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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토론'은 즐기면서 '비판'은 싫어한다?

<기자의 눈> 임기 반환점…'말' 멈추고 '귀' 열어야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대한 비판은 취임 초부터 계속된 것이다. 워낙 거침없이 말 하는데다 말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취임 초기에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냐" "깽판" 등 대통령의 과격한 언사에 대한 비판이 주조였다. 그러다가 "대통령 못 해 먹겠다"에 이어 "재신임" 발언까지 정권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듯한 대통령의 가벼운 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사흘 뒤인 25일이면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절반을 넘기게 된다. 그런데 임기 하반기를 맞는 요즘 또 대통령의 '말'이 화제다. 대통령이 전면에 등장해서, 대통령의 말로 정국을 움직이는 '말의 정치'의 시대가 다시 온 듯 하다.

***노대통령, 임기 반환점 앞두고 언론과 접촉 늘려**

노 대통령은 이번 주 두 차례 언론인들과 간담회를 갖는다. 오는 22일 30여개사 지방 언론사 편집국장단과 오찬 간담회를 갖는 데 이어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오찬도 예정돼 있다. 또 임기 반환점인 25일엔 KBS TV 토론에 참여하고, 다음 주엔 중앙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오찬 간담회도 가질 계획이다.

이미 지난달 7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과, 지난 18일 중앙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각각 오찬 간담회를 가졌으니, 7~8월에만 최소한 여섯 번 언론을 통해 입장 표명을 하는 셈이다.

당연히 언론과 접촉 횟수를 늘릴수록 노 대통령의 말이 언론에 등장하는 일이 늘어나고 그 만큼 정국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 6월말 '연정론'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뒤 국민과 언론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접촉 면적을 계속 늘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취임 첫해, 세 차례 TV 토론 등 활발한 언론 접촉**

노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취임 초반기와 많이 닮았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03년 1월 KBS '국민과 대화'에 출연한 데 이어 그해 6월 MBC '100분 토론'과 11월 SBS 'TV 대담'에 출연했었다.

취임 첫해엔 TV 토론 이외에 언론인과 간담회도 자주 가졌다. 2003년 5월 언론사 편집국장단과 간담회, 언론사 논설위원단과 간담회를 열었다. 또 2003년 11월께 신문, 방송, 인터넷 신문 등 보도.편집국장 5-6명씩과 소규모 간담회를 수 차례 가졌다. 지방 언론인들에 대해서도 16개 시.도별로 언론사를 묶어 합동 회견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2004년 2월 생중계된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발언이 빌미가 돼 탄핵 사태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고 화려하게 업무에 복귀한 직후인 2004년 6월 경제부장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강력한 대통령으로 복귀한 노 대통령은 당시 '행정수도 이전 논란'과 관련, MBC '100분 토론' 출연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이라크에서 고 김선일씨 피살 사건이 발생해 이를 취소했다. 그 대신 세 달 뒤 2004년 9월에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004년 8월 분권형 국정운영제를 도입해 일상적 국정운영을 국무총리에게 맡기면서 정치 전면에서 사실상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대야소' 국면이었다. 노 대통령으로선 언론에 직접 등장해 정치적 현안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에 노 대통령은 토론 프로그램 대신 2004년 11월 MBC 라디오 '여성시대', 그해 성탄절에 KBS '사랑의 리퀘스트', 올해 어린이날 MBC 특집 '대통령과 함께 하는 드림! 드림! 드림!' 등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주로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다.

***전면에 나선 노대통령, 오히려 정상적 정치 프로세스 훼방?*

그러다 올해 7,8월 다시 국면이 바뀌어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접촉을 부쩍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을 향해 정치 현안에 대해 육성을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가 그렇게 하는 일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거나 나라의 위상이 걸린 문제도 아니고 국내의 정치구조와 관련된 연정론, 과거청산론, 선거제도, 지역구도 등의 현안을 두고 같은 얘기를 몇 차례씩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 딱한 것이다.

본인이야 국민과 언론이 본심을 몰라준다며 답답해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 또 들어야 하는 언론과 국민 역시 피곤하고 딱하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청와대의 참모와 여당의 수뇌부까지 나서서 비슷한 재방송을 계속해대니 이젠 거의 소음공해에 이른 수준이다. 대통령 자신도 이런 계속되는 발언이 스스로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연정론, 과거사 청산 등에 대한 '불 지피기'라고 시인하는 걸 보면 국민들 역시 답답해 하고 있음을 느끼긴 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이처럼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발언하는 것이 과연 비정상적 정치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고치는 데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논란이 됐던 '공소시효 배제' 문제도 사실상 국회에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 과정에서 논의될 문제였다. 물론 대통령이 '과거사 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정책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국회가 결정할 문제를 여당과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렸던 것이다. 이는 결국 여당 내의 노선 갈등을 낳았고, 앞으로 야당과의 협의 과정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조급증'이 여당과 의회의 기능을 오히려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연정을 해야만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는 게 오늘날의 여당인 열린우리당이라면 이제 그 당이 독자적으로 의미있는 정치행위를 할 수 없다고 대통령 스스로 낙인을 찍은 것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여야의 대화가 서로의 권위를 인정하며 생산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구하는 것과 같다. 그걸 보는 국민은 또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나아가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어쩌면 여권 일각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 각본'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본지가 지난 19일 보도한 여권의 내부문건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에 따르면 "대야당 압박용으로 존경받는 여론 주도층과의 공개적인 대화 기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노 대통령이 언론과 접촉 기회를 늘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 문건은 "대통령의 정치복귀로 축소된 정치영역이 확장되어야만 개혁 헤게모니 작동이 가능하다"고 현 정국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

***현 정부, 비판 싫어하면서 토론 강조?**

물론 노 대통령의 '말'은 토론을 중시한다는 노 대통령 정치 스타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임기 하반기를 맞아 '분열 극복'과 '통합'을 새 국정운영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정부가 비판적 목소리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18일 최근 고유가 사태와 관련, 정부의 무대응을 비판한 기사에 대해 "내가 속마음으로는 기사 쓴 사람한테 `당신 와서 해 보지. 뭐가 있으면 그렇게 하지 말고`라고 생각한다"며 극도의 반감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론 오보뿐 아니라) 대안 없는 기사에 대해선 끝까지 대응하겠다"며 "홍보수석에게 이미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김병준 정책실장도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더 이상 '영웅의 시대'가 아니다"면서 "과도한 비판과 오해와 억측의 재생산이 개인과 조직에 따라 일시 이익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부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토론 과정에서 '비판'은 '대안'을 생산하기 위한 중요한 전 단계다. 또 진정한 '통합'과 '분열 극복'을 위해서는 분열의 지점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게다가 정책 결정자도 아니며 정부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한 정보력을 가진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학자 등에게 "대안이 없으면 입 다물라"고 하는 것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일 뿐이다.

진짜 토론을 하고 싶다면 그런 오만 고집을 버려야 한다. 고집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토론의 촉진요소가 아니라 교란요소가 될 뿐이다. '진짜 본질적인 문제'를 언론과 국민이 몰라준다고 거듭 거듭 얘기하는 데에서 그런 '토론 교란요소'로서의 고집을 읽을 수 있다.

그럼 점에서 '통합'을 원한다면 먼저 말을 멈추고 '비판'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먼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집권 후반기를 열어 갈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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