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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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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

[현장] 금강산 '6.15 공준위' 취재 후기

지난 3월 3일. 금강산 호텔에서 열리는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 결성식 취재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금강산 호텔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경.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남측 통일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대표들과 기자들은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북측 출입국 관리소를 지나 호텔에 들어가야 진짜 ‘방북’ 했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캄캄한 금강산 호텔 "전력난이다", "선전이다", "절전이다"**

그런데 호텔 안은 어두컴컴하고 프런트에만 비상용 조명등이 켜져 있어 ‘손님’들에게 방 열쇠를 나눠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열쇠를 받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안쪽 복도에는 전등 몇 개가 켜져 있고, 엘리베이터는 가동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듣던대로 북한의 전력난이 심하구나”, “설마 현대에서 운영하는 호텔인데 전기가 모자라게 두겠어요?”, “이거 자기들 전력난을 알리려고 일부러 불을 꺼두는 것 아닙니까?”라는 다양한 추측과 해석들이 이어졌고, 어둠 속 어디에선가는 “촛불이라도 켜 놓고 살지”라는 소리도 들렸다.

한 환경운동가는 “아니에요, 사람은 원래 이렇게 살아야 돼요”라고 말했다. 남측은 에너지 아까운 줄 모르고 너무 환하게 밝혀놓고 산다는 뜻이었다. 어쨌거나 원래 전기가 부족하던가 그래서 전기를 아끼려는 줄 알았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던 도중 1시간 남짓 지나자 환하게 모든 조명등이 일제히 켜졌고, 사람들은 ‘역시나 정전이었던거구나’라는 듯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후 이틀 동안 한 차례 10분간 정전이 됐지만 전기 공급은 안정적이었다.

만약 서울의 한 일급 호텔에 들어갔는데 캄캄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면 사람들은 대번 “정전이구나. 이 호텔엔 비상전력도 안 갖추고 있나”라거나 “시대가 어느 시댄데 정전인가”라고 짜증을 내거나 “어디 사고가 났나?”라고 우려섞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달랐다. 캄캄한 호텔을 두고 남측 사람들은 나름대로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보와 자신의 생각을 얼버무려 다양한 반응과 해석들을 내놓았다. 정전을 두고 일어난 단순한 해프닝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북한에 대한 짧은 정보와 선입견 때문에 일어난 구조적 문제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사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북한에 대한 거의 아는게 없는 남한**

이는 폐쇄적인 북한의 체제 때문이기도 할테지만, 지난 수십년간 반공 교육에 익숙해져 온 우리로서는 북한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정보에만 노출돼 왔으며, 군사 독재정권 하에서는 북한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 하는 것’만으로도 모진 고문과 처벌을 받아야 했던 아픈 흉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무리한 해석을 하나 더 붙이자면, 기자와 마찬가지로 방북이 처음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네 삶이 분주하고 고단한데 북한에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반 국민들에게 무리일 것이다”고 말했다.

고백컨데 기자 본인은 첫 방북인지라 출발 전, 여느 남측 관광지나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는 다른 묘한 심리적 압박을 느꼈었다. 군사분계선의 남측 통문을 넘어 고요한 DMZ를 지나 북측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는 마치 신천지에 발을 내딛는 개척자의 심정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 군사분계선에서 북한 군인과 마주치고, 금강산 주변 온정리에 산다는 호텔 직원들, 북한 기자들을 만나며 어느새 낯섦과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적어도 그들은 우리와 똑 같이 생기고, 똑 같은 말을 쓰며, 퇴근이 늦어지면 투덜대는 역시나 ‘분주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하나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한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파트 윗층에 사는 녀석의 발소리가 너무 커서 신경에 거슬렸었는데, 어느날 놀이터에서 그 아이를 만나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사귀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사귀고 나니, 그 녀석의 발소리는 여전히 크지만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더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그래도 ‘모르는’ 녀석이 시끄러우면 화가 나고 속상한데, ‘아는’ 녀석이 되니 별로 밉지가 않더라”며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0년 6월 13일.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감동적인 ‘만남’을 경험한 바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의 ‘만남’이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오히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미궁속으로 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 당시의 감동을 되살리고자 민간 차원에서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적어도 그들을 잘 알아야 제대로 비판도 할 수 있고,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만남의 기회를 최대한 많이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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