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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 대해 무조건 반박하는 '조급증'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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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비판에 대해 무조건 반박하는 '조급증' 버려야"

<기자의 눈> 청와대의 '어설픈 최장집 비판'을 보고

최근 자신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판을 내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대연정'에 대해 비판한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 최인호 부대변인은 12일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반론을 폈다.

두 차례 최장집 교수의 책을 인용해 '대연정론'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는 최근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에 이은 이런 여권의 반박에 대해 최 교수의 의견을 직접 듣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최 교수가 현재 미국에 체류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자가 보기에, 최 부대변인이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를 좌우하는 가장 큰 영향력 그 자체"라며 최 교수에 대해 "지역주의에 대한 패배주의에 젖어 있다"고 지적한 것은 분명한 '오독(誤讀)'과 '오역(誤譯)'의 결과다. 최 교수의 저서에 근거해서 최 부대변인의 글이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본다.

***"최장집 주장은 지역주의에 대한 패배주의"?**

최 부대변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지역주의'를 역사적 결과물인 아닌 '고정된 변수'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주의가 한국 사회의 핵심 갈등이 아니라는 최 교수 주장에 대해 최 부대변인은 "지역주의라는 한국사회의 핵심과제를 사회갈등과 동떨어진 개별사안 또는 선거철에만 반짝 나타나는 한시적 갈등으로만 제한함으로써 논의 전체를 오류에 빠지게끔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선거와 정치에서는 '지역적 기준'의 선택이 '정책적 기준'의 선택을 완전히 압도해 왔다"며 "지역주의는 한국 정치를 좌우하는 가장 큰 영향력 그 자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선 "'지역적 기준'의 선택이 '정책적 기준'의 선택을 압도해 왔다"는 최 부대변인의 주장은 과도한 일반화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소속정당, 자질, 정치력 영향력, 출신지역, 핵심 공약 등 여러가지 변수를 놓고 손익 계산을 해서 합리적 선택을 한다.

이런 주장은 최 부대변인이 지역주의가 가장 강고한 부산 지역에서 '야당'인 민주당, 열린우리당 정치인으로 활동해 왔다는 개인적 역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해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최 부대변인은 본질적으로 "왜 지역주의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가 됐는가?"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지역주의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는 식의, 지역주의에 대한 아주 단순한 인식의 결과로 보인다. 이런 주장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아가 최인호 부대변인이 최 교수 주장에 대해 "아무리 노력해도 지역주의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지역주의에 대한 패배주의'가 내재된 잘못된 주장"이라고 비판한 것도 별로 근거가 없어 보인다.

최 교수는 이미 저서에서 나름의 지역주의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으로 좁은 이념적 스펙트럼 때문에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돼 온 지역주의 문제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최 교수는 한나라당과 '대연정' 등 '비정상적 방법'을 통해 지역주의를 해결하려는 현 정부의 시도를 비판하고 있지 결코 지역주의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지역주의 문제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현 정부가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게 아닌가 자문해 볼 일이다.

***"연정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통령의 절박감에서 기인한 것"?**

최 부대변인은 이어 "노무현 정부가 우리 사회의 핵심적 갈등인 사회경제적 갈등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양극화 문제 해결"이라며 "실례로 최근 발표한 부동산 정책은 참여정부의 양극화 해결의지의 구체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실 양극화의 심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9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적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도 세계화가 어느 한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최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이념과 논리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나라마다 수용되는 형태와 내용은 크게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어떤 성격의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 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신자유주의와 박정희식 성장지상주의의 나쁜 조합"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물론 정책 방향에 대한 평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연정이 양극화 해소 등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대통령의 절박감에 기인한 것"이라는 최 부대변인은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현재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소유구조의 양극화와 대립,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8.31 대책 등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공급확대책의 성격이 강한 8.31 대책과 같은 것들이 과연 현 정부의 양극화 해소 의지를 충실히 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데에다 △나아가 보수적인 야당과의 연정이 이뤄졌을 때 기존의 정책방향이나마 견지할 수 있을 것인지도 대단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비록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간의 정책적 차이가 크지 않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8.31 부동산 정책 발표를 앞두고서는 '한나라당의 흔들기'를 염려하면서 열린우리당에 "야당 의원들을 잘 설득하라"고 각별히 당부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 한나라당과의 연정이 예컨대 부동산 소유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조금 쑥스럽지 않은가 묻고 싶다.

***"최장집 교수,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지지"**

최 부대변인은 최 교수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변경'이라는 현 논의 방식에 대해 비판한 것을 문제 삼아 최 교수가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독해했다. 그러나 그의 책 제4부 '결론'에서 최 교수는 "개인적으로 독일의 경우와 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선호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차이는 선거제도 개편의 목적에 있다. 현 정부가 선거제도 개편을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협소한 틀에서 바라본다면 최 교수는 좀 더 큰 '대표성'의 문제에서 사고한다. 현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보수 양당이 국회 의석의 대다수를 점하는 독점 체제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최 교수는 "온건한 다당제로의 전환과 정책 중심의 경쟁과 연합의 효과를 늘리기 위해 비례대표제의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가 "지역주의 갈등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선거제도를 바꾸게 된다면, 기존 거대 정당들은 규모의 이점을 나눠갖게 되고 보수독점적 양당체제는 강화되며, 약화되는 지역갈등구조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것은 정치권이 정략적 목적으로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주도할 경우 왜곡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로 이해해야 한다.

지난 17대 총선을 앞두고도 시민단체와 학계에선 지역구 의원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 수를 대폭 늘릴 것을 요구했으나, 결국 당시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합의로 지역구는 16석 늘린 반면 비례대표는 10석만 늘린 바 있다.

***"조기숙 수석도 '지역주의 약화되고 있다' 주장"**

최 부대변인은 마지막으로 "지금 상황에서 지역갈등구조가 약화되어 가는 것으로 전제했는데, 현실이 과연 그러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은 최 교수의 저서뿐 아니라 조기숙 홍보수석이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국의 지역주의를 분석해 쓴 <지역주의 선거와 합리적 유권자>(나남출판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 수석은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의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호소력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지역개발 등에서 차별이 존재하고 △지역당과 후보들이 지역감정에 기대며, 대통령 후보자가 지역을 대표하고 있고 △유권자로 하여금 지역감정에 따르도록 다른 특별한 쟁점사항이 없거나 기존 정당이 해체되는 과정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 수석은 보다 구체적으로 "현재의 지역감정은 지난 1988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해체되면서 그 틈을 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조 수석은 나아가 "IMF에 따라 지역감정이 새로운 쟁점에 의해 소멸될 운명이었는데 정당들이 새 쟁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바람에 '꺼져가는 불'이 되살아났다"며 우리가 지역감정을 극복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분석했다. 조 수석은 "앞으로는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의 양당 구조가 자리를 잡으면서 기존의 지역연합이 아닌 다른 형태의 정당연합이 이뤄질 것"이라며 "정당 별로 제시하는 쟁점이 달라지면 저절로 지역감정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분열 극복' 원한다면 '조급성'부터 버려야"**

이렇게 놓고 보면 최 교수를 무작정 비판하고 나서는 게 현명한 일인지 다시 생각케 된다. 적어도 수사적 측면에선 최 교수와 청와대 사이에 분명히 접점이 있다. 단순다수득표제 방식의 현 선거제도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 교수는 대선에 있어서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 교수뿐 아니라 손호철 서강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 등 최근 노 대통령의 대연정론에 대해 비판하고 나선 진보적 정치학자 중에서 정치개혁 과제로서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학자는 없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시기와 방법과 명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 대통령은 연정을 제기한 중요한 이유로 '분열 극복'을 들었다. 진정 '분열 극복'을 원한다면 무작정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반박하고 보는 '조급성'부터 버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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