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지난 2002년 대선 때 입수했다고 주장한 국정원의 도청자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대한생명 인수를 위한 전방위적 대정부 로비 여부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여야 의원들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도 국정감사 증인 채택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한화의 전방위 로비 문제의 규명은 또다시 '수박 겉핥기'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참여연대 "검찰, 김승연 회장에 대한 수사 재개해야"**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 등이 2002년에 폭로했고, 최근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국정원 도청자료'에는 김 회장과 김연배 부회장의 통화내용 중 대한생명 인수를 위한 전방위 로비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2002년 5월 김연배 씨가 독일에 체류 중인 김승연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민주당 이재정 의원을 동원해 로비를 하고 민간위원들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하자 김 회장이 '민주당 한화갑 의원과 노무현 후보를 접촉해 협조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 의원은 "김 회장은 청와대 김현섭 비서관에게 전화해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를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서는 박지원 비서실장이 나서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므로 박 실장을 통해 윤진식 재경부 차관이 9월5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회의 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를 매듭짓도록 조치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주장도 폈다.
정 의원이 말했던 국정원 도청자료가 최근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공적자금 회수와 관련한 대표적 부실처리 사례인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재개 여부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27일 "국정원 직원들의 최근 진술은 김승연 회장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라며 "대검 중수부는 확보된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을 입수해 김승연 회장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재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검찰은 2002년 9월 맨처음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국감을 통해 대한생명 관련 로비 의혹을 제기했을 때 침묵을 지켰으며, 김승연 회장이 서청원 의원에게 건넨 10억 원에 대해서도 이것이 한나라당의 대한생명 인수 관련 로비 의혹 제기에 대한 입막음의 대가였는지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단순 '정치자금'으로 보아 수사를 종결한 전례가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국감 증인채택 불발될 듯…속사정 있나**
그러나 국감 때마다 단골 메뉴였던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한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일은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경위의 이종구 의원(한나라당)이 김승연 회장과 대한생명 매각가격을 1조5000억 원으로 낮게 산정해 헐값매각의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 메릴린치증권의 남종원 전 지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신청을 냈으나 여야 의원 다수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5일로 예정된 재경부 국감에 김 회장의 증인채택이 성사되려면 '1주일 전 출석요구서 통보' 규정에 따라 늦어도 28일까지는 결정이 나야 한다. 또한 10월 11일로 예정된 재경부에 대한 마지막 국감일에 그를 부른다 해도 4일까지는 결정이 나야 한다.
그러나 박종근 재경위원장은 지난주 "여야 간사협의로 증인선정을 하자"고 이건희 김승연 회장 등에 대한 증인채택 결정을 미뤄뒀고, 간사협의에서도 좀처럼 의견조율이 안 되고 있다. 여야 모두에 김 회장의 증인 채택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는 자당의 전략적 방침에 따라 '이건희냐(우리당), 김승연이냐(한나라당)'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최근 "박근혜 대표를 증인으로 요구하니까 다른 한 쪽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요구하고, 이건희 회장을 요구하니까 김승연 회장을 요구하는 등 맞장 뜨는 방식으로 대립하는 것은 증인채택 문제에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라고 양당을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이종구 의원은 "김 회장의 증인채택에 반대하는 것은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의원들 다수도 마찬가지"라며 "엄청난 공적자금 투입 사건이 밝혀지는 것을 여야 공히 원치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증인채택을 꺼리고 있는 의원들에게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내비쳤다.
이 의원은 "김 회장의 로비 의혹이 지난해 국감에서 한 차례 다뤄졌다고 해서 어물쩡 넘어간다면 '어떠한 불법이나 편법도 잠시 숨 죽이다 대충 넘어가면 된다는 학습효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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