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로 간 서울 토박이 장영란**
벌써 10년째. 서울 토박이 장영란이 남편, 아들, 딸과 함께 서울을 떠난 것은 1996년이었다. 그의 가족은 경상남도 산청에서 2년간 머물다 육십령을 넘어 전라북도 무주에 터전을 마련한 후 아예 뿌리를 내렸다.
10년 전 도시 생활을 견디지 못한 남편의 성화에 귀농을 결심할 때만 해도 그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를 두려워한 도시인이었다. 하지만 귀농을 해서 자연과 가족을 벗 삼아 공동체를 꾸린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직업란에 '농부(農婦)'를 적어 넣는 농사꾼이 다 됐다.
같이 서울을 떠나온 탱이(17), 상상이(10)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탱이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상상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본인들의 뜻에 따라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도시를 떠난 것도 모자라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사연을 그는 지난 2004년 12월부터 <프레시안>에 '산골 아이들' 연재에 풀어놓고 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런 그의 행보는 1970년대 후반 대학을 다녔던 그 세대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남편과 결혼한 뒤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하는 것으로 시대의 부름에 응답했다. 꼭 노동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존재 이전'에 나선 그의 행동은 1980년대 말 공장을 그만둔 뒤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활동, 산청 간디학교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것으로 계속 이어진다. 서울을 떠나 귀농을 한 것도,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 역시 이렇게 스스로의 삶을 바꾸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을 것이다.
"나는 자기 삶을 바꾸지 않고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주류 세력인 3~40대 이후의 사람들이 자기 삶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사회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자기 삶을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얘기는 다 그냥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산골의 삶에 익숙해진 그는 지난 2004년 7월 <농사꾼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펴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산골 아이들' 연재를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분주해졌지만 틈틈이 교육에 관한 고민을 녹아낸 글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자기 글이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다른 교육'을 고민하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
자연을 '소비'하는 게 대세인 시대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택한 그는 어느새 '세상으로 도피'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는 "평화롭고 행복한 미래를 가져오기 위해서 지금 우리들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의 삶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실천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아버지'의 권위를 벗은 김정수**
"정수는 요리를 그냥 쟝(잘) 합니다. 옛날에 자취를 해서 요리를 조금하기는 하지만, 실은 성희의 날카로운 눈빛에 정수도 모르게 이끌려 의무방어전하는 거죠. 너무 거칠게 이야기 했나요. 의무방어전이 아니라 생명 부지를 위해 한답니다."
한국투명성기구(전 반부패국민연대) 상임정책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정수(41)씨는 다소 무거운 직함이나 예리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다. 부인 박성희(37)씨, 딸 초롱이(13)와 함께 꾸민 그의 가족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글을 한두 개만 읽어도 그가 얼마나 웃긴 사람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의 풍부한 유머감각은 남들이 보기엔 '고생길'일 수 있는 운동가로서의 삶을 지금까지 지탱시켜온 동력 중 하나로 보인다. 그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20대를 살았다.
일찍이 제도 교육에 염증을 느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했고, 1987년 '군부독재종식과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학생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6월 항쟁'에 적극 가담했다가 두 번 제적당했다. 그는 1988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한인청년회(한청련)에서 5․18 마지막 수배자로 미국으로 망명했던 윤한봉씨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90년 황석영씨의 소개로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독일에서 만난 박성희씨와 1993년 결혼을 해 이듬해 새해 첫날 딸 초롱이를 낳았다. 부인 박씨도 지난 1991년 전대협 대표로 밀입북한 탓에 독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운동권 출신이다. 그의 가족은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해외 체류 중인 시국사범의 귀국을 허용해 언제 끝날지 모르던 망명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통일운동단체에서 일하다 한국투명성기구로 자리를 옮겨 부패추방운동을 하고 있다. 이런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느 40대 남성들보다 훨씬 부드럽고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는 좀처럼 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가까운 가게보다 좀 멀리 있는 가게에서 더 맛있는 두부를 팔기 때문에 그곳까지 갔다 오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을 채 다 듣기도 전에 아버지는 내가 바깥에서 놀다가 늦게 왔다고 호되게 나무라셨다. 며칠 뒤 가까운 가게에서 사온 두부가 맛이 없음을 아버지는 알게 되었지만 내게 내린 호된 나무람을 거두어들이지는 않으셨다. 당신의 권위에 손상이 간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 작은 사건으로 아버지는 나에게 확실한 권위의 존재가 됐고, 나는 아버지와 가급적 논쟁을 삼가게 됐다."
요리를 못하는 부인을 대신해 요리를 도맡아하고 딸에게 실없는 농담을 하는 게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자신과 초롱이가 부대끼며 '작은 사람과 함께 다양성이 인정되는 세상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를 희망한다.
***장영란·김정수 이야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별나고 유난스러워 보이는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상상력'의 문제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의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이런 '상상'이 가능했다. 그 작은 차이 때문에 이들은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교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범법자가 되는 선택을 감행해야만 했다. 물론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듯, 이들의 아이들 역시 학교를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게 직접적 원인이 됐지만 말이다.
그간 대다수 부모들의 부족한 상상력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돼 왔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는' 허술한 답안지가 아직 그럭저럭 통하고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 IMF 사태를 경험하면서 크게 한번 훼손된 모범 답안 아닌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영화 제목이 알려주는 진실을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 또 우리 학교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관계를 맺고 또 그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운다."
학교를 거부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교육 방법이 아니라고 이들은 강조한다. '어떤 교육 방법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교육 환경과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학교가 수십 년간 한결같이 변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교육이 추구하는 목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원한다 하더라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듯 두 사람이 먹고 살 만한 중산층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교육비 감당할 돈이 없어서 부모가 직접 가르친다"는 두 사람의 너스레가 진실에 가깝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하기 때문에 오는 경제적 부담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과연 아이와 함께 배울 수 있는 각오가 돼 있느냐", 바로 이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과정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에게도 끊임없는 자아 성찰을 요구한다. 자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주입시키겠다는 욕심 역시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아이를 집에서 교육시키겠다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이런 저항들이 모아져 수십 년째 똑같은 우리 학교가 조금씩 변화하길 이들은 희망한다. 현재 공교육 개혁에 집중하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육 개혁 세력에게도 이들은 "현재 교육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시야를 제도권 교육 밖으로 넓혀볼 것을 제안한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상상'에 또 다른 '상상'으로 화답할 때다.
장영란씨와 김정수씨의 '대화'는 지난 4월14일 안국동 느티나무 까페에서 2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다음은 전문.
***"급변하는 한국 사회, 학교는 수십 년째 똑같다"**
프레시안 : 그 동안 1년 가까이 <대화>를 진행해 오면서 몇 가지 핵심 주제가 있었다. 노동, 빈곤, 교육, 개혁을 일궈낼 시민사회의 잠재력 등 몇 가지 화두를 통해 여러 분들이 다양한 견해를 내놨다.
특히 교육문제와 관련해서는 '새로운 교육의 상'이 기존의 교육체제 안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 체제 안팎을 넘나들며 고민하고 실천하는 분들에게서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예고됐다. 오늘 자리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마련된 것이다.
두 분은 직접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교육문제에 대한 남다른 고민을 전개해 왔다. 특히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이 학교를 중심으로 짜인 현실에서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키우는 모험을 하고 있다. 우선 어떤 계기로 홈스쿨링을 하게 됐는지부터 얘기를 시작하자.
김정수 : 솔직히 내 경우는 집에서 홈스쿨링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집에 있다'고 얘기해야 좀더 정확하다. (웃음) 수업 시간표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아이가 집에서 노는 게 전부니까. 일단 학교를 안 보내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초롱이(11)는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한 달 반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이른바 홈스쿨링을 하게 됐다. 중간에 대안학교를 1년 정도 보내다가 다시 홈스쿨링을 하게 됐다. 우선 초롱이가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얘기부터 해보자.
입학식에서 아주 충격적인 광경을 봤다. 아이들이 막 떠드니까 담임 선생님이 애들한테 "내가 보지 않는다고 이렇게 떠들면 돼. 교실에 가면 '몰래 카메라'가 다 설치돼 있으니까 함부로 까불지 마라"고 호통을 쳤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애들한테 저렇게 얘기해도 되나', 싶었다. 불쾌하기도 했고.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애가 실수로 물을 엎었는데, 선생님이 대뜸 "네 엄마한테 걸레 가지고 와서 닦으라고 해라', 이런 식의 상상할 수 없는 폭언을 하면서 애를 혼내더라. 이런 것들이 다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초롱이는 유치원을 독일에서 다니다 왔다. 그 유치원은 선생님을 뽑는 것부터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을 짜는 것까지 모든 교육 과정에 부모들이 직접 참여했다. 느슨한 '공동 육아'라고나 할까. 1968년 독일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부모가 돼 그 유치원을 만들었는데, 공교롭게도 핵심 선생님이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간호사로 와서 독일에 정착한 뒤 유치원 교사를 하던 분이었다.
그 유치원은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 놓으면 오후나 저녁때까지 공부는 거의 가르치지 않고 놀게 내버려 뒀다. 하루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해서 들여다보니 숫자 '3'에 대해서 배웠다더라. 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딱 3일 동안 숫자 3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온갖 방식을 다 동원해서. 그렇게 생활하던 아이를 우리나라 학교에 보내고 보니, 이 학교생활이 독일과는 너무 달랐다.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초롱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 내가 몇 십 년 전에 학교를 다니면서 다 경험했던 것들이라는 거였다. 우리 사회가 굉장히 빨리 변하는 사회였는데, 학교는 여전히 수십 년 전 그대로였던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변하긴 변한건가, 하는 회의도 들었고.
그런 일들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도 여러 번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식이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학교를 안 간다는 상상을 못하는 것 아니냐"**
프레시안 : 장영란 선생이 서울에 있을 때는 어땠나?
장영란 : 나 역시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비슷한 선생님을 만났다. 아, 이 얘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애를 학교에 보내기 전에 집에서 한번도 매를 든 적이 없다. 친정이 아이를 때리지 않는 분위기라서 나 역시 매를 한 번도 안 맞아보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조카들 중에도 매 맞고 큰 애는 없었고, 탱이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애들을 굉장히 많이 때렸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학교를 안 가려고 하더라. 학교를 보내면 돌아왔다. 한번은 급식 당번이어서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내가 보는 앞에서 탱이를 때리더라. 나중에 집에 와서 아이한테 이유를 물어보니까 의자 뒤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서 맞았다고 했다.
나는 그때서야 선생님이 애를 때린 게 나한테 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 신호에 반응할 수도 없고, 그냥 뒀다. 지금 탱이가 "기왕에 학교를 보낼 거면 선생님한테 좀 갖다 바쳐서 애 마음 좀 편하게 하지, 그렇게 애를 고생시켰느냐," 이렇게 얘길 한다. (웃음)
그때는 그렇게 버티는 게 옳은 일,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학원 안 보내고 선생님한테 갖다 주는 것 없이 키우겠다고. 그때는 애가 학교를 안 간다는 걸 거의 상상도 하지 못 했으니까.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자랄 때 대학을 안 가면 가는 곳은 공장이었다. 공장은 곧 가난이었고, 낙오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위협 속에서 공부를 한 나는 부모가 굳이 대학을 보내려고 하지 않아도 악착같이 공부해서 대학을 꼭 가야 내 인생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서울에서 했던 일이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 일인데, 그건 어쨌든 공교육을 긍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참교육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견뎠다. 그렇게 1년을 결석 한번 안하고 보냈다. 특히 탱이가 살던 동네는 잠실이었는데, 1995년도에 입학했으니까 이미 그 때부터 대단한 동네였다.
김정수 : 사람들이 학교를 보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많이 얘기한다.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을 어른들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독일에서 유치원을 보내봤으니까 학교를 안 보내는 길이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있었고, 나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해 굳이 학교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웃음)
***"교육방법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의 차이"**
프레시안 : 얘기들 듣다 보니 김정수 선생의 경우에는 독일의 교육 환경을 접한 게 큰 계기가 됐던 것 같다.
김정수 : 독일은 20세기 초부터 루돌프 슈타이너의 발도로프 교육과 같은 대안교육이 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여러 가지 교육 방법이 인정받는 분위기다. 대안 교육에 대한 관심이 채 10여 년 정도밖에 안 된 우리나라와는 교육 환경 자체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하지만 어떤 교육 방법을 선택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변수는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발도로프 학교 출신들도 오히려 너무 잘난 척 한다고 '왕따'가 되는 경우도 있고, 훌륭하게 잘 적응하는 친구도 있다. (웃음)
프레시안 : 그럼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와 독일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김정수 :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교육 환경과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지 않느냐, 이렇게 충고를 하곤 하는데…. 도대체 애 교육을 운에 맡겨야 하는 게 말이 되느냐, 그렇다면 운이 나빠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
얼마 전까지 광명에 살았는데 광명은 아직 평준화가 안 된 지역이다. 소위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든다. 토요일 되면 아이들 데리고 가려는 차들이 학교 운동장에 꽉 들어찬다. 월요일에 다시 짐 싸서 아이들을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다시 짐 싸서 오는 애들을 보면 정말 착하고 모범생들처럼 보인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해야 하는 애들이니까.
그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IMF 사태 같은 게 다시 한번 일어나면 저 모범생들 중에서 살아남을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온실에서 큰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에 답답하다. 당장 IMF 사태 때를 생각해 봐라.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한 이들들 중에서 직장에서 쫓겨나 무기력한 삶을 사는 친구들이 꽤 많다. 오히려 고된 삶에 대한 면역력을 기른 친구들은 시련이 와도 곧잘 이겨내더라. 행복의 가치가 공부로 결정되는 않는다는 걸 어른들 스스로도 실감하고 있는데도, 너무 그 쪽으로만 몰아가고 있으니…. 수십 년간 사회가 많이 변했다지만 교육 환경과 교육 목표는 여전히 그대로다. 제도 교육의 근본 문제는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와 함께 배울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장영란 : 주로 초롱이 어머니가 초롱이하고 시간을 보내나? 도시에서 아이를 홈스쿨링하려면 어머니가 집에 있을 수밖에 없겠다.
김정수 : 그렇다. 아내 입장에서는 아이랑 늘 같이 있는 게 즐거움이기도 하고, 스트레스이기도 한 것 같다.
프레시안 : 초롱이 어머니도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가 있을 법도 한데.
김정수 : 그렇다. 내가 요새는 비교적 바빠졌지만 그동안 계속 시민단체 활동을 해 와서 어느 정도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 평일에도 가능하면 일 끝내자마자 집에 오는 식으로. 그래서 보통 저녁 시간과 주말은 내가 초롱이와 시간을 보낸다.
막상 초롱이는 아빠, 엄마의 역할 분담을 특별히 구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냥 애 입장에서는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좀더 몸을 움직이는 것을 많이 하는구나, 아빠에 비해서 엄마가 훨씬 차분하고 진지하구나, 이 정도의 차이만 느끼는 정도이다.
프레시안 : 사실 많은 부모들이 공교육의 문제점을 고민하면서도 막상 홈스쿨링 교육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김정수 선생도 얘기했지만,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를 전적으로 보살펴야 하는 문제도 아주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김정수 : 그렇다. 그것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웃음) 우선 아이와 함께 배울 수 있는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부모가 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 처음에는 아빠가 되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랑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생활 공동체에 아이가 끼어들면서 서서히 내 역할을 학습해 나갔다고나 할까.
***"학교에서 습득하는 사회성은 특수한 사회성"**
프레시안 : 아까 초롱이를 대안학교에 1년 정도 보내다가 다시 홈스쿨링을 하게 됐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같이 해보자.
김정수 : 아무래도 아이가 집에만 있으니까 사회성을 기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보내기로 했다.
장영란 : 사실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주위 사람들이 자꾸 걱정을 하게 만드는 거다.
김정수 : 자꾸 사람들이 애들 사회성에 대한 질문을 한다. 부모 역시 애들에게는 부모지만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사회성, 사회성 하니까 대안학교라도 보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계동에 살다가 광명으로 이사를 갔다.
프레시안 : 그런데 결국 그만뒀다.
김정수 : 애가 한국에 와서 천식이 생기면서 건강이 안 좋았다. 도시 생활의 가장 큰 문제점이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공기, 물 등이 최악의 상태라는 것인데, 특히 한국의 도시는 대부분 서울형 대도시이기 때문에 이게 더욱더 심하다. 주로 집에만 있는 아이가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건강도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 대안학교 전반의 문제점은 아니겠지만 일부 대안학교의 경우에는 다양한 관점의 습득이란 점에서 한계가 있다. 개인적으로 민족주의적 교육을 좋아하지 않는다. 똑같은 조건에서 풍물도 배울 수 있고, 서양 악기도 배울 수 있어야 하는데 애들에게는 꼭 풍물을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수업을 하다가 부시가 죽일 놈이라느니, 미국 사람 전반을 싸잡아 비판하는 식의 감정적인 접근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게 개인에 대한 증오가 되는 건 피해야 하지 않나? 애들을 좀 넓게 키우고 싶은데 일부 대안학교에서 그런 민족주의적 성향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면이 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 아이도 학교를 안 다니고 싶어 하고, 그래서 결국 그만두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안학교에 아이를 1년 보내면서 생각해보니 사회성에 대해서 내가 괜히 걱정했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사회성이라는 게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같이 공유하고, 관계를 잘 만들어나가는 거 아닌가? 본인 스스로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데 학교를 보내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사회성과 관련해 한 가지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게 있다. 오에 겐자브로의 <나의 나무 아래서>(오에 유카리 그림, 송현아 옮김, 까치 펴냄)에는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에세이가 있다. 오에 역시 본인의 경험이나, 장애인 아들의 경험 때문에 아이들을 꼭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국 오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에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사회성이다.
당장 필요 없어 보이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 지식도 결국 타인이나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고, 학교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결국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오에는 장애인 아들을 학교에 보냈더니 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다른 친구와 교감하면서 찾은 인상적인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오에의 아들은 현재 장애인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영란 : 글쎄…. 학교가 꼭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옆에서는 자꾸 불안을 부추기지만 막상 가까이에서 보면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 이렇게 불안하게 살 줄 알았더라면 애들을 두셋 더 낳을 걸 그랬나? (웃음)
내 애들의 경우를 보자면 사람들은 탱이를 보면 참 편안해 한다. 나 역시 탱이를 보면 편안하고 탱이가 나를 많이 치유하고 바로 세워준다. 어쩌면 그건 탱이가 가지고 있는 성격에서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상상이는 아직 한참 성장 중이지만 상상이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법을 습득할 것으로 생각한다.
탱이는 지난 한 2년 가까이 집에만 있더니 작년 가을부터는 계속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부모 입장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관계를 맺고 또 그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운다. 한번은 무예를 배우고 검무를 추고, 그 다음에는 기타를 친다고 하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또 집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배운다. 더 걱정이 안 되는 것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건, 적은 사람이건, 사람이 많은 곳이건 어디든지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사회성 걱정을 하겠나?
김정수 : 동감이다. 학교에서 애들이 습득하는 사회성이야말로 아주 특수한 사회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애들이 시민단체와 와서 자원 활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외국 대학에서는 성적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이웃과 교감할 수 있는 사회성을 요구하니까.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시민단체에서 하는 걸 보면 '좋은 대학 가고 싶어서 자원 활동해요', 이런 게 눈에 확 띈다. 물론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개 그렇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습득하는 사회성이라는 게 이런 '종합적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초롱이도 탱이처럼 캠프 같은데 가서 친구들 잘 사귀고 잘 논다. 그 덕에 강원도, 부산 등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도 사귀고. 물론 사회에서 요구하는 특수한 사회성, 학교에서 습득하는 '안 되면 같이 죽자'는 식의 사회 집단에 적응해서 살아남기 위한 사회성은 아무래도 부족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초롱이가 성인이 됐을 때도 그런 사회성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사회라면…. 상상하기도 싫다. 아니 그렇게 안 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겠지.
장영란 : 동감한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한테 온갖 사회성 문제가 있다. 집단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문제가 있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 탱이가 1학년 때 선생님하고 관계가 어려웠는데 정면 대결을 못했다. 그건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얻었던 사회성 덕분이라고 생각을 한다. 난 유신 때 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와 싸워서 얻을게 없으니까 참고 조용히 지내자, 이렇게 훈련 받은 사회성 덕분에 마땅히 문제제기를 해야 할 상황에서도 순응한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부정적인 사회성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나쁜 점이 있을 것이다. 그건 상대적인 것뿐이다. 그리고 뭐가 더 부정적일지는 또 따져봐야 할 문제고.
***"산골에 있어도 또래 유행은 귀신 같이 안다"**
프레시안: 또래 집단과 공유하는 경험 또는 교감이 부족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이나 초롱이는 초등학생 또래인데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또래 집단의 문화를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이런 욕구를 어떻게 해결하고, 부모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김정수 : 초롱이는 또래 집단의 문화에 대한 욕구는 별로 없는데, 또래 집단 자체에 대한 욕구는 있는 것 같다. 초롱이는 또래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사귀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그 집단이 갖고 있는 문화 자체에 대한 욕구는 별로 없다. 초롱이는 TV를 거의 보지 않고, 인터넷도 시간을 제한해서 하기 때문에 연예인들도 누가 누군지 구별을 못한다. 초롱이 나름대로 자기 문화를 만들고, 또래를 만나면 서로 문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장영란 : 우리는 오히려 산골에 사는데도 애들이 또래 유행은 귀신 같이 안다. (웃음)
프레시안 : 의외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아는가?
장영란 : 어떤 경로를 통해서 아는지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른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건지. (웃음) 기가 막히게 잘 안다. 예를 들어 상상이는 껌을 하나 사 먹어도 최근 또래에서 유행하는 껌을 산다. 또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 이번에 서울 가면 <메이플 스토리> 만화책 사 오세요', 부탁하고.
초등학교 때 보면 보통 또래 친구들하고 소통은 개인 시간에 하지 않나? 상상이 역시 학교는 안 다녀도 또래 친구들과 소통을 하는 개인 시간은 있다. 자기 또래끼리 만나면 정보 교환을 짧은 시간에 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귀신 같이 알고 탐닉하는 거지.
프레시안 : 도시에 있는 초롱이가 더 모르는 게 의외다. 초롱이 어머니가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김정수 : 신경을 많이 쓴다. 도시에 있으면 늘 인터넷과 연결돼 있다. 전에 가끔 부모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관련된 교육을 했었다. 대체로 부모들은 애들이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아빠들은 애랑 놀 시간이 없어서 모르고, 엄마들은 컴퓨터를 몰라서 모른다. 주변에서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화면이 뜬다면서 막 놀란다. 부모가 모르니까 교육을 못 시킨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하는 시간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두 번으로 제한한다.
장영란 : 초롱이한테는 정말 고행이다.
김정수 : 초롱이가 TV에 대한 욕구는 강하지 않은데 인터넷에 대한 욕구는 굉장히 크다. 총 TV 시청 시간이 한 주일에 대략 3~4시간인데 보통 스스로 통제한다. 그런데 인터넷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보통 아이들이 방에 컴퓨터가 놓여 있으면 인터넷을 계속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거실에 컴퓨터를 놓고, 인터넷 역시 글을 써서 올리는 것처럼 주로 자기가 생산하는 활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남이 생산한 것을 퍼오는 데 시간을 쓰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이제 맹수가 많이 사라졌지만 도시에는 맹수가 많다. 피하는 법, 강하게 살아가는 법, 스스로 자율을 즐길 수 있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들다. 또 이렇게 아이와 함께 인터넷을 하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부모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역시 소중한 경험이다.
프레시안 : 장영란 선생님은 김정수 선생과는 또 다르게 아이들을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장영란 : 놔두는 게 아니라 내가 어찌 할 수 없다. (웃음) 우리 집에서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오히려 나다. 예를 들어 내가 뒷산에 갔다 안 나타나면 온 식구가 찾아 나선다. 다른 사람이 안 나타나면 아무도 안 찾아 나서고. 우리 집에서 사고치는 사람은 나다. 차 몰고 나갔다 사고가 나면 나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우리 집 애물단지다. (웃음)
우리 아이들은 면벽수도하는 절 같은 환경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오히려 스스로와 관계를 맺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탱이는 어느 정도 자기를 이겼다고 생각한다. 탱이는 이미 어른이다. 모든 것을 자기가 알아서 결정한다. 상상이는 스스로도 누나만큼 안 된다고 생각하고, 좀더 성장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자기와의 대면, 이게 자연이 주는 가장 큰 혜택 같다. 그러다 보면 잘하겠지. 애들 걱정은 안 한다.
***"자기 성찰은 아이 뿐 아니라 부모에게 더 큰 과제"**
프레시안 : 그런 맥락에서 같은 홈스쿨링이라고 해도 시골과 도시의 환경은 아주 다르다. 도시는 너무 힘든 환경이지 않나. 초롱이도 이제 나이를 계속 먹으면서 도시에서 온갖 유혹이 많아질 텐데, 부모가 계속 통제할 수 있을까?
김정수 : 도시에서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자연과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와 함께 있다보면 장영란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자기와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기 관리도 자연스럽게 되는 것일 텐데, 자기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초롱이에게도 큰 과제이지만 부모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도시에서 힘들다고 해서 당장 시골로 돌아갈 수 없다. 아내는 서울 토박이고, 나 역시 중소도시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도 여전히 도시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도시에 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조건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 역시 지금 하는 것처럼 초롱이에게 간섭하는 것을 앞으로 계속할 수 없고, 계속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생 나이가 됐는데, 그때까지 여러 가지 것을 간섭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내가 제일 피하려고 하는 게 아이한테 나를 주입시키는 것인데….
얼마 전에 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갔는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많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부모들이 아이에게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이게 벼야', '이건 보리야', 하면서 자기한테 관심 있는 것을 아이에게 보이려고 하더라. 아이들은 벼, 보리는 이미 학교 자연 학습장 또는 교과서에서 다 본 것이라서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있는데, 부모들은 자기들의 향수를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거다. 가만히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혹시 저러지 않나, 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주입하는 것, 이것을 극복하는 게 내게 떨어진 가장 큰 숙제다.
프레시안 : 최근 미국에서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이 급증해 한 2백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학내 총기 사고와 같은 위험한 학교에 대한 공포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종교 문제라고 한다. 백인 중산층 기독교 신자들이 자녀를 기독교식으로 교육시키겠다는 의도다. 자녀들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장영란 : 아무래도 아이가 가정에서 생활하다 보면 부모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학교를 다니면 아이는 대개 중학교를 고비로 부모는 더 이상 영향력이 없어진다. 자기 세계로 떠나는 것이지. 부모와 공감대가 점점 없어지면서 각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탱이의 경우 사춘기를 지난 나이인데도 나와 탱이 사이에 통하는 게 아주 많다. 넷이 살다보면 다 알 수밖에 없다. 이건 인정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더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런 게 또 부모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더라. 나는 나를 믿고 의지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실천하다 보니 '제2의 성장기'가 왔다.
한 가지 더, 우리 집은 애들이 묻지 않는 한 가르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부모가 애들한테 뭘 얘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아이가 바로 서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서야 한다, 아이들이 바로 부모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이런 얘기하다 보면 갑자기 두렵고 소름이 끼치는데, 그럴 때 있지 않나? 고르고 골라 아버지와 다른 남자와 결혼했는데 나중에 아버지 같은 남자더라는 얘기. 흔히 부모를 막 부정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내 안에 있는 부모를 직면하게 되는 거지. 그렇게 피하려 하다 나중에 깨닫는 것보다 정면으로 승부를 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어느 순간이든 부모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에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어야지.
김정수 : 아까도 말했지만 나의 '고집'들을 고집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는 내 생활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우리 부모가 자식에게 투여했던 만큼 내 아이에게 에너지를 투여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미치는 영향이 크겠지만, 아이가 사회로 나가면 또 알아서 세상과 부딪치면서 살아야 한다. 다만 그 전까지는 내가 좋든 싫든 아이에게 관여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묻지 않는 한 가르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방금 장영란 선생도 지적했지만, 보통 사춘기가 지나면 아이는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 그 때 서로 사이도 안 좋아지고. (웃음) 그렇게 되는 데는 학교 교육의 역할도 한몫하는 것 같다.
김정수 : 나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의 교육적 권위를 무시하게 되는 것은 아이의 성장 탓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그런 경향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교육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게 학교의 특징이다. '부모가 하는 말보다 학교에서 하는 말을 들어라.'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혈육으로 얽힌 친분 이외의 존재로 남지 않게 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그런 불행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장영란 :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국가가 아버지,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됐고 바로 '베이비시터'의 역할을 학교가 하게 됐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 아이의 생활이 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더 이상 아이는 부모의 자식이 아니게 된다. 부모와 공유할 게 없는 더 이상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는 끊임없이 주류 가치가 재생산되는 핵심 공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많은 노동자의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노동하는 부모를 초라하게 여기며 부정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김정수 : 기본적으로 우리 교육은 '종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산에 가면 사람들이 큰 나무를 보면서 굉장히 좋아한다. 사람들이 감탄하는 몇 백 년 된 나무가 그렇게 자려면서 그 주변 생태계가 다 그 나무 중심으로 재편된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나무 몇 그루가 사람들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 나무 때문에 생태계의 다양성은 사라지게 된다. 당장 그 나무가 사라지면 그 공간에 전혀 다른 종 다양성을 가진 생태계가 펼쳐지는데 말이다.
학교 교육 외에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국가적 낭비인 '사교육'도 바로 학교 교육에 기생하는 것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사설 학원을 공교육의 반대편에 놓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그것은 공교육의 실패가 낳은 또 다른 부산물일 뿐이다. 학교-학원이 거대한 공교육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것처럼 위기감을 느낀다. 과연 그럴까? 그럼 우리 교육의 대안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 : 실제로 그런 경향은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장영란 선생의 '산골 아이들' 연재를 보면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 안 간 탱이는 다들 호기심 있게 봤지만, 초등학교부터 상상이를 보내지 않았다는 얘기에는 아주 격앙돼 반발하는 독자들이 꽤 있었다.
장영란 : 국가가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 이런 주장까지 있더라. 저런 무책임한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되고 국가가 아이를 데려가 키워야 한다는 식과 같은….
내가 자랄 때 통행금지가 있었다. 그때 그 게 없어지면 우리나라가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어떤가? 지금 진짜 없어지면 큰 일이 날 것들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맑은 공기, 맑은 물과 같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없어지는데, 정작 그것이 사라지는 데는 개의치 않으면서 없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김정수 : 교육은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다. 그러나 제도권 교육을 보면 매년 거의 수천 명, 수만 명 애들이 망가지고 있고, 그 이상 망가질 수 있다. 사람의 개성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게 결핍되면 사회 전체가 붕괴될 수 있는데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대학? 선택은 아이들 몫이다"**
프레시안 : 탱이가 올해 열여덟 살이니 이제 금방 대학에 갈 나이다. 탱이가 대학에 가고 싶어 하나? 장영란 선생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고민이 있을 법한데 어떤가?
장영란 : 그건 탱이한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상상이도 어쩌지 못하는데 탱이는 정말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웃음) 최근 들어 탱이도 '내가 대학에 가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또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자기가 대학을 가기 위해 투자하는 것만큼 대학이 자기에게 줄 것이 무엇인지도 따져보는 것 같고. 한번은 '엄마 나 대학 보낼 돈, 나한테 직접 주면 안 돼', 하고 물어본 적도 있다. (웃음)
일단 그런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좋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개입할 문제는 전혀 아니고 대학을 가야 한다면 탱이가 알아서 가야 할 것이다. 물론 대학을 안 가고 지금처럼 지내기를 원한다면 그 역시 탱이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지.
단 나이가 들면 독립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제적 독립은 탱이가 금방 할 것 같다. 애가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됐는지 여기저기서 오라는 곳도 많고, 돈을 줄 테니 원고도 쓰라고 하고. 좀 신비적인 생각이지만 난 이게 탱이가 가진 파장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 파장에 공명하고 있는 셈이지. 그래서 우리 부부는 어떻게든 탱이한테 잘 보이는 게 사는 길이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산다. (웃음)
김정수 : 그거 굉장히 중요한 고민이다. (웃음) 사실 나도 대학을 다녀봤지만 지나고 보면 대학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 주변을 봐도 그렇고. 스스로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집단으로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초롱이가 어려서 대학을 보낼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그것 때문에 고민할 것 같지 않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가는 것이지. 다만 장영란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애가 언제 독립하느냐, 부모와 다른 자기만의 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꾸리느냐, 이게 오히려 나의 관심사이다.
***"공교육 강화로 모든 문제 해결 안 돼"**
프레시안 : 우리 사회에서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전교조처럼 공교육 개혁을 고민하는 이들, 대안학교와 같이 공교육 안팎에서 다른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 마지막으로 '작은 학교'나 홈스쿨링처럼 기존 교육 체계 밖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이다.
아무래도 그 중 제일 목소리가 큰 것은 공교육 강화 쪽이다. 그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노력하는 것은 입시 위주 교육, 학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게 우리 교육이 미래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까 김정수 선생은 교육의 '종 다양성'을 얘기했는데, 사실 공교육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대안 학교, 작은 학교, 홈스쿨링 등의 시도에 대해서 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개인적이고 주변화된 것으로 폄하하는 분들이 꽤 많다. 그런 게 전면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수 : 그런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갑갑하다. 전교조에 같이 고민을 나눴던 이들이 꽤 많은데, 그들 역시 술 한 잔 들어가면 '사치스러운 놀이'를 하고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런 생각에는 제도권 교육을 개혁하고 그것을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개혁하면 다른 부분은 필요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생각 역시 제도권 틀 내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논의다. 계속 시각을 거기에다 두는 한 다른 가능성은 영원히 미래로 유예될 뿐이다. 사실 공교육 개혁을 고민하는 이들 중에도 학부모 운동을 하는 이들과 전교조의 생각은 또 다르다. 학부모 운동을 하는 분들이 다른 방향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반면에, 전교조는 여전히 모든 것을 제도권 교육의 틀 안에서 사고를 한다.
프레시안 : 그것과 관련해 홈스쿨링 같은 대한 교육은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형편이 돼야 가능한 것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많다.
장영란 : 이걸 한번 생각해보자. 산골에 살다보니 정말 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만약에 탱이와 상상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생각하면 지금과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당장 아이들을 교육시킬 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그래서 홈스쿨링은 지금 우리 집의 형편에 딱 맞는 교육 방식이다. (웃음)
김정수 : 그렇다. 과외를 시킬 능력이 없고, 학원을 보낼 능력이 없으니 홈스쿨링을 하는 거다. 아까 아내가 집에서 초롱이를 돌보는 얘기를 했는데, 그것과 연관된 더 현실적 문제는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한 사람만 버는데다 내 수입도 많지 않으니 소비를 최소화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의 잘 사는 친척들이 '왜 차도 안 가지고 다니느냐', 할 때마다 사지가 멀쩡하니까 차를 안 가지고 다닌다고 대답할 수 있는…. (웃음)
물론 나도 초롱이에게 수학 과외를 한다. 별도로 돈을 주는 게 아니라, 홈스쿨링을 하는 초롱이보다 나이 많은 친구가 와서 수학을 가르쳐준다. 이것은 과외이기도 하고 또 다른 사귐의 방식이기도 하다. 일종의 '교육 품앗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문제다"**
프레시안 : 특히 전교조에 대한 비판적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교육 현장에서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교육 개혁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고, 조합주의적 면모를 급격히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절박한 목소리도 있다. 지난 일곱 번째 <대화>('이광호-이현희' 편, 2004년 9월25일)에서 공부방 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현희 선생은 이런 고민을 얘기한 적이 있다. 가난한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지는 학교이기 때문에, 그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도록 돕는 게 가장 큰 목표라는 절박한 현실 말이다.
김정수 :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이현희 선생님처럼 진지하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끔 학교에 반부패 교육을 하러 나가면, 강의에 집중 못 하는 아이들을 놓고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이 원래 문제가 많아요', 이렇게 얘길 하곤 한다. 그렇게 얘기하는 선생님 반에 가보면 정말 문제가 많다. 반면에 굉장히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선생님도 있다. 우리 애들이 어떻게 하면 더 배울 수 있나, 끊임없이 이런 것을 고민하는 분들. 이런 선생님 반에 가보면 애들도 훨씬 더 배우려는 열의가 있다.
바로 애들이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문제였던 것이다. 학교라는 시스템 문제 이전에 교사들부터 바뀌어야 한다. 학교 안에서 낙오되는 아이들을 공부방 선생님들이 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야말로 지금 학교 교육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장영란 : 물론 공교육 개혁이 불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전교조를 비롯한 공교육 개혁을 위해 애쓰는 이들의 수고 역시 정당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길 하는 것이지. 나는 자기 삶을 바꾸지 않고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주류 세력인 3~40대 이후의 사람들이 자기 삶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사회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자기 삶을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얘기는 다 그냥 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공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자기 삶을 바꾸는데 노력을 하고 있나? 예전에 전교조 교사들이 해직을 당하면서 싸우고 그럴 때는 바로 자기 삶을 건 몸부림이었다. 지금 과연 그런가?
김정수 : 나는 전교조 등이 교육 문제를 바라볼 때 함정에 빠진 듯하다. 제도권 교육 틀 안에서 생각하다보면 계속 본질은 건드리지 못 한 채 주변에서만 맴돌 뿐이다. 시야를 제도권 교육 밖으로 넓혀보면 오히려 다양한 방식의 해답이 존재할 것 같은데 그것을 외면하고 있다.
물론 전교조와 또 많은 이들이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젠 좀더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참교육 운동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우리 교육이 왜 아직도 이 모양인지, 과연 이 방향이 맞는 것인지 말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안교육 제도권 편입, 공짜 없다는 사실 꼭 기억해야"**
프레시안 : 대안학교도 마찬가지지만 홈스쿨링과 같은 교육 체제 밖의 시도를 제도권 안으로 들여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미 대안학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진행된 측면도 있고. 공부방의 경우에도 이미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장영란 : 대안학교 입장에서는 공교육 체계 안으로 들어오면 너무 여유로워질 것이다. 사실 지금 대안학교의 사정은 학부모는 고가의 학비를 내고, 그런데도 학교는 너무 가난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 돈을 받는 순간 대안 학교는 학교의 역할에 방점이 찍히지 '대안'은 사라질 것 같아 우려스럽다.
홈스쿨링 역시 마찬가지다.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법제화해서 정부가 관리를 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상 돈을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그런데 돈을 주면 분명히 그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절대 공돈은 없다. (웃음)
김정수 : 미국의 홈스쿨링은 특정한 커리큘럼을 주고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식이다. 우리처럼 집에서 놀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홈스쿨링은 사실상 정부 입맛대로 훈육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폐해가 그대로 전이될 우려도 있다.
하지만 대안학교 법제화의 경우에는 좀더 여유 있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하나 만들려고 처음에 아주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중에는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 법제화를 주장한다.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을 떠나 이 정도만큼 제도권에서 대안학교 등의 시도의 가능성, 긍정성은 인정했다는 점은 아주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정부의 제안을 한번에 넙죽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안학교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목소리를 못 내고 그냥 따라가는 듯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다.
장영란 : 김정수 선생 얘기를 듣고 보니 홈스쿨링 법제화 역시 이중적인 의미가 있을 듯하다. 홈스쿨링이 법제화되는 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학교 밖의 교육을 인정하는 게 아니냐. 그게 우리 사회 또 우리 교육에 가져올 파급력은 아주 클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간섭을 받아야겠지만 말이다.
***"굉장히 큰 전환기 잘 헤쳐 나가야, 다양성이 꽃 피는 사회 만들 때"**
프레시안 : 오늘 경험에 기반을 둔 두 분의 교육에 대한 고민 잘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여러 가지 생각하는 바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두 분 다 1980~90년대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한 거대한 움직임에 동참했던 경험이 있고, 이런 남다른 시도 역시 그런 경험에 기반을 둔 독특한 교육 철학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많이 변했고, 두 분의 위치 역시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 같다.
장영란 : 우리 가족은 지금 발 딛고 선 곳에서 이대로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웃음) 모두가 느끼고 있듯이 지금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변하고 있다. 굉장히 큰 전환기에 와 있고, 이 전환기를 우리들이 슬기롭게 헤쳐 나가면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지 않을까?
김정수 : 우리 사회는 개인의 창의성도 못 살리면서 또 건강한 공동체 의식도 부재한 그런 사회이다. 이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다 공감하는 바일 테고, 아시아 어떤 나라보다도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두드러지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해보면 충분히 잠재력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성이 개성대로 존중이 되는 사회, 다양성이 꽃 피는 사회를 이제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가 개인과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기본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니까.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이 대담과 교육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반론을 포함한 논평을 듣기를 원합니다. '산골 아이들' 연재 게시판이나 담당 기자(tyio@pressian.com)에게 글을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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