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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 서울 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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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 서울 가봐야 안다

유시민의 시사카페 <6>

민주당 예비경선 1라운드가 끝났다. 게임의 양상은 한마디로 혼전이다.

제주와 울산을 합쳐 노무현이 선두로 나섰지만 2위 이인제와의 격차는 득표율 2%도 채 안되는 29표에 불과하다. 두 곳 모두에서 2위 안에 든 후보는 아무도 없다. 두 곳 모두에서 최소한 3위안에 든 사람도 노무현과 이인제 두 사람뿐이다. 앞으로 경선 판세가 어떻게 변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나 경선 1라운드의 결과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몇 가지 뚜렷한 흐름을 감지할 수는 있다.

첫째, '이인제 대세'는 없었다. 울산 3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주에서 한화갑에게 1위를 빼앗긴 것은 치명상에 가까운 타격이다. 선두주자는 집중공격 대상이 되기 마련인데 효과적인 방어를 하지 못한 결과다. 만약 16일 광주에서마저 압승을 거두지 못한다면 '이인제 대세론'은 완전히 사그러들 것이다. 이인제 후보,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갈 길이 실로 험난하다.

둘째, '정동영 태풍'도 없었다. 3위와 득표율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4위이기 때문에 젊은 후보로서 선전했다고 할 수 있지만, 정동영 후보가 제주에서 살다시피 골목골목 누비면서 전력을 기울인 것을 생각하면 실망스런 성적이다. 그가 호언했던 태풍주의보는 그저 주의보로 끝나고 말았다. 추격을 기대하기에는 선두권과의 격차가 처음부터 너무 커졌다.

셋째, 최근 조짐을 보였던 '이인제-노무현 양강구도' 역시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노무현은 울산에서 1위를 했지만 김중권 후보의 추격에 휘말려 득표율 29.4%에 그쳤다. 영남득표력을 강조해 온 그로서는 만족하기 어려운 성적이다. 2라운드 광주와 대전에서 고전할 경우 앞으로 최소한 둘 이상의 후보와 2위 자리를 놓고 피 튀기는 접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노무현 역시 갈 길이 멀다.

넷째, '개혁후보 단일화'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제주 1위 한화갑 후보가 중도하차할 리는 만무하다. 노무현을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급진적 정치인으로 몰아붙인 것으로 보아 정동영 역시 노무현을 지지하고 하차할 의사가 전혀 없는 듯하다. 연대를 하더라도 효과가 얼마나 날지 의문스럽다. 한화갑과의 연대는 두 사람의 현격한 이미지 차이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 또 같은 호남 출신을 민주당 후보로 만들 경우 차차기를 도모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1라운드에서 참담한 패배를 한 김근태는 어떤 선택을 하든 대세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게 되었다.

다섯째, '지역몰표' 현상이 우려했던 수준만큼 강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울산 선거인단은 영남 출신 노무현 김중권에게 합계 57.2%를 안겨주었지만 누구에게도 30% 이상을 몰아주지는 않았다. 다른 지역 출신인 이인제 한화갑도 각각 두 자리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합계 33.4%를 얻었다. 정동영까지 합치면 40%나 된다. 이런 정도면 영남 출신 밀어주기 심리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지역몰표'라는 비난은 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 지역 출신 후보가 최고 30% 수준에 머물 경우 선두다툼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여섯째, 최종 승자는 4월 27일 서울 선거인단 투표가 종료되고 3위 후보의 '2순위표'까지 모두 열어본 후에야 확정될 것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번 경선에서는 어느 후보도 득표율 30%를 넘기기가 어렵다. 매우 뚜렷한 양강구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4위 이하 후보의 '2순위표'를 다 까 봐도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개혁후보 단일화'는 물 건너갔으나 '개혁후보 연대'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향이 비슷한 후보들끼리 지지자들에게 2위 표를 서로 나누어주자고 호소하는 '상층연대'도 가능하고, 지지자들이 알아서 하는 '하층연대'도 있을 수 있다.

서울 경선이 끝날 때까지 '2순위 표' 자료는 봉인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누가 유리할지 실증적 근거를 대기는 어렵다. 그러나 후보들의 노선 차이나 지지자들의 정서적 근친성, 조직적 대립관계로 미루어볼 때 이인제 후보가 2위와 최소 10% 포인트 차이를 내지 못하면 최종 단계 2순위 개표에서 역전당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 경선의 '이변'은 김중권 후보의 약진이었다.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그가 비영남지역을 도는 초반전을 그런 대로 잘 버텨낸다면 대구 경북을 도는 중반전의 돌출변수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영남 지역의 낮은 국민 지지도를 고려하면 선두를 위협하는 상승세를 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경선의 선두다툼을 안개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제주 경선이다. 제주 선거인단은 모든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이인제 대세론'과 '양강구도론'을 단 한 방에 날려버렸다.

'한화갑 이변'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진단이 있다. 뭍에서 온 정치세력에 대한 제주 특유의 경계심 때문에 여론조사가 맞을 수 없었다거나, 민주당 제주도지부장을 지낸 한화갑 후보의 조직력이 겉보기보다 강했다거나, 김근태 정치자금 고백의 후폭풍으로 인해 권노갑계 조직이 크게 위축되었다거나, 선거인단 규모가 작은 지역사회라 바람으로 조직을 이길 수 없었다는 분석은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쨌든 제주 선거인단은 '위험한 선택'을 했다. 제주는 지역적 격리 때문에 중앙의 지역주의 정치구도에 편입되어 있지 않고, 또 전국 순회경선의 출발점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뉴햄프셔'라는 별칭을 새로 얻었다. 제주 경선이 전국의 평균적 표심을 반영하고, 또 그 결과가 전국적 여론의 향배에 능동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제주 경선이 이런 역할을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민주당 경선의 전체 결과가 제주 경선과 유사하게 나타난다면, 앞으로는 어떤 정치세력도 제주도를 변방 취급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여론조사기관도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표본조사하면서 제주를 제외하는 만용을 부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케이트 날' 하나 차이로 1, 2위를 기록한 한화갑 이인제 후보가 육지에서 고전한 끝에 '쇼트트랙 한 바퀴' 차이로 낙선한다면, 제주는 앞으로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좋을 변방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제주 선거인단의 표심이 제주도민의 민심과 일치한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민주당 제주 경선 결과에 따라 제주도민의 정치적 위상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제주도민들로서야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원래 남들이 예상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는 언제나 위험이 따르는 법 아니겠는가. 첫 경선을 무난히 치러낸 제주 선거인단에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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