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미온적 태도'가 여전하다. 강 대표는 4일 "전면 공개해도 두려울 게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으나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은 이미 다 털었다"**
4일 한나라당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강재섭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대선자금과 관련해서 더 이상 움츠리거나 숨기거나 할 게 없다"며 "총풍, 세풍, 안풍 등으로 97년 대선자금과 관련해서는 모든 것을 털어냈고 더 털어내도 아무 관계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강 대표는 "테이프 공개는 274개뿐 아니라 더 있다면 무엇이든 다 공개해도 좋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입장"이라며 "테이프 공개가 두렵지 않다"는 입장을 연거푸 강조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은 마치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전혀 테이프 내용을 공개할 수 없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이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이상하게 보도되고 있다"며 기자들을 향해서도 "여당의 정략적 의도에 말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공개는 현행법 내에서"?**
그러나 공개의 단서로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를 강조한 대목은 여전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 도청으로 얻은 자료는 공개가 금지돼 있다. 삼성 X파일은 물론 274개 추가 테이프의 내용 공개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근거다.
또한 강 대표 논리대로라면 공소시효를 넘은 불법정치자금 사건의 경우는 아예 수사 대상이 되기 어렵다. 예컨대 삼성 X파일에서 드러난 삼성-중앙일보-이회창 전총재 간의 불법정치자금 의혹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는 강 대표가 위법한 행위더라도 공익추구 등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처벌하지 않을 수 있다는 형법상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거론하며, "특검이 공익적 요구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개하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강조했음에도 그 '진정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강 대표는 특히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특검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특검으로 가더라도 현행법을 뛰어넘어 공개를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나라당은 현행법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4당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특별법 제정도 반대하고 있다.
강 대표는 다만 "특검이 판단해서 수사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을 특검법에 적시하기를 원한다면 충분히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윤석 법률지원단장도 이날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테이프 공개는) 헌법의 틀을 지키는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국가가 불법 행위를 한 그 내용을 공개해서 뭘 하자는 것인지, 그 점에 있어서 헌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침묵', 원희룡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편 박근혜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X파일' 관련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강 대표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한나라당이 테이프 공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당내에서 제기됐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 중 "어차피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형태로든 테이프 내용을 알게 돼 있는 만큼 이 자료를 대통령만 알고 있게 둬서는 안 된다"며 "어떤 형태로든 공개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일은 없고 적극적으로 공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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