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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숙제 '피의사실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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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풀리지 않는 숙제 '피의사실공표'

"여론재판으로 실제 재판 영향 미치는 것 문제"

'3번의 기소와 3번의 무죄',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이 '피의사실 공표' 피해자로 나서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하는 것은 물론,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언론이 이를 무책임하게 보도해버리는 바람에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이로 인해 부당하게 낙선대상자가 돼 총선에서 낙선했으며, 가족들까지 멸시와 냉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전 의원은 본인이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소위 '잘 나가던' 검사 출신이다.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에 관해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여론 재판, 진실 찾기에 악영향"**

그러나 매번 실정법 준수와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충돌하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1일 '피의사실공표와 인권침해'라는 제목으로 공청회를 열고,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발제를 맡은 김기창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 피의사실 공표 및 언론의 보도 관행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내며 보다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재판이 열리기 전에 검찰이나 경찰 같은 수사.소추자 측의 일방적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면 사람들은 사건의 결말에 대해 미리 견해를 형성하고, 이 상황에서 법관은 부당한 심리적 압박 하에서 심리를 해야만 한다"며 "만일 심리 결과가 사전에 보도된 내용과 다르면 법관은 강고하게 형성된 온 국민의 여론을 뒤집는 특단의 용기를 내야 한다"고 피의사실공표의 폐해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한 "앞으로 배심제, 참심제와 같은 비(非)법률전문가인 일반 국민들이 배심원이나 참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게 된다면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선입견 형성 및 여론 몰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소추기관의 욕구와 언론사의 욕심이 빚어낸 부조리"**

김 교수는 이러한 피의사실 공표 관행의 원인으로 '수사.소추기관의 욕구'와 '언론사의 잘못된 보도관행' 두 가지를 꼽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보도의 정확성 보다는 신속성과 시의성으로 승부해야 하는 언론매체의 구조적 요구와 수사 및 소추기관의 제도적 욕구가 일치한다는 것으로, 수사기관은 수사 단계부터 혐의를 공개해버림으로써 피의자를 무력화 시키고 자신의 권한과 권력을 온 국민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을 통한 '기정사실화'는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수사기관은 언론사와 '피의사실 정보 거래'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적대적인 보도를 차단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또한 "언론사가 감시기능 내지는 탐사저널리즘에 대해 오해와 소위 '출입처'라는 관행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이 경찰이나 검찰에 사실상 출근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범죄 발생사실보다는 피의자가 특정됐을 때 열광하며 발표 내용을 사실 확인 없이 최대한 신속하게 보도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도 피의사실 공표 관행의 폐해로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치적으로 해결돼야 할 사안을 고소.고발이나 특별검사제 등을 통해 일단 형사사건화 시켜 상대방에게 '응징'이나 '낙인화'의 타격을 입히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검.경, "합리적 기준 마련해서 '국민의 알권리' 최대 보장 노력"**

이에 대해 곽규택 대검찰청 연구관은 "검찰에서도 피의사실공표에 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내부 지침을 마련해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며 "중간수사결과 발표나 소환사실 공개는 금지함을 원칙으로 하되, '국민 의혹 해소 또는 잘못된 언론보도의 정정' 등을 위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사항만을 공보절차에 따라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연구관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자가 수사검사나 수사관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 공보담당관의 승인에 따라 검사실을 출입토록 제한하고, 공보절차에 따른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필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며 "다만 공보절차에 따른 수사결과 발표가 미흡할 경우, 언론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내새워 개별 취재원에 대한 직접 취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피의사실을 공표하게 되는 원인으로 '검찰이 하니까 우리도 해도 되겠지'라는 인식,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의 해결'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인정받고 승진 등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의도, '언론이 원하는 정보를 공급해 줌으로써 언론의 환심을 사 향후 비판적 보도를 완화시키려는 조직적 목적' 및 '언론의 성화에 못 이겨' 등을 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표 교수는 특히 "검찰이 독점적 권한을 보유해 견제할 존재가 없다 보니,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고 의심되는 '발표'가 계속되는 데도 불구하고 전혀 '수사'나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불법적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지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며 "사법개혁을 통해 검찰의 '사법지배' 현상을 완화해야 피의사실 공표 문제 역시 제재되고 통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표 교수는 "영국의 '유괴사건 보도 준칙'의 사례와 같이 국내에서도 언론과 수사기관이 공동의 협약 내지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가 있고, 수사기관에서는 언론관계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홍보기능의 전문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취재 관행 많이 개선되고 있어"**

역시 '피의사실 공표' 논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언론에서는 이현종 문화일보 기자가 토론자로 참석해 취재 환경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기자는 "검찰이나 사건기사는 독자들이 관심과 흥미를 갖는 주요한 뉴스 아이템이고, 뉴스 가치를 위해 타사보다 많은 정보를 빠르게 보도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무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분명 있고,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그러나 개인과의 친분 관계를 이용해 특종을 하던 과거 관행과 달리, 현재는 수사검사와의 접촉이 완전 차단됐는데, 정보가 부족해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한 "피의사실 공표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에는 검찰보다 법정 취재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 추세"라며 "다만 '대선자금 수사'와 같은 정치와 경제 권력을 동시에 견제하는 엄청난 수사에서 언론이 감시기능과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수사기 지속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여론 재판 끝난 상태에서 무죄 선고에는 대단한 용기 필요"**

김태환 서울고법 판사는 발제자의 지적대로 피의사실 공표와 여론에 따른 재판의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놨다. 김 판사는 "판사도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을 미리 보고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피의사실공표와 언론의 보도는 법관에게 선입견을 형성시킬 수 있고, 법관으로 하여금 사회 여론을 무시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기 위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상황을 만든다"고 말했다.

신현호 변호사는 "국민들이 실정법 위반인 피의사실공표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 것은 국민들 스스로가 '알권리'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며 "다만,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손해배상 액수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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