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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의 고민, "타협이냐 강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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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의 고민, "타협이냐 강공이냐"

'빌라사건ㆍ총재퇴진 요구' 수습책 주목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트레이드 마크는 '법과 원칙'이다. 주변 측근이라도 과감하게 감방에 넣을 것 같은 단호함이 그의 최대 무기다. 법과 원칙이 그나마 이회창 대세론을 연결시켜온 유일한 무기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이 총재의 법과 원칙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의 호화빌라건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는 간단치 않다. 서민들이 느끼는 서운함은 일종의 배신감으로 바뀔지 모른다. 물론 빌라문제는 현 정권을 뒤덮고 있는 부정부패, 비리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축재를 했거나, 뇌물을 받아 빌라를 사서 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마도 이 총재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인식 속에 허물없이 사돈집에 거주해 왔고, 또 이용해 왔는지 모른다. 민주당이 사돈집에 거주한 것이 "증여세를 포탈했다"고 비난하자 한나라당 대변인이 "사돈집에 살았다고 증여세를 부과한 예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반박한 것이 이 총재의 법의식이 아닐까.

***'법과 원칙' 그리고 국민정서 사이의 괴리**

이 총재의 빌라건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해도 국민정서에는 상처를 남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택값 폭등으로 서민들의 내집 마련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고 전세값이 올라 이사할 집이 없는 서민들에게 100평 안팎의 빌라 세 채에 온 가족이 모여사는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

이 총재가 결국 "송구스럽다"고 사과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총재는 법에서는 완벽했을지 모르지만 국민감정과 정서에 배치되는 행동으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이 총재의 법과 원칙을 내세운 자세가 문제가 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5년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한마디로 두 아들의 병역문제다. 이 역시 장남의 체중 미달과 차남의 신장 미달이라는 이유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개병주의 국가에서 "내 자식은 군대 가는데..." 하는 감정에 봉착하면 그때 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총재의 법과 원칙은 이래서 5년전 중대한 좌절을 겪었다. 문제는 이 총재가 이런 아픔을 경험하고도 아직도 "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제2의 빌라사건'이 터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세풍 때도 이 총재는 대국민사과에 매우 인색했다. 후보인 자신이 개입되지 않았고 그 돈을 직접 받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안기부자금 한나라당 유입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일반정서는 어쨌든 한나라당이 세풍자금과 안기부자금을 선거에 썼고, 결국 그 돈은 이 총재를 위한 자금이 아니었느냐는 시각이 존재했다.

***이회창 총재의 정치력 시험대에**

이제 이 총재의 법과 원칙이라는 자세에 변화가 있어야 할 때다. 정치는 법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국민정서, 정치권내 이해관계, 정치인들 사이 감정의 흐름 등을 종합 고려한 '정치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의원의 탈당은 대선출마 결심 때문이라지만 김덕룡 의원, 강삼재 부총재의 탈당 가능성은 빌라건으로 이 총재가 괴로운 시점에 더 부각되고 있다.

홍사덕 의원의 서울시장 후보경선 거부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홍 의원의 경선거부 이유가 이명박 후보의 '돈 경선'에 있다는 주장이어서 이 총재와 이 후보가 동시에 타겟에 올라있다. '깨끗함'이라는 이 총재의 또 다른 면모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총재의 주변 신변문제가 이토록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총재의 법과 원칙만 준수하면 된다는 의식에서도 비롯되지만 주변에 신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 측근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는 지적이다. 빌라건이 터졌을 때 중앙당이 허둥지둥한 것이나, 어느 하나 이 총재에게 직접 확인하고 답변하지 못한 정황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이 총재의 폐쇄성을 말해준 것이다.

이 총재로서는 빌라건이 가급적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는 눈치다. 권노갑의 '돈가스 게이트'가 빌라건으로 덮어졌듯, 빌라건도 다른 게이트 폭로로 잊혀지고 희석되기를 바라고 있는 분위기다. 김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씨가 차정일 특검팀의 수사망에 들어옴으로써 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데 고무적이다.

그러나 일단 이 총재가 약점을 보인 이상 그의 수세국면이 하루아침에 반전되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이부영 부총재가 이총재 사퇴와 비상대책기구 구성을 요구했고, 홍사덕 의원은 이 총재 사퇴를 촉구했다. 김덕룡 의원의 탈당도 멀지 않았고, 민주계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타협이냐 강공이냐, 위기수습책 주목**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탈당하는 대신 당내에 남아 '이회창 낙마'를 기도할 가능성이다. 홍 의원은 탈당가능성을 배제하면서 김덕룡 의원에게 잔류를 설득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의원의 당 복귀까지 추진하면서 '이회창 대안 찾기'에 나설 눈치다.

물론 이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한 후보교체를 추진할 경우 쉽지 않다. 불가능할지 모른다. 여전히 이 총재 추종세력이 다수인데다 마땅한 대체후보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당내에 남아 투쟁하고 이 총재를 공격할 때 이 총재의 본선경쟁력이 타격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사실상 이들의 움직임은 탈당만 안했지 '이회창 낙선운동'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이 총재로서는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우선 서울시장의 경우 본선경쟁력이 높은 인물을 검토해야 하고 지도체제도 집단체제로 권력분산을 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탈당사태를 막기 어려운 게 한나라당 실정이다.

이 총재는 주말에 일본방문을 마치고 귀국한다. 그는 일단 출국할 때 강경자세를 취했다. 홍사덕 의원에 대해 "홍길동이라선지 사라졌더라"고 불편한 심사를 표출했다. 홍 의원은 그 뒤에 대고 '사퇴'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위기에 봉착했다. 문제는 그 위기가 여권에 의한 외생적인 것이 아니라 내생적이라는 데 있다. 이 총재가 방일 후 어떤 카드로 위기를 극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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