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 정가의 핵심쟁점은 다시 또 사정(司正)이다. 지난 1년 3대 게이트를 둘러싼 공방으로 정치권이 뜨거웠는데 신년의 정치 역시 사정(司正) 정국으로 문을 열고 있다.
특히 3대 게이트가 여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작년말부터 시작된 윤태식게이트, 그리고 1일 구속이 집행된 김용채 자민련 부총재의 경우 야당 인사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사정국면이 정계개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서 여권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또한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이 스스로의 위기탈출을 위해 정치권에 대한 무차별 사정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대두된다.
그 어떤 경우든 이번 사정국면은 대선을 앞둔 2002년 정치권 구도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향후 어떤 방향으로 비화될지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자민련 김용채 부총재는 지난 99년말 총리 비서실장으로 재직시 인천 S기업 전 대표 최모씨로부터 ‘전 대한보증보험의 어음할인 한도액을 늘려 달라’는 청탁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2억1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뢰)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1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됐다.
그동안 잇따른 게이트 파문에 연루된 사람들이 없어 비교적 안전한 지대에 있던 자민련마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 부총재는 내년 자민련의 양대 선거 준비를 총괄하는 김종필 총재의 핵심 측근이라는 면에서 사건은 간단치 않다. 더욱이 김 부총재는 내년 정계개편과 관련, 여야 정치권 인사들의 접촉 창구로 활동해 왔다.
따라서 김 부총재의 구속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곧바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자민련의 한 의원은 “JP의 복심(腹心)이나 다름없는 김 부총재가 검찰조사를 받게 된다면 JP에게 정치적 타격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한 자민련 관계자는 “검찰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김 총재 주변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고 강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번 신승남 검찰총장 탄핵안 처리 때 우리가 어떻게 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며 여권에 대한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김 부총재 구속의 다단계 노림수**
정치권의 분석가들은 김용채 자민련 부총재의 구속에 다단계의 노림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독자 출마’를 내세우며 정계개편에 나서고 있는 JP를 여권으로 다시 견인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다.
김 부총재가 차지해 온 자민련 내 위상으로 볼 때 이번 그의 구속으로 향후 자민련의 정국구상 실현에 적잖은 차질이 예상되고 여권은 자민련과의 관계모색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의식해 자민련 오장섭 사무총장은 김 부총재 사건이 터지자마자 “김 부총재 개인의 일로 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 당직자도 “김 부총재가 총리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돈을 받았더라도 당뿐 아니라 총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잘랐다.
일단 김 부총재의 수뢰의혹을 개인적 문제로 마무리하려는 반응이다. 김용환 의원 등이 당을 떠난 상황에서 김 부총재 사건이 확대될 경우 ‘JP 대망론’으로 충청권과 보수층의 지지를 되찾으려는 자민련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 부총재 구속은 일차적으로 JP 견제, 견인을 위한 정치적 노림수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자민련 뿐아니라 한나라당으로까지 사정 한파가 몰아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3대 게이트를 빌미로 한 야권 공격의 예봉을 피해 보자는 구상이 깔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이러한 측면을 의식, 자민련 김 부총재를 겨냥한 사정의 칼날이 당 소속 의원들에게까지 미칠지 모른다고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경필 대변인은 “김 부총재에게 죄가 있다면 밝혀야 되겠지만 왜 지금 야당의원의 수뢰 혐의가 흘러나왔는지, 야당 사정의 신호탄은 아닌지 많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각종 게이트에 대한 몸통수사가 지지부진한 이 때 물타기의 일환으로 야당의원 사정이 진행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새해 벽두 터져 나온 자민련 김 부총재 구속 소식은 사전 의도가 있건 없건 간에 정치적 의미가 매우 크다.
3대 게이트로 시달려 온 여권이 일방적 수세국면에서 탈출하면서, 한편 JP를 견제-견인하고, 다른 한편 한나라당까지 견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다목적 카드인 셈이다.
***검찰 위기탈출 위한 '무차별 司正' 시작일 수도**
반면 이번 김 부총재의 구속을 사전 기획된 정치적 계산 없이 ‘걸리면 친다’는 무차별 사정의 시작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많다. 청와대나 여권이 만드는 사정 정국이 아니라 검찰이 스스로 만드는 사정국면이란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수뇌부가 멍들고 신승남 총장의 탄핵파동까지 거치면서 최악의 위기상황에 몰렸다.
지금도 이용호 게이트사건은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 역시 핵심 인물인 김재환씨의 출국을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으며 다시 또 특검제가 채택될지 모르는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생존권을 걸고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신광옥 전 법무차관의 구속집행을 그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신 전 차관은 최택곤씨로부터 3백만원씩 6차례 도합 1천8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의 관례로 볼 때 이 정도 금액은 소위 ‘떡값’으로 구속사유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구속을 강행한 것은 ‘우선 나부터 치고, 걸리면 다 친다’는 신호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이미 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이 공적자금 부실운영에 대한 특별수사팀을 발족시킨 상황이기에 ‘사정 확대’를 위한 충분한 근거도 확보해 둔 것 아니냐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司正정국 진행방향따라 정계 지각변동 올 수도**
따라서 향후 사정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신년 벽두 정치권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여권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에 의거 수위를 조절해 갈 것인지, 아니면 무차별 사정으로 확대되어 갈 것인지 현재로선 예측 불가다.
그 어느 경우든 정치권에 미칠 파장은 대단히 클 것이다.
정치권의 움직임과 함께 맞물려 가겠지만 상황전개에 따라서는 사정정국이 곧바로 정계개편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된다면 이번 사정정국은 대선정국의 새판짜기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된다. 과거 역대정권에서 보아 왔듯이 이번 사정정국 역시 정계개편용 사정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여론은 사정과 정치의 엄격한 구분을 요구한다. 비리와 불법은 성역 없이 단죄하고, 정치는 정치대로 순리대로 풀어 나갈 것을 바라는 것이다.
신년 벽두 자민련 김용채 부총재의 구속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사정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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