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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에 여전히 끊어야 할 부패 고리 산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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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에 여전히 끊어야 할 부패 고리 산재해"

<기자의 눈>비위 면직자 취업 제한 규정부터 철저히 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민간기업 간부 채용시 부패ㆍ비리 인사를 걸러낼 수 있도록 정부의 인사 파일을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일 반부패기관협의회 회의에서 "앞으로 정치 영역의 권력형 부패보다는 사회 지도층의 부패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며 공공성이 강한 사회지도층의 부패,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강도 높은 예방책이 필요하다"면서 민간기업에 정부의 인사 파일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상에 대해선 개인정보 유출 등 인권 침해 소지가 있으며, 정부가 인사 자료를 통해 민간 기업 인사까지 통제하려는 시대착오적 발상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04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46개국 가운데 47위(10점 만점에 4.5점)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부패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대통령이 직접 챙길 세 가지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는 등 부패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온 대통령의 의도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부적절했다고 판단된다.

특히 비위 행위로 면직된 공직자에 대해선 관련 사기업에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이 부패방지법에 이미 포함돼 있지만 여전히 법망을 피해가는 공직자와 기업이 다수다. 비위 면직자와 그를 받아들이는 기업 사이엔 당연히 부패가 끼어들 소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인권 침해나 국가권력 남용이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제도에 집착하기보다는 이미 시행 중인 제도의 허술한 부분부터 고치는 게 당연히 우선돼야 한다.

***비위 면직자 5년간 관련 기업체 취업 금지하고 있지만...**

부패방지법 제45조 1항에 따르면 공직자가 재직 중 직무와 관련된 부패행위로 당연퇴직, 파면 또는 해임된 경우 퇴직 전 3년간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사기업체와 그와 관련된 법인 및 단체에 5년간 취업할 수 없다.

그러나 부패방지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에게 제출한 '비위 면직자 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2-2003년 비위면직자 664명 중 201명이 취업했고, 이 중 24명이 '취업제한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년 이내에 신속하게 새 직장을 구했다. 심지어 해고 당일 재취업한 사례도 있었다. 국방부에서 뇌물수수로 지난 2002년 5월1일 면직된 A씨는 바로 당일 B엔지니어링 건축사 사무소에 재취업하는 일도 있었다.

부패방지법 제52조는 "제45조 규정에 위반해 비위로 면직된 공직자가 공공기관, 영리사기업체 또는 협회에 취업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부방위가 이 조항에 근거해 처벌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또 비위 면직자에 대한 '취업 제한 기업체'의 폭이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도 있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와 '비위 면직자의 취업제한 사무운영지침'에 따르면 '취업이 제한되는 영리사기업체'의 규모는 자본금 50억원 이상, 외형거래액 연간 150억원 이상이고, 행정자치부 장관이 매년 관보에 고시한 사기업체로 제한돼 있다. 이런 외형상의 규모가 안 되는 기업체는 취업 제한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비위 면직자들이 자신이 하던 업무와 연관성이 강한 업체에 취업할 경우 '제2의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면직 당일 재취업하는 모습을 보며 사실상의 '스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통령의 개인 정보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처사"**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도 바로 이런 '비위 면직자 취업 제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위 사실은 공개된 정보이며 정부의 인사 파일은 그 외에도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정보까지 담고 있는 것이다. 또 정부가 관리하는 인사 데이터베이스는 8만7000여명에 이른다. 정부의 이런 정보 수집에 대해 사생활 침해 등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문제제기도 오랫동안 있어 왔다.

"이런 자료를 민간 기업에게 제공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대통령이 얼마나 개인 정보에 대한 개념이 없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은 말했다.

참여연대 이재명 투명사회팀장은 "노 대통령의 제안은 부패방지를 목적으로 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런 정책이 개인의 인권이라는 또 다른 법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심각한 검토 없이 문제를 던진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이처럼 큰 파문이 일자 18일 "어떤 계층을 대상으로, 어떤 정보를 공개할지 정해진 것은 없다"며 "노 대통령은 개인정보 공개와의 충돌, 인권 문제 등 법률적으로 위험 부담이 있을 수 있으니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새로운 제안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과 더불어 부패방지법 등 기존의 부패방지제도에 대해서도 재검토하는 게 어떨까. 비위 면직자들의 재취업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공직사회에는 끊어야 할 부패의 고리가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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