는 먼저 일본 대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의 대학에도 그대로 옮겨졌다. 식민지인이기 때문에 사회정치 분야로의 진출이 막혀있던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독일 교양주의'는 큰 위안이 되기도 하고, 소극적이나마 저항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대학의 자유와 자율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문화예술상의 창조로 짓밟힌 자존심을 세우며 저항감을 표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대체로 80년대까지 이어져 사회적으로 일정하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분단과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왜곡된 역사 속에서 대학은 '대학의 자유와 자율'을 근거로 한 인문주의적 저항의 거점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엘리트주의 대학관과 대학문화는 80년대를 지나면서 긍정적 역할보다는 그 부정적 역할이 훨씬 커지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대학은 미국식 대학체제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미국의 대학관은 유럽의 엘리트주의 대학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에서는 대학 이전에 학생들의 진로가 분화되지 않고 대학이라는 최종 단계에서 분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원한다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지만 대학 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체제 때문에 졸업하기는 쉽지 않아 50% 정도가 중도 탈락하고 만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대학은 미국식 대학체제의 영향을 입어 급격히 팽창했다. 대략 대학 취학률이 30%가 넘으면 대학교육이 대중교육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보고, 70%가 넘으면 보통교육의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대학의 취학률은 80년대에 이미 대중교육 단계를 훨씬 넘어서기 시작했고, 현재 80% 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미 보통교육의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보통교육이 된 대학교육에 엘리트주의가 적용된다면?**

그런데 문제는 우리 대학의 몸체는 이렇게 보통교육 수준으로 커졌는데 우리 대학의 문화와 관행은 여전히 유럽식 엘리트주의 대학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보통교육 수준으로 확대된 대학교육에 엘리트주의 대학문화의 관행이 적용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첫째, 대학이 보통교육의 단계로 들어서면 학생들의 진로분화가 대학 이전이 아니라 대학진학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니까 대학 학생선발 제도는 느슨해지고 대신에 대학은 엄격한 질 관리 체제를 갖추어 학생들이 대학 입학 이후에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학입시 경쟁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에서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었을 뿐 갈수록 치열해져서 사실상 학생들의 진로를 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체제 아래서는 학생 학부모들이 자기 진로적성에 따른 진학보다는 특정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기 때문에 초중등 교육이 끊임없이 획일화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일류대 입학 경쟁은 우리 사회의 병폐인 학벌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둘째, 엘리트주의 대학문화의 관행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대학에 엄격한 경쟁체제나 질 관리 체제가 들어서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고등학교까지는 죽어라 공부하다가 일단 대학에 들어가면 놀거나 아니면 자기 전공과는 무관한 고시 공부를 한다.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대학진학 이후에 학문적 경쟁을 통해 진로를 분화시키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대학의 팽창은 그대로 대학원의 팽창으로 이어지고, 대학원의 양적 팽창은 대학원 교육의 질 저하와 과잉교육으로 인한 교육적 낭비를 가져온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과 질 저하는 창조적 지식 생산의 엔진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국가와 사회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참여정부의 대학혁신 정책**

참여정부의 대학혁신 정책은 위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추진했던 서울대의 '대학원 중심대학'화는 "대학교육이 보통교육 단계로 진입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일류대 입시경쟁의 해소와 대학교육의 질 제고"를 추구한 정책이었다. 대학원 연구 지원사업인 BK21은 원래는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서울대에 집중할 계획이었으나 서울대의 '대학원 중심 대학'화가 실패함에 따라 대학원 연구 지원사업으로 수도권의 여러 대학에 분산되기에 이르렀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강조하고 있는 '대학 특성화' 역시 각 대학이 장점으로 키울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여 어느 분야에서는 일류가 되게 함으로써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가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대학을 다양화함으로써 일류대로 집중되는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진로 분화의 경쟁이 대학 이전이 아니라 대학입학 이후에 이루어지는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2008년 대입 개선안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지방대 학부 지원사업인 NURI사업과 산업과 대학의 연계 강화 역시 크게는 '대학 특성화' 사업의 일환이며, 거기에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문제의식이 곁들여진 것이다. 지방마다 지역특색에 맞게 특성화되고 자생력을 갖는 대학을 육성함으로써 지방대학이 지역 균형발전의 동력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앞의 정책들이 주로 대학간의 균형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라면 학문 간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정책들도 있다. 법학 전문대학원, 의·치 전문대학원, 상·경 전문대학원, 약대 6년제 도입 등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학문영역들을 국제적 기준에 맞게 질을 높이고, 그러한 학문영역들이 상대적으로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학문영역에 일으켜온 왜곡현상을 완화하여 학문 간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책들이다. 이공계의 우수 학생이 의·치대로 집중되는 현상이나 인문, 사회 영역의 우수 학생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현상과 같은 왜곡 또한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바로잡아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아직까지 잔존하는 군부정권 아래서 형성된 대학사회의 폐쇄성**

사실 문민정부 이전에는 정책다운 대학정책이 없었다. 군부정권의 대학정책은 대학정책이라기보다는 학생운동의 통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안정책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상명하달식의 행정과 물리적 강제력을 수단으로 그 정책들이 실현되었고, 막상 해결되어야 할 대학교육의 문제들은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문민정부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산적한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식기반 사회에서 대학교육의 질 문제는 그 사회 전체의 생존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긴급성을 가진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대학교육 정책은 커다란 벽에 부딪쳐 왔다. 그 벽은 다름 아닌 군부정권 아래서 형성되어온 대학사회 의사결정 구조의 폐쇄성과 집행구조의 불투명성이었다. 군부정권 아래서 대학사회는 최소한의 대학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노력들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교수협의회 같은 내부 의사결정 구조와 총장 직선제 같은 집행 책임자 선출방식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이 의사결정 구조와 집행구조는 군부정권과 대립하는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외부의 의견이 들어갈 수 없는 폐쇄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와 파트너십을 형성하기보다는 정부와 대립하는 관행에 익숙해져 있다.

***취약한 대학의 리더십**

물론 학사운영이나 학문적 자율성은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학교경영의 측면에서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에 국민의 의사가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상명하달식의 행정체계를 통해 정책을 관철하는 것은 민주정부로서 할 일이 못된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정당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대학사회와 합의를 만들어나갈 방도를 정부로서는 뚜렷이 가지고 있질 못한 것이다.

설령 이러한 난관을 뚫고 어떤 정책이 집행 단계에 들어간다 해도 그 정책이 제대로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현재 대학의 리더십이 취약하다. 우선 대학 총장의 학교경영에 대한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보직을 주는 것 이외에는 인사권도 없고, 재정운영에 대한 권한도 매우 제한되어 있다. 또한 교수들에 의해 뽑히기 때문에 교수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나는 집행을 할 수 없으며, 교수사회 내부가 분열되면 총장의 리더십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립대의 회계는 기성회비 회계, 국고 회계, 민간 R&D 회계 등이 나누어져 있어서 돈의 흐름이 매우 불투명하다.

이와 같은 불투명성은 정부의 대학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국민의 세금을 수천억 투여할 때는 그만한 객관적 근거와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게 잘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원론적 이야기로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립대 특수법인화 정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대학에 대한 R&D 투자를 본격화하해 나가기 위해서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사회 형태의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 학문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학사운영 등에 대한 의사결정기구의 분리. 학교 경영에 대한 총장의 자율적 권한 강화 및 선출방식 개선, 단일 회계를 통한 회계의 투명화'를 핵심으로 하는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앞에서 이야기한 몸통과 머리가 따로 노는 대학의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고, 대학에 대한 R&D 투자를 본격화하여 우리 대학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나가기 위한 기반 형성작업의 첫걸음이다.

***'국립대 특수법인화'에 대한 이해와 오해**

국립대 특수법인화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특수법인화가 고등교육 비용의 국가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그 국가사회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학교육의 질을 어떻게 높이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투여되는 국가예산을 줄이려고 반대를 무릅쓰고 안간힘을 쓰는 정부가 도대체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현재 우리 대학에 대한 국가재정 투여는 OECD 평균 수준에 비해 대단히 낮다. 대학교육에 대한 OECD 국가들의 평균 국가부담은 GDP의 1.1%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0.3%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그 작은 예산마저 줄이려드는 정신 나간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정부는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예산을 확대해갈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학사회의 의사결정구조와 집행구조, 회계구조가 너무 폐쇄적이고 불투명해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대학의 지나친 폐쇄성과 불투명성을 해소함으로써 투자 확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형성하려는 의도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다.

국립대 특수법인화의 또 하나의 목표는 국립대가 국립대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다. 국립대의 주요한 역할은 (1) 국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학문의 육성 (2)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기초학문의 육성 (3) 가정이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고등교육 기회 제공 (4)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지식의 지역 거점 확보 (4) 정부 주요 교육정책 실현의 거점 확보 등일 것이다.

***국립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아야**

현재 우리의 국립대는 위와 같은 국립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걸까? 기초학문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학문의 육성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시장에서 인기 있는 학문영역을 키움으로써 이미 형성된 학벌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지 않은가? 국립대의 중심이 법대, 의대, 상경대에 있지 어디 기초학문 영역이나 이공대에 있는가? 우리의 국립대가 과연 가정이 어려운 영재들을 조기에 발굴해서 육성함으로써 국가의 인적 역량 손실을 막으려 노력한 적이 있는가? 거꾸로 일류대 경쟁구조를 유지 강화함으로써 교육여건이 좋은 부유층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지방 국립대의 경우 가정환경이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이 있지만 중앙에 대한 학문적 종속에서 벗어나 지역에 맞는 지식거점으로 서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 왔는가? 국립대학이 정부와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왜곡된 교육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교육정책을 한번이라도 선도해 본적이 있는가? 주요 정책들이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논의 절차 없이 거부되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늘 재정지원과 연계하여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닌가?

국립대 특수법인화에 대한 반대 논거 중 하나는 특수법인화가 국립대의 공공성을 훼손하리라는 것이며 기초학문의 위기를 가져오리라는 우려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는 거꾸로 물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국립대의 공공성이 지금보다 어떻게 더 훼손될 수 있으며, 기초학문이 어떻게 더 지금보다 변두리로 밀릴 수 있단 말인가?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합리적 의사결정구조, 자율성과 책임성이 있는 집행구조, 투명한 회계구조를 마련함으로써 국립대가 국립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유도할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자는 데 그 주요한 취지의 하나가 있다.

학생들은 국립대 특수법인화가 국립대의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으나, 가정환경 때문에 고등교육의 기회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참여정부의 교육적 원칙의 하나인 만큼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여건이 어려운데 획일적으로 특수법인화가 추진됨으로써 지방대의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으나 지방대를 지역의 지식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만큼 충분히 각각의 상황을 고려할 것이며, 무리하게 획일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엘리트는 없고 엘리트주의만 있다?**

우리는 '독일 교양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엘리트주의 대학문화가 일제하에서 군부정권에 이르는 고난의 시기에 했던 긍정적 역할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 정신이 특히 인문 사회 등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자긍심으로서 살아있어야 함을 수긍한다.

그러나 그러한 엘리트주의 대학관이 대학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서 대학구성원 전체와 국민들 의식 속에 일반화되어 있는 현상은 문제라고 본다. 그러한 관점은 대학 취학률이 80%를 넘어서 보통교육 단계로 진입한 대학의 현실과 배치되기 때문에 우리 교육 구조의 왜곡을 지속시키고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비현실적인 엘리트주의 대학관을 바꾸어나가는 의식전환 작업과 함께 진전되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획일적으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역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계와 사회 일각에서 국립대 특수법인화를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주장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립학교법 개정과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동일한 맥락**

사립학교법 개정이 뜨거운 현안이 되어 있다.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사실 사립학교법 개정과 동일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이 사립대 의사결정구조의 개방화와 합리화, 집행구조의 책임성 제고, 회계구조의 투명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국립대 특수법인화는 국립대학 의사결정구조의 개방화와 합리화, 집행의 책임성 제고, 회계구조의 투명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와 관련해서 참으로 묘한 의제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은 대체로 국립대 특수법인화를 반대하고, 국립대 특수법인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또 대체로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한다. 보통교육화한 대학의 현실과 엘리트주의 대학관 사이의 괴리, 그것이 일으키는 교육구조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경제적 효율성 대 민주적 가치라는 가짜 대립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제의 왜곡이 계속된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어, 우리 대학은 정말 엘리트는 없는데 엘리트주의만 판을 치는 사나운 꼴이 될 수도 있다.

국립대의 당사자들은 국립대 특수법인화가 신분의 불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국립대 특수법인화를 통해 추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문제에 인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심탄회한 대화와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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