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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대통령은 '지역구도 극복'의 상징일 수 없다"

<기자의 눈>'자기 정체성' 부정하는 노 대통령 연정 제안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에 대통령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힌 것은 노 대통령 특유의 '올인 정치'의 전형이며, 정국 돌파를 위해 던진 '승부수'다.

그러나 지난 대선 승리의 의미를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것"으로 스스로 축소시키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책 노선 차이에 대해서도 "실제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한 대목은 눈여겨 볼 만하다. 다시 말해, 자신과 여당이 내세웠던 '개혁'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이 이같은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도 않지만, 한나라당의 수용 여부와 관계 없이 노 대통령의 제안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도 극복 위해 대통령이 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제안한 대연정이 "사실상 정권교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라고 그 취지를 분명히 했다.

요약하자면, 노 대통령은 결국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대통령 권력을 내놓겠다고 천명한 셈이고, 이는 한 가지 명분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거는, 전형적인 노 대통령식 '올인 정치'의 한 정점인 것이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제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명분도 지역주의 극복이었다"면서 "지역주의 극복은 저의 정치 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정권을 내 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지역주의 극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물론 노 대통령이 지적하는 지역주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노무현'이란 정치인에게 대통령이란 막중한 권력을 부여한 것이 '오로지' 지역구도를 극복하라는 취지였는지는 돌이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지난 2002년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 문제는 '한반도 평화'였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은 그 선거의 의미를 '평화공존 세력' 대 '수구냉전 세력' 간의 대결로 규정짓기도 했다. 또 1987년 대우조선사태에 개입해 변호사 자격이 정지당하기도 했던 인권변호사 출신의 노 대통령에게 국민이 기대한 것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다시 한번 약자의 입장에서 파악해달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이런 바람은 "영남 출신의 민주당 후보'라는 것보다 훨씬 크고 진지한 것이었다. 차제에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그는 '지역주의 극복'의 상징이기 어렵다"**

'노무현' 개인의 소신과는 별개로 그의 존재가 과연 '지역주의 극복'의 상징물로 인정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는 영남 출신으로서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이 노 후보를 통해 영호남의 화합을 이루자고 역설했지만 그것은 선거 슬로건이었을 뿐 내심은 영호남 양쪽의 유권자를 움직여 민주당의 '동진(東進)'을 이루면 선거에서 '필승'이라는 선거전략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실제 투표 결과 일부 영남표가 움직이기도 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2004년 총선에서 볼 수 있었다시피 영남 유권자들은 민주당이건 열린우리당이건 전혀 그들의 대표자로 선출해주지 않았고, 호남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의 후보자를 거의 인정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이니 '올인'한다? 올인 해서 해결될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최근 수년간 우리가 겪어 온 정치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지역당 구도를 그대로 두고 선거제도만 갖고서는 지역구도를 깰 수 없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유권자들의 눈에 '노무현 후보'는 '호남당'의 후보였을 뿐이고 '열린우리당'도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지역정치 구도를 정당구조와 유권자들의 고착된 인식이 서로 상승작용해가며 만들어내고 있는, 여전히 살아 있는 구조물로 본다면 그것은 선거제도의 수준에서 해결할 문제일 수 없다. 보다 긴 호흡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지 이번에 제시된 것과 같은 정략적 발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다면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고, 만약 자신의 임기 안에 뭔가 해결책을 만들어내고자 한 것이라면 과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도 저도 아니고 정치공학적으로 일단 판을 한번 흔들어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재신임 건과 탄핵 건에서 재미를 본 '피터'가 결국 '늑대'에 물려가는 비극적 결말을 예비한 것과 다름없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한나라당과 노선 차이가 크지 않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대연정의 파트너로 지목한 한나라당에 "더 큰 목표와 가치를 위해 그만한 차이는 뛰어 넘자"고 제안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역사와 노선이 너무도 다르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실제 양당의 구성을 보면 그 내부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어서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며 "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설득논리를 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 노선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두 정당 모두 현 시점에서 '정책 정당'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책 차이가 그리 크지 않더라도 '개혁'과 '보수'라는, 명백히 다른 가치를 표방하고 지지자들도 이런 가치를 기반으로 지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 감은 것이다.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개혁'을 기치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던 '선명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또 열린우리당은 '당원들이 정당의 주인'이라며 당내 민주주의 강조하는 정당이며, 대통령도 평당원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건 아닌가 싶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이번 'X파일'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며 자신들과 차별성을 강조해 오지 않았는가?

정책을 기반으로 한 연정이 아니면 '정치적 야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 대통령 스스로도 이날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90년 3당합당에 대해 "노선도 원칙도 없는 정치질서를 만들어버렸다"고 평가했다. 지역구도 극복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선과 정체성이 다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연정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보는 건 "우리는 무조건 옳다"는 무오류의 신화에 빠져 있음을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연정이 생산적 정치"?**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쟁을 일삼는 현 정치 상황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면서 "생산적 정치를 위한 역사적 결단"을 내려줄 것을 여야 모두에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초헌법적 발상,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것은 우리 헌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정치적으로 합의가 되면 헌법에 위배됨 없이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운용이 가능하도록 (헌법이) 만들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연정의 대표적 예로 제시하고 있는 프랑스의 동거정부 역사를 잠시만 살펴봐도 "연정이 생산적 정치"라는 주장은 역사적 맥락과 사실 관계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

프랑스의 좌-우 동거 정부는 1986년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총리, 1993년 미테랑 대통령과 에두아르 발레뒤르 총리, 1997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리오넬 죠스팽 총리 등 세 차례 있었다. 프랑스의 동거정부는 직선 대통령이 있지만 내각은 의회 다수당이 구성하도록 한 제5공화국 헌법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사회당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 국민들이 총선에서 우파 연합의 손을 들어주면서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의 동거정부는 헌법에 기반해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자연스런 정치적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또 이렇게 세 차례에 걸친 동거정부의 정책 결정과정은 좌-우파간 대립으로 국정 발목잡기가 계속되면서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와 달리 긴 민주주의 역사를 갖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훨씬 성숙했다는 프랑스에서 말이다.

또 노 대통령이 여소야대 때문에 국정운영이 어려워서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의 견제를 부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마저 든다. 사실상 국회 의석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라는 두 거대 정당이 연정을 구성할 경우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미국과 같은 양당제 국가에서 연정을 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 권한 걸고 제안하는 습관 버렸으면…"**

어떻게 둘러보아도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곱게 보아줄 대목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게 이 연정론이고, 궁극적으로 대연정론이다. 여기에 한 가지 바램을 덧붙이자면 노 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의 의사를 스스로 심사숙고하고 나아가 그들의 뜻을 묻기에 앞서서 '대통령 권한'을 걸고 무엇인가를 제안하는 습관을 이제는 좀 그만 버렸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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