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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포바-V.윌리암스,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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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포바-V.윌리암스, '아버지의 이름으로'

[프레시안 스포츠]테니스 코트의 '흑백 대결'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세계랭킹 1위)와 비너스가 윌리암스(미국,세계랭킹 7위)가 1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코트에서 '현대카드 슈퍼매치'를 펼쳤다.

이날 대결은 승부를 떠나, 또 '흑백대결'이라는 외형상의 특징을 떠나 두 사람 모두 유년시절부터 아버지의 열성적인 지원으로 세계적 테니스 스타의 반열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샤라포바의 테니스 인생 바꾼 나브틸로바의 조언**

지난 해 윔블던 테니스 여자 단식을 제패하며 급부상한 마리아 샤라포바가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관련이 있다. 샤라포바의 부모는 벨로루시의 고벨에서 살고 있었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나자 서 시베리아의 니아간으로 이주했고 1년 뒤 첫 딸인 샤라포바를 얻었다.

하지만 니아간도 원전 사고 장소와 너무 가깝다는 두려움 때문에 샤라포바의 가족들은 휴양도시로 유명한 소치로 다시 옮겼다. 소치는 러시아의 테니스 스타 예프게니 카펠니코프가 살던 곳. 이 곳에서 샤라포바의 아버지와 친해진 카펠니코프의 아버지는 4살박이 샤라포바에게 낡은 테니스 라켓을 선물했고 이때부터 샤라포바는 테니스에 입문하게 됐다.

199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테니스 시범경기에 참가한 샤라포바는 인생의 중요한 기회를 맞게 됐다. 윔블던 테니스 여자 단식 9회 우승에 빛나는 '철녀(鐵女)'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샤라포바를 눈여겨 봤고 샤라포바의 아버지에게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테니스 수업을 시킬 것을 권유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샤라포바의 아버지는 딸의 장래를 위해 나브라틸로바의 조언을 받아들여 미국으로 떠났다. 주머니에 고작 700달러만 갖고 있던 샤라포바의 가족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한 셈이다.

샤라포바가 찾은 곳은 '테니스 스타 사관학교'로 불리는 닉 볼레티에리 아카데미. 제니퍼 카프리아티, 모니카 셀레스 등 숱한 스타를 키워낸 볼레티에리는 샤라포바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봤다. 비록 아카데미에 아이를 맡긴 다른 부모들이 '러시아에서 온 샤라포바가 너무 어리고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다'며 항의했지만 볼레티에리는 샤라포바에게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샤라포바의 테니스 실력은 급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움이 있었다. 딸의 테니스 강습료를 벌기 위해 아버지는 갖가지 일을 해야 했고 1년에 겨우 2~3차례 딸을 볼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비자 문제 때문에 미국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샤라포바의 '상품성'을 알아 본 세계적 스포츠 매니지먼트사(社) IMG는 샤라포바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주니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샤라포바는 2004년 윔블던 테니스 여자 단식 패권을 차지해 '코트의 요정'으로 급부상했다. 샤라포바는 우승 직후 관중석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끌어 안고 기쁨을 만끽했고 이 장면은 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돼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흑인들의 불모지' 테니스의 고정관념 깬 윌리암스 자매**

비너스 윌리암스와 세레나 윌리암스의 아버지인 리처드 윌리암스도 샤라포바 아버지 못지 않게 딸을 테니스 스타로 키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 동네 테니스 코치였던 리처드 윌리암스는 큰 딸 비너스에게 '넌 언젠가 세계 최고의 테니스 스타가 될 것'이라고 늘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비디오 테이프와 서적을 통해 테니스를 배운 리처드 윌리암스는 비너스에게 테니스를 직접 가르쳤다. 윌리암스는 단순히 라켓으로 공을 치는 기술적 부분을 지도하기 보다 비너스가 정신적으로 강한 선수가 되길 원했다. '빈민가 출신의 흑인이 무슨 테니스를 칠 수 있겠냐'는 주변의 멸시를 비너스가 이겨내길 바랬던 셈이다.

4살 때부터 쉬지 않고 무려 500개의 연습 볼을 치게 할 정도로 진행된 혹독한 연습 탓인지 비너스는 1990년 남 캘리포니아에서 12세 이하 연령대의 최고 여자 테니스 선수가 됐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유수의 언론은 비너스를 주목했다.

비너스 윌리암스는 1997년 US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했지만 스위스 출신의 테니스 여왕 마르티나 힝기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2년 뒤 비너스의 동생 세레나가 US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힝기스를 제압해 테니스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58년 알시아 깁슨 이후 흑인 여자 선수가 테니스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우승하기는 처음이었다. 여동생의 우승에 자극받은 비너스는 2000년, 2001년 US 오픈과 윔블던을 각각 2연패 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세레나 윌리암스는 2002년, 2003년 윔블던을 역시 2연패했고 여자 테니스계는 '윌리암스 시대'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마치 흑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처럼 윌리암스 자매는 테니스가 흑인들의 불모지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리처드 윌리암스는 지난 7월 비너스 윌리암스가 샤라포바를 꺾고 윔블던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을 때 팬과 언론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슈테피 그라프나 크리스 에버트 등 백인 여자 선수들이 우승했을 때와 달리 흑인인 윌리암스 자매가 우승하면 팬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처드 윌리암스는 "샤라포바가 우승을 했다면 과연 팬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라고 반문하며 '인종차별'이 자신의 딸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암스의 상대전적은 2승 1패로 샤라포바가 앞서 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명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이는 두 테니스 스타의 승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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