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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YS는 이만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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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와 YS는 이만큼 다르다

‘한보사태’와 ‘진승현게이트’가 두 사람을 말한다

진승현 게이트는 YS 정권 후기의 한보사건을 닮았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임기 후반, 이곳저곳으로 불길이 번지는 권력의 누수현상이 닮았다.

고위관료, 정치권의 실세들이 연루돼 정권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대통령 아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닮았다. 정치권 로비에선 야당도 대상에 포함된다는 소문 역시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닮았다는 건 피상적인 관찰, 차이가 더 많다. 첫 번째 현저한 차이는 사건을 처리하는 대통령의 자세다.

***첫번째 차이, 대통령과 수사팀의 자세**

김대중 대통령은 사건의 재수사가 착수되고 장남 김홍일 의원에 이어 2남 홍업씨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이른 단계에서 “마지노선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근 1년 침묵 후의 언급이다. 이것은 한보사건이 터지자 바로 수사지시를 내렸던 97년 김영삼 대통령의 일 처리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97년 한보사건은 한보의 부도에서 시작된다. 한보는 노태우 대통령의 야심적 국책사업으로 출발했다. 87년 대선 공약인 이른바 2백만호 주택사업을 하면서 철강산업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착수된 제3제철 프로젝트가 한보다.

한보는 YS 정권 하에서도 국가기간산업의 대우를 받았다. 은행들이 건설을 지원했다. 그러나 정권 후기, 청와대 이석채 수석은 계속되는 자금지원에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수석은 4천억에 이어 다시 3천억 추가지원요청이 오자 대통령에게 더 이상의 지원은 안 하는 것이 옳다고 건의,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거부했다.

정권 후기 더 이상 한보에 끌려가선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한보는 부도가 났고 부도가 나면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김기수 검찰총장에게 정치적 고려 없이 엄정한 수사를 하라고 지시, 사건은 대검 중수부로 배당됐다.

대검찰청 최병국 중수부장이 지휘한 수사팀의 수사는 급진전, 정태수 총회장이 구속되고 잇달아 네 명의 은행장, 김우석 전 건설(당시 내무장관), 황병태 주중대사 등 고위관료, 그리고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어 수십 명 관련의원이 드러나고 ‘여권의 창구로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홍인길 의원’, ‘야당 창구로 DJ의 제1측근 권노갑 의원’ 등이 구속되었다.

사건은 더 오래 끌었고 청문회도 열렸지만 수사가 갈팡질팡하진 않았다. 관련자도 더 늘거나 줄지 않았다. 자고나면 새로운 연루자가 계속 늘어만 가는 오늘의 게이트 수사와 구분된다.

***두번째 차이, 야당의 공세**

또 하나 97년과 오늘의 큰 차이는 야당의 공세다.

한보사건 때 야당의 공세는 요즘의 야당인 한나라당의 사건대처와는 비교가 안 된다. DJ캠프인 동교동은 독자적으로 조사팀을 가동, 연일 폭로전에 나섰고 재야운동권도 여기 가세했다.

과녁은 대통령 선거자금, 그리고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의혹 폭로였다. 김현철이 헬기 편으로 두 차례 당진의 한보 건설현장을 찾았다는 소문까지 퍼뜨려 청와대를 궁지로 몰아갔다. 김현철 자금 수수설도 백억 대에서 어느새 천억대로 치솟아 민심을 흔들었다.

대통령과 야당 총재 가족에 대한 공격은 함께 멈추기로 한 오늘의 ‘여․야 합의’ 같은 건 한보사건 때는 발상조차 가당치 않았던 일이다.

***세번째 차이, 대통령의 아들문제 처리**

세 번째 차이는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수사다.

한보사건에서 여론의 화살이 김현철에 집중되자 한보 수사팀은 김현철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수사팀은 야당이 폭로하는 김현철 의혹을 조사했지만 모두 소문일 뿐 한보와 관련된 흔적은 없었다.

예를 들어 헬기로 당진에 왔다는 귀빈도 김현철이 아니라 김모 변호사로 확인됐다. ‘김현철 무관’이라는 수사검사들의 보고에 최병국 중수부장은 정태수 총회장의 감방에 이례적으로 신문을 넣어주도록 했다.

그러기를 며칠, 그런 뒤 중수부장실로 정태수 총회장을 불렀다. 한보사건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배후를 밝혀내야 한다. 나라를 위해 협조하라며 직접 설득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배후는 없다고 했다. 협조가 잘 되고 있었고 남들 하는 대로 나도 그분들한테 인사하고 그런 것이지 특별한 배후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정 회장은 주장했다.

김현철 의혹에 대해서도 물었다. 시국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정치적 속죄양이라도 만들어야 할 형편이라는 말까지 하며.

정 총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필요하면 대통령한테 직접 전화도 할 수 있는데 왜 아이들하고 얘기합니까”라는 대답이 나왔다.

김현철 의혹은 검찰을 곤혹스럽게 했고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검찰은 김현철에 대해 조사했다. ‘표적수사’라고 할 조사였다. 이 조사를 통해 대호건설과의 특별한 친분, 대선 때 쓰다 남은 자금으로 보이는 60억 등 몇 가지 문제 삼을 수 있는 비리를 포착했다.

한보비리가 안 나오면 다른 비리로라도 걸어 김현철을 다스리는 것이 민심수습의 길이라는 게 당시 수사팀의 판단이었다.

검찰은 김현철을 소환 조사하기로 하고 대통령의 단안을 건의했다. 대통령은 이를 승인했다. 검찰에선 기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서부지청에다 조사실을 마련했다.

그런데 김현철은 나오지 않았다. “한보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나를 무고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나를 조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김현철의 항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 애가 내 말도 잘 안 들을라 칸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대안으로 나온 게 김현철 의혹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무고로 고소, 고소인 심문 형식으로 검찰이 소환하자는 것이었다. 청와대 김광일 비서실장의 아이디어다.

수사팀은 이 아이디어가 탐탁치 않았지만 비서실장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고소인 조사 형식으로 한보사건에 대한 것만 조사했다. 그러나 그건 예상했던 대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아니한 실패작이었다.

진승현 게이트 등 오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에선 드러난 사실을 검찰이 덮었다가 추후 들통 나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건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설까지 확인수사를 하던 한보 수사팀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검찰의 달라진 모습이다.

***YS, 아들 구속하려 수사팀도 교체**

한보사건에서도 수사팀이 도중에 교체된다. 그러나 이건 문책성 교체가 아니었다. 그 사연으로 다시 거슬러 가 보자.

김영삼 정부는 내각을 전면 개편했다. 이수성 내각이 물러나고 고건 내각이 들어선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도 김광일에서 김용태로 교체되었다.

대통령 선거관리도 맡게 될 내각을 전북 출신의 고건 총리로 교체한 것은 야당인 국민회의에게 곧 있을 대통령선거 관리의 중립을 담보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법무장관을 포함해 수사진용은 바꾸지 않았다. 당연히 수사 일선 팀의 교체 같은 건 고려조차 안 했다.

수사팀 교체는 고건 총리가 제안했다. 민심의 일신이 교체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법무장관, 민정수석, 안기부장 등이 모두 반대했다. 수사팀이 잘 하고 있고 교체한다 해서 현 팀이 못 밝힌 것을 밝혀낼 수 있는 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 대통령이 갑자기 교체 쪽으로 단안을 내렸다. 김현철의 구속에 대한 단안을 결심하면서 내린 수사팀 교체였던 것으로 짐작들을 했다.

대통령이 아들의 구속을 결심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결단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보사건에서 불행하게도 김현철은 공격의 중심표적이 돼 온갖 소문에 휩싸였다. 마치 부정과 권력남용의 표본처럼 만들어지고 말았다.

“김 소장(당시 김현철은 연구소를 운영, 소장으로 호칭했다)은 한보와 관련된 혐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민심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면 결국 다음 정권이 김현철 의혹을 조사하게 될 것이고 무엇으로든 비리를 걸어 구속하는 사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김 소장이 다음 정권에 의해 구속되는 것 보다 아버지가 구속하여 죄를 묻고 다음 대통령이 사면이라도 한다면 그게 나은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김광일씨가 각계 사람들을 만나 김현철 문제풀이에 대한 의견을 종합해 대통령에게 이렇게 건의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혐의가 있는가를 물었다. “검찰에서 김 소장을 구속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에 대비해 조사를 해둔 게 있다고 합니다”라는 답변이 나왔다.

그 날 대통령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나 시간을 끌지 않았다. 며칠 지나 검찰총장에게 김현철 구속을 직접 지시했다.

***DJ는 ‘수난’형, YS는 ‘투쟁’형**

정경유착은 구조적 문제인가. 그렇더라도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로 꼬리를 무는 의혹은 YS 정권이 겪었던 한보사건의 위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

두 사건간의 심각한 차이는 대통령의 자세 그리고 수사당국의 자세다. 현재 각종 게이트 수사는 파헤쳐 진상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수사 담당자가 덮는 쪽에 서고, 그러다 덮었던 게 들통 나 불신을 더 키우고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흔히 DJ, YS의 차이를 ‘수난’과 ‘투쟁’으로 구분한다. YS는 투쟁을 진두지휘한 반면 DJ는 수난에 내몰려 있었다. YS가 최루탄에 눈물 흘리고 닭장차에 실려 가던 때 DJ는 미국에 혹은 집에 유폐돼 있었다.

지지자의 성격 차이도 뚜렷하다.

YS 지지자들은 언제든 비판세력으로 바뀔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의 아성인 경남지역에서도 YS가 유일한 선택은 아니었다. 반면 DJ 지지자들에게 DJ는 유일한 희망, 그래서 이성 보다 감성 쪽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천년 한(恨)의 공유’다.

반독재투쟁을 하던 때 YS를 받쳐주는 힘은 민심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민심에 민감하다.

반면 DJ에게 민심은 언제나 그의 편에 있었다. 지지자들은 어떤 결정이든 그가 내린 결정이면 뜨겁게 성원했고 소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는 민심에 부대낀 일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옳았다. 그게 민심을 읽고 민심에 순응하는 자세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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