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회는 박지원을 찾아가 '청탁'했나 '협박'했나

검찰, 'X파일'관련 박지원씨 소환 조사…"다시 부를 수도"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2일 오후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참고인으로 소환돼 4시간 여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이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이날 "박인회 씨의 범죄사실 보강 수사 차원에서 오후 2시45분경 박 전 장관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한 뒤 7시경 귀가 조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테이프를 언론에 공개한 재미교포 박인회 씨가 1999년 9월 도청테이프와 녹취록을 들고 당시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을 만난 날 박 전 장관에게도 찾아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박인회씨는 박 전 장관을 만나 당시 국정원에서 해직된 임모 씨의 복직 청탁 및 자신의 친구 이모 씨의 관광공사 관련 사업권 수주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박인회 씨는 "박 전 장관이 테이프를 받고서 '고맙다'고 말한 뒤 이득렬 당시 관광공사 사장에게 전화 걸러 '내가 부탁한 사업을 잘 봐주라'고 지시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난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박 씨 등이 지금까지 알려진 도청 테이프 내용 근거로 박 전 장관과 '거래'를 했거나, 반대로 공개되지 않은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협박'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이번 도청 파문이 불거진 직후 "박 씨가 테이프를 들고 찾아와 호통을 쳐서 돌려보냈다"고 박인회 씨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편 바 있다. 검찰은 이날 소환된 박 전 장관의 진술 내용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날 박 전 장관을 상대로 박인회 씨를 만난 뒤 천용택 전 국정원장에게 박 씨의 청탁 사실을 알리고 테이프의 존재에 대해 문의했는지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회 씨, 박지원 전 장관에게 들고 간 테이프 내용 관심 집중**

한편 박 전 장관이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게 되면서 '박인회 씨가 박 전 장관을 찾아간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 대두하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박 씨가 박 전 장관에 가져간 테이프에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느냐는 문제다.

박인회 씨가 주장한대로 "박 전 장관이 테이프를 받고 '고맙다'고 말한 뒤 청탁 전화를 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박 전 장관에게 삼성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 등에 불리한 자료를 건네주고 인사 청탁 등을 시도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박 씨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을 들고 찾아가 박 전 장관에게 '협박'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특히 녹취록 가운데 김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이 한 페이지 누락된 점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박 전 장관이 주장하는대로 "호통을 쳤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호통을 친 이유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전 안기부 직원 송영인 씨는 "천용택 당시 국정원장이 도청 테이프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공운영 씨를 처벌하지 않은 것은 공 씨가 당시 정부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협박해 이에 굴복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박 전 장관은 지난 3월 녹내장 등 지병을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보석 허가를 받았으며, 보석 상태에서 '현대 비자금' 사건 재판을 받고 있다. 박 전 장관은 그러나 이번 'X파일' 사건에 연루돼 다시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장관을 더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