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플레이오프 4차전. 1승2패로 쫓기던 두산 김경문 감독은 3차례의 기회에서 보내기 번트 대신 강공을 택했지만 모두 병살타가 나와 고배를 마셨다. 반면 삼성의 선동열 수석코치(현 감독)는 한 템포 빠른 과감한 투수교체로 삼성의 한국시리즈행을 이끌었다.
바둑으로 치면 두산 김경문 감독은 '세력'을 중시하는 스타일이고 삼성 선동열 감독은 '실리'를 최우선시한다. 하지만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김경문 감독은 '이기는 야구'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기존의 공격야구에 더해 보내기 번트 등 세밀한 작전이 단기전에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는 15일부터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삼성과 두산의 승부는 '불펜 투수'와 '선발 투수'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은 올 시즌 10승1패(승률 1위), 16세이브를 기록한 신인투수 오승환을 필두로 2명의 사이드 암 투수 권오준(17세이브), 박석진(15홀드)과 안지만(14홀드) 등 불펜진이 탄탄하다. 선동열 감독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던 임창용 투수가 한국시리즈 출장명단에서 제외된 가운데 삼성은 배영수, 바르가스, 하리칼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릴 예정이다.
삼성은 선발 투수가 좋지 않을 경우 불펜진을 대거 투입하는 '물량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지키는 야구'를 표방하는 선동열 감독의 족집게 같은 불펜 용인술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두산의 방망이와 피할 수 없는 격돌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두산은 선발 투수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아에서 이적한 뒤 두산의 에이스로 자리잡은 리오스와 랜들이 외야 펜스까지 거리가 짧은 대구구장에서 얼마나 삼성의 타선을 막아내느냐가 최대 변수다. 부상의 공백을 딛고 한국시리즈 선발등판을 준비하는 '로켓맨' 박명환의 역할도 중요하다.
물론 두산은 각각 세이브와 홀드 부문 1위를 차지한 정재훈, 이재우가 이끄는 불펜진도 안정됐지만 삼성에 비해서는 떨어진다. 정재훈과 이재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한국시리즈가 장기전 양상을 보일 경우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은 11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큰 틀에서 두산 선발 투수의 컨디션과 삼성 불펜 투수들의 활약 여부가 시리즈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한국시리즈가 짧게 끝나면 두산에게 유리하고 길어지면 삼성에게 유리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를 놓고 '불펜 시리즈'가 될 것이라는 야구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불펜진의 짜임새에 있어 우위에 있는 삼성은 '불펜 시리즈'양상으로 한국시리즈가 전개되면 두산에 비해 유리하다. 두산은 선발투수가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져야 승산이 있다. 선발이 일찍 무너졌을 때 이재우, 정재훈까지 연결해줄 수 있는 중간계투가 삼성에 비해 열세이기 때문이다.
구원 투수들이 몸을 푸는 장소인 불펜(bullpen)의 어원은 야구계에서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외야에서 투수들이 몸을 푸는 곳이 불 더램 담배회사의 광고판 뒤에 마련돼 있어 불펜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이 그 하나다.
또 다른 주장은 경기 막판에 경기장의 입구를 열어두면 '공짜 관중'들이 '마치 소떼가 우르르 모여드는 것 같이' 몰려들어 선 채로 경기를 보던 장소를 불펜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 이 장소는 지금 투수들이 워밍업하는 곳과 같은 위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떼들이 우리를 들락날락하는 모습처럼 불펜 투수들을 최대한 많이 활용해 감독 부임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겠다는 삼성 선동열 감독과 선발 투수들의 안정된 투구를 발판으로 지난 시즌 삼성에 당한 플레이오프전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두산 김경문 감독 중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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