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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어디 갔나?"

대선국면 조기과열, 정부 제 역할 방기

대통령은 어디 갔나?
요사이 신문, 방송의 정치면 뉴스에서 대통령을 찾기 힘들다. 지난 연말 이후 여야의 자칭 타칭 대선 주자들이 정치뉴스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대통령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연초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대선주자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층 극심해져 ‘대통령 임기가 벌써 끝났느냐’는 반문이 터져 나올 정도다.

지난해 10.25 재보선이 끝나면서부터 여당인 민주당에 ‘쇄신파동’이 일고,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와 맞물려 당내 후보경선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논의는 7일 당무회의에서 오는 4월 20일 대표와 대통령후보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확정하기까지 두달 넘게 계속되었다.

이처럼 집권여당이 먼저 대선국면에 불을 지피자 야당도 뒤따라 당내 경선방식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고, 당내외의 자칭 타칭 대선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의 중심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동시에 JP, YS, 민국당 김윤환 대표 등의 동정 역시 각종의 정계개편설과 함께 정가의 화제로 등장했다.

결국 정치의 중심이라 할 집권여당이 재보선 패배 직후부터 스스로의 ‘기사회생’ 차원에서 대선논의를 촉발시킨 결과 정치권 전체의 대선열기가 조기 과열되고, 이는 곧 대통령의 레임덕 가속화, 정치뉴스에서 대통령이 실종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선거의 해, 대통령 실종현상 가속화될 것**

이러한 상황은 갈수록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미 경선국면에 진입했고, 한나라당 역시 금주중 전당대회 개최시기와 방식 등을 검토할 ‘전당대회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킬 계획이어서 경선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게다가 민주당이 한편으론 당내 민주주의 활성화란 차원에서, 다른 한편으론 ‘전국적 바람몰이’를 노리고 전국 순회경선제를 도입함에 따라 4월까지의 경선전은 정국 전체 흐름을 장악해 갈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당 개혁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바람몰이에 대한 맞불작전’으로 민주당과 유사한 경선방식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고, 경선시기 역시 민주당 경선 직후를 선택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지금부터 4월까지 양당의 경선전이 전개되고, 곧이어 지방선거가 치러지며, 8월로 예상되는 전국적 재보선을 거쳐 12월 대선까지 금년 1년은 그야말로 선거의 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될 수록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은 점점 축소되어 갈 것이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신년 초부터 정치불개입 선언을 확고히 다지고 나와 ‘정치권에서의 대통령 실종현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법적 임기가 1년1개월 이상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이 실종되는 사태는 중대한 국정혼선을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국력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 방기 무책임**

실제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이후의 행보를 돌이켜 보면 각종 정치적 쟁점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사이 김 대통령은 12월초 유럽순방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활동상을 보여준 바 없다. 정국을 뒤흔든 각종 게이트 파문에 대해서는 한참 시간이 경과한 뒤 ‘성역 없이 진상을 밝히라’는 원론적 지시를 했을 뿐이다.

연초 정부부처의 인사를 앞두고 ‘각종 연고와 청탁을 배제하라’는 탕평책을 지시하며 역시 원칙적 언급에 그쳤다. 지난 해부터 계속 제기되어 온 개각설은 여전히 ‘설’일 뿐 청와대는 7일에도 ‘개각설은 사실무근’이라는 부인 논평을 발표했을 뿐이다.

교원정년 연장안, 건강보험 재정통합, 예산안 처리 등 국정 현안에 대해서도 여야간 공방에 맡겨두었을 뿐 정부 수장으로서 대통령의 적극적 역할이 전혀 없었다. 주5일근무제와 같은 쟁점사안들에 대한 정부의 추진의지도 거의 사라진 형편이다.

여야가 1년반 유예하기로 합의한 건강보험 재정통합 문제는 ‘다음 정권에 보자’는 미뤄두기의 전형일 뿐이라는 비판이 많다. 유예기간 동안 재정부실을 해결할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따지고 드는 사람도 없는 형편이다.

더 나아가 행정부처 내의 이견 조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식 발족하고도 직제안에 대한 부처간 견해 차이 때문에 여전히 손발이 없는 기형적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경제문제 역시 여전히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이미 터진 각종 현안에 별다른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연말부터 심해진 엔저현상, OPEC의 감산조치로 인한 유가 불안 등 무시 못할 대외변수에 새로운 대응책이 없다. 대우차, 하이닉스 구조조정 등 내부의 묵은 쟁점도 아직 처리난망이다.

지금 당장은 반도체 경기 호전과 주가 상승 등 연말부터 시작된 반짝 상승세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제문제가 감추어진 듯 보이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내외 변수에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앞으로 선거와 맞물린 선심성 정책 남발과 이해집단의 욕구 분출이 맞물린다면 연초의 상승세가 반짝경기일 뿐 실물 경제회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거품만 남길 우려도 크다.

***대통령과 정부 제 역할 다 해야**

이처럼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에 걸쳐 산적한 현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타개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여소야대 국회의 공방과 관련 이해집단의 직접 충돌만 국민들 눈에 비칠 뿐이다.

언론 역시 대선국면에 매몰되어 대통령과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한 지적 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권말기이고 집권당 내부 사정으로 인해 대통령이 당 총재직을 내놓았다 해도 대통령은 여전히 대통령이다. 정부의 수장으로서 국정운영의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 정치에서 손을 뗀다고 해서 국정현안에까지 수수방관해도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대통령의 정치적 힘이 줄어들었다고 정부가 모든 복잡한 현안들을 뒷전에 미뤄둬도 좋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선거의 해’라고 해서 대통령과 정부가 실종된 1년을 보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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