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전문지 <FILM2.0>의 기자는 다음 호에 나갈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기사로 '부산이 고쳐야 할 10가지'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건 결코 부산영화제를 흠집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이 기자는 말한다. "그리고 사실 10가지 다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최고, 최대의 영화제라는 수식어와 함께 영화제 개막 전부터 시작해 영화제 기간 중에도 칭찬 일색의 이야기들만 쏟아지는 와중에 누군가가 꼭 10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쳐야 할 점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기류가 예전과 다르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캐치프레이즈는 "관객 여러분 감사"…실상은 '관객 무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주년을 맞이한 만큼 한마디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상영 편수만 해도 75개 국 307편에 이른다. 이 영화들을 수용하기 위해 영화제 주최측은 진작부터 야외상영장까지 포함해 31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이는 예년에 비해 16개가 늘어난 것이며, 객석 수로 따지면 30만 석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게 상영 편수 때문에 객석 수를 늘린 것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늘 평균 객석점유율이 90%를 상회하는 바람에 관객들이 영화관람에 큰 불편을 느낀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티켓 구매를 좀더 용이하게 하고 무엇보다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객석 수를 대폭 늘려잡았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를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관객들이 부산영화제 주최측이 진심으로 자신들에게 감사해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8일 오후 2시 부산 중구 남포동에 있는 영화제 상영관인 대영시네마에서는 일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로프트>를 상영할 예정이었다. 새벽부터 서둘러 티켓을 구매한 한지원 군(21, 서울 목동)이 상영관 문앞에 도착한 것은 1시58분. 하지만 한 군은 손에 티켓을 쥐고 있었으면서도 영화를 보지 못했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에 영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때 시간이 2시2분. 단 4분 차이로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올해 부산영화제가 '정시 상영'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 주최측은 상영장 곳곳에서 '정시 상영'을 한다는 고지를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군의 사례는 '너무한다'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한 군은 "상영관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융통성이라고는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티켓까지 어렵게 구입한 사람에게 1~2분의 시간은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사무국의 지시라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마치 전쟁터의 로봇 전사 같았다. 이게 과연 관객들을 위하는 것인가." 한 군과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친구들도 이렇게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영화 <로프트>는 한 군과 그의 친구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상영됐다. 이 얘기는 단순하게 큰 영화제를 운영하다 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몇몇 관객들의 있을 수 있는 불만의 사례가 아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상황도 결코 아니다. 이같은 사례는 곧 그때그때의 현장 상황을 합리적으로 처리해낼 수 있는 영화제 사무국의 행정적 시스템에 적신호가 들어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이날의 상황에 대해 한 군과 그의 친구들은 영화제 사무국의 누구로부터도 책임있는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젠 '열정'만으론 안 된다…조직력 갖춰야**
실제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사무행정 시스템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내부에서도 문제가 제기돼 왔다. 영화제는 크게 프로그램팀과 사무국으로 나뉘어진다. 사무국에서는 전체 예산의 운용이나 인력을 관리하고 초청, 의전, 이벤트, 홍보 등의 업무를 맡아 영화제 행사의 방대한 일을 처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는 지난 10년간 사무국 인력과 프로그램 인력이 혼재된 채 운영돼 왔으며, 프로그램 업무가 사무국 업무를 지배하는 기묘한 형태를 취해 왔다.
한편으로 이같은 사실은 이 영화제가 조직보다는 '의지'로 시작된 것임을 보여준다.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기에 앞서 영화제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이며, 어떻게 보면 바로 이 점이야말로 부산국제영화제가 '기적같은' 성공을 거둔 이유를 설명해주는 키 워드일 수 있다.
그러나 올해처럼 영화제가 매머드급으로 커지면 '열정' 못지않게 '조직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부산영화제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세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주축이 되는 집행위 상위그룹 인력의 '개인능력'으로 행사가 운영되기는 영화제가 지나치게 커졌다. 수년째 부산영화제 기간 때마다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는 한 스탭은 "개막식과 같은 큰 행사조차 사전준비의 과정이 불투명하게 진행되는 것을 목격한다. 모두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들 뿐이다. 문제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부산영화제는 늘 어떻게 돼 왔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구조와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조직은 종종 양극화의 문제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은 평소에는 극히 소수의 상근인력으로 구성되고 영화제 시작 2~3개월 전에 임시직들을 대거 기용해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물론 부족한 예산 때문이다. 상근인력을 여유롭게 부릴 만큼 재정상황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철저하게 정부와 시의 문화마인드 부족 탓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제 사무국의 행정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운용되는 한 상근직이든 임시직이든 큰 차별 없이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임시직 스탭들은 한달 90만~120만 원의 보수를 받으며 영화제 기간에 24시간 노동현장에 있어야 한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남포동이나 해운대 행사 현장스탭들 가운데는 영화제 개막식을 전후해 3~4일간 철야로 일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끼니도 제 때에 처리하지 못하면서 거리에서 온종일을 보내는 스탭들에게 해운대 고급호텔 주변에서 연일 벌어지는 각종의 화려한 파티는 그저 단순한 '그림의 떡'만이 아니다. 이건 자칫 정서적 갈등까지 야기시킬 소지가 있다.
***영화제 내부의 기묘한 소외현상…스탭의 처지**
그렇다면 지금 부산영화제 안에서는 기묘한 소외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정말 내년부터는 영화제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곤 한다"고 현장에서 만난 한 스탭은 얘기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제가 가까워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물론 그건 영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지 영화제 때문이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영화제에 대한 사랑'을 가능한 한 일치시키는 것이다.
영화제 관객을 올바르게 '차별화'하는 것도 부산영화제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1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지원에 감사한다는 마음으로 각종의 관객서비스를 개발해 무슨무슨 카페에 무슨무슨 이벤트를 만드는 것까지는 괜찮다 하더라도, 정작 그 전시행정적 버라이어티 쇼에 몰리는 인파는 영화관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10대 청소년들일 경우가 많다는 건 문제다.
영화제 관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영화관람 그 자체일 것이다. 무료로 공연을 보고, 무료로 음료수를 얻어 마시는 것을 부산과 같은 국내의 대표적인 영화제가 전면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다. 10주년이 된 부산영화제가 감사해야 할 대상, 곧 관객은 극장 안에 있다. 극장 밖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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