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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타운 왕언니', 세상 향해 악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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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타운 왕언니', 세상 향해 악 쓰다

<서평>기지촌 현장 출신 운동가 김연자 자전 에세이

“하나님, 이건 눈물이 아니라 핍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지촌 현장 출신 운동가인 김연자씨는 글 쓰는 일을 자신의 인생에 담긴 싫은 일, 후회스러운 일 등 똥과 다름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퍼내는, ‘똥 푸는 일’에 비유했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지독한 가난 때문에, 또 이런저런 이유로 소위 ‘양공주’가 된 여성들의 삶이 촘촘히 기록된 그의 자전 에세이 <아메리카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는 한 방울, 한 방울, 그들의 한맺힌 핏방울로 내게 다가왔다.

***첫 기지촌 현장 출신 운동가의 자서전**

올해 63세인 김연자씨는 스스로를 “아직도 누가 믿거나 말거나 운동가”라고 소개한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을 믿지만, 전도사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니고, 운동가”이며, 운동가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의지가 굳다거나, 열성적이라서 이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묻혀 있는 이 곳, 내가 아는 유일한 세상에서 평화를 꿈꾸며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연자씨는 우리 사회에서 최초로 기지촌에서 전도사가 돼 기지촌 여성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고, 또 한국 사회에서 기지촌 여성의 경험을 증언한 첫 번째 여성이다. 그가 자신의 삶을 직접 썼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거문도에서 어린 시절, 친척 오빠에게 열한살때 성폭행 당한 일, 여수에서의 여고 시절,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입소한 것이 계기가 돼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과정, 동두천ㆍ송탄ㆍ군산 아메리카 타운에서 25년간 삶, 기지촌 여성들의 자치회인 ‘꿀벌자치회’ ‘자매회’ 등을 이끌면서 업주ㆍ정부ㆍ미군에 맞서 싸우던 일, 신앙을 갖고 전도사가 되기까지 과정, 송탄에서 ‘참사랑선교원’을 열어 기지촌 여성과 혼혈아들을 돌보던 일, 아흔이 넘은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갖게된 반추의 시간들...

그의 삶의 기록은 단순히 개인의 얘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잊혀졌을 ‘역사’다. 고(故) 윤금이씨 사망사건 등 미군 범죄로 인한 ‘죽음’이 아니면 보이지 않아야 하고, 잊혀져야만 했던 기지촌 여성들의 역사다.

정부가 새마을 사업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지원한 미군들을 위한 위락시설인 ‘군산 아메리카타운’, 1970-71년 주한미군의 주둔을 보장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실시된 ‘기지촌 정화운동’, 기지촌 내 여성들의 성병 검진을 위해 실시된 불심검문, “여러분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며 기지촌 여성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실시한 교육, 소위 ‘담요부대’로 불렸던 팀스피리트 훈련지를 따라 나선 원정 매매춘까지 김연자씨의 증언은 한국과 미국의 굳건한 동맹을 위해 기지촌 여성들의 존재가 어떻게 이용됐는지 보여준다.

***“윤금이가 죽지 않았다면 누가 관심이나 가졌을까”**

김연자씨의 책은 학자 등 제3자가 아니라, 바로 ‘기지촌 여성’의 시선을 통해, 그들의 언어로 기록됐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그는 책 곳곳에서 성매매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고 윤금이 추모제’에 가보니 윤금이 사건에 대한 것보다 양키 반대라는 생소한 구호가 많았다. 대부분 “미군은 나쁜 놈이고, 기지촌 여성들은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윤금이 라는 여자가 그렇게 처참하게 미군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여전히 술과 약에 찌들어 기지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자였다면 그들 중 누구 하나라도 관심을 가졌을지 의심스러웠다.

윤금이 사건은 처음으로 한.미 행정협정에 의해 미군 범죄에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라고 했지만, 그 첫 판결은 1977년 군산에서 이복순과 이영순이 죽은 후, 아메리카타운 여자들이 이끌어낸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를 만큼 미군 범죄로 여성들이 겪어온 고통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연자씨는 이 자전 에세이를 12년간 준비했다고 한다. “죽기 5분전까지 악을 쓰겠다”며 거칠 것 없는 그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기지촌의 현실을 증언할 정도로 용감무쌍한 그이지만, “내 고통과 치부를 말하고, 누가 그것을 다시 전하는 걸 들을 때면 수치심과 두근거림을 눌러야 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증언자’이며 동시에 ‘생존자’인 그는 또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할까. 날마다 술 먹고 악을 쓰며 사람을, 세상을 그리워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오니 나는 서툴렀고 얘기할 수 있는 통로도 많지 않았다”고 힘겨웠던 과정을 회고하기도 했다.

***“연민과 아픔 만으로는 매매춘 문제 풀 수 없어”**

그는 “지난 25년이 기지촌 생활을 돌아보며 동료들에게 돌을 맞을지언정, 매춘은 정신질환에서 오는 병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소 충격적인 이 규정에 대해 그는 “한 여자가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해 생긴 마음의 병, 모질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앓게 된 병”이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의미라고 부연 설명했다.

성매매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공모자’인 성매매 여성들이기에 탈성매매는 “거기에서 벗어나 아픔을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바깥세상과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연자씨는 “연민과 아픔만으로는 기지촌의 삶과 매매춘 문제를 온전히 풀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어느덧 노년이 된 김연자씨는 “평생 헤맸어도 결국 허탕이었는데, 오로지 어머니하고 붙어 산 지난 몇 년이 알짜배기였다. 내가 해온 변명과 핑계들을 볼 수 있었고, 비로소 잔잔한 일상을 살면서 연민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어렵사리 깨달은 치유 방법을 갖고 오늘도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곳에는 자식들을 데리고 외부와 접촉하기를 꺼리는 아픈 혼혈아 엄마와 사랑받지 못하고 갈곳을 못 찾는 불안한 열일곱 열여덟의 딸들이 있고, 늙고 아픈, 가난한 기지촌의 여자들이 있다. 그는 “아는 게 이 것뿐이고, 아직 이 곳에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십년, 이십년이 걸리든 이 속에서 아파하고 얘기하고 웃고 놀면서 소망을 찾고 행복을 만들어갈 것”이다. 유난히 걸걸한 큰 목소리를 가진 김연자씨의 용기있는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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