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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애도 감당 못하며 어떻게 장애인을 돕냐고?"

盧에게 메일 보낸 김인호씨 청와대서 답장 받아

지난 주말 중증 장애인 재미동포가 25년 만에 고국을 방문해 겪은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시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기사가 <프레시안>을 통해 소개됐다.

특수교육 전문가로 로스앤젤레스 교육청에서 일하는 김인호 씨(37)는 노 대통령에게 보낸 메일에서 장애인용 객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특급호텔,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없는 명동 거리, 지하도 아래까지 내려가는 데 30분이나 걸린 장애인용 승강기 등 자신이 경험한 문제들을 지적했다.

김 씨는 지난 6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엮은 수기집 <가슴으로 가는 돛대>(성바오로 출판사)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1주일간 한국을 방문했고, 그의 사연은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중증 장애인으로 양 손을 쓰지 못해 입에 막대기를 물고 컴퓨터 키보드의 자판을 쳐 글을 쓴다.

***청와대 보좌진, 노 대통령 대신 9일 만에 답장 보내**

기사가 나간 뒤 김 씨는 이메일을 통해 기자에게 연락했다. 그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장애인 차별 금지법' 제정이 논의될 것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보이면서 "멀리서나마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13일 노 대통령의 메일을 관리하는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받은 답장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청와대는 김 씨가 노 대통령에게 메일을 보낸 지 9일 만에, 또 관련 기사가 나간 지 4일 만에 답장을 보낸 것. 김 씨의 메일을 노 대통령이 직접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비서관은 답장에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메일을 보실 경우도 있으나 업무상 보좌진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양해를 구한 뒤 "참여정부는 지속적으로 장애인 편의를 위한 제도 개선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 비서관은 "우리나라의 장애인 등을 위한 교통 등 시설은 매년 그 설치를 강화해 가고 있으나 아직은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장애인복지법 외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고, 특히 김인호님께서 제안하신 바와 같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금년 1월 제정되어 2006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서 정부의 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배가의 노력과 함께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당선 초기인 2003년 3월 한 초등학생이 보낸 이메일에 친필로 답장을 보낸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2월 이라크에서 피격돼 사망한 고(故) 김만수씨의 딸 영진 양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해 이메일로 답장을 보내 위로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04년 3월에는 노 대통령의 탈권위적인 모습과 함께 청와대의 달라진 모습에 대한 기사를 쓴 한 출입기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화제가 됐었다.

***"장애인은 죽을 때까지 집에만 있으라는 것인가"**

김인호 씨는 또 15일 발행된 국내의 주간 <장애인 복지신문>에 자신이 기고한 글도 보내왔다. 이 글에서 김씨는 미국에서의 일상생활과 한국에서 경험했던 일 등을 자세히 밝혔다.

그는 특히 자신에 대한 기사를 읽은 한 네티즌이 "왜 한국은 왔으며 왜 호텔에 묵으며 돌아다니느냐고 질문했다"며 "그럼 나는 인간의 기본권리도 없이 죽을 때까지 집에만 있으라는 것이냐"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그에게 "자신의 장애도 감당 못 하면서 어떻게 장애인을 돕겠다는 거냐"고 물어 왔다고 한다. 김 씨는 "나는 여태까지 한 인간 대 인간으로, 친구로, 또 선생으로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의 글 전문을 본인과 <장애인 복지신문>의 양해를 구해 전문 게재한다.

***"장애인도 똑같은 국민입니다"**

저는 두뇌만 제외하고 전신을 사용할 수 없는 뇌성마비의 중증 장애인입니다.

1983년 8월 가족과 같이 미국으로 이민 온 후로 1992년 6월, 2004년 4월 그리고 2005년 6월 이렇게 3번 한국(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내가 매번 갈 때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초현대적으로 많이 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따뜻한 인간미와 끈끈한 정은 옛 그대로 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모든 아름다운 면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또는 시설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일주일간 머무는 동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에 휠체어가 넘어갈 수 있는 경사로(ramp)가 없어서 휠체어 사용자가 산보를 하거나 시내 구경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저는 집안에서는 수동 휠체어를 사용하고 외출 시에는 전동 휠체어를 사용합니다. 손을 전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 능력이 있는 발로 조정을 해서 남의 도움 없이 전동 휠체어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습니다. 이 전동 휠체어와 나의 몸무게를 합하면 350 파운드가 넘기에 한국에 가지고 갈 수 없어서 수동 휠체어를 가지고 갔었습니다. 전동 휠체어를 갖고 갔다면 전혀 거리에도 나갈 수 없었을 겁니다. 만일 어떤 비장애인 보고 다리를 사용하지 말고 걸으라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전동 휠체어는 나의, 아니 우리 장애인들의 다리입니다.

나는 미국에서는 휠체어를 올리는 리프트 시설이 있는 자동차를 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원하면 공공시설인 리프트 장치가 있는 버스, 정부운영 장애인용 차 서비스, 택시회사마다 특수차가 있어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부 지역으로 가면 전철이나 기차들도 다 이런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해 미국 내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미국의 동부지역(뉴욕, 버지니아 주, 메릴랜드 주, 매사추세츠 주, 워싱턴 디씨), 남부지역(루지애나 주), 북부지역(미네소타 주) 등 어디를 가나 전동 휠체어를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특급 호텔이 아닌 아무 호텔이나 묵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저렴한 호텔이라도 샤워장이 넓고 모든 면이 편리한 장애인용 객실이 꼭 있습니다. 서울을 가기 전 인터넷을 통해 장애인 객실이 있다는 특급 호텔을 찾아서 예약했습니다. 그 호텔들은 정말 아름답고 좋았지만 장애인용 방은 내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샤워도 할 수 없는 시설이었습니다. 모든 직원들은 특별히 친절했고 저에게 미안해 하시며 어떤 면으로는 미국보다도 더 잘 해주셨습니다. 장애인 시설이 없다는 것은 그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부 차원에서 어떤 규정을 해줘야 했습니다.

호텔에서 가까운 명동 거리에 나가 보았습니다. 명동 사거리는 지하도를 이용해야 하는데 장애인용 리프트 시설이 있기는 했지만 열쇠를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관계자 한 분을 찾았는데 그 분은 한번도 이 기계를 다루어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10분 이상 노력하다 다른 분을 데려 왔습니다. 두 번째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디어 세 번째 분이 와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 리프트는 오직 장애인 한 사람만 탈 수 있었고 그 탄 사람이 조그마한 단추를 눌러야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불쌍하게도 세 번째로 오신 분은 손 못 쓰는 나를 위하여 리프트 뒤에서 뛰면서 조그마한 단추를 눌러 주었습니다. 약 30분 걸려 겨우 길을 건널 수 있었지요. 돌아 갈 때 전화로 연락하면 다시 오겠다고 연락할 전화번호를 주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9시경에 전화를 하니 그 번호는 없는 번호였습니다. 할 수 없이 어머니와 같이 가셨던 손님께서 마치 옛날 교통순경 같이 네 거리에 나가서 손을 들어 모든 차를 세우고 간신히 우리는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한 분이 왜 한국은 왔으며 왜 호텔에 묵으며 돌아다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럼 나는 인간의 기본권리도 없이 죽을 때까지 집에만 있으라는 겁니까? 또 어떤 사람은 내 장애도 감당 못 하면서 어떻게 장애인을 돕겠다는 거냐고 물어 왔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한 인간 대 인간으로, 친구로, 또 선생으로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장애인 운동을 세상에 외친다고 좋지 않게 보시나 봅니다. 이 분들이 이런 차별적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부 차원에서 '인간의 동등권'에 대한 교육과 법이 없었기 때문 입니다.

정부는 부자나 권력자나 비장애인만 위해 일하는 게 아니고 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도 모든 국민이 평등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이 탄생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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