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형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그림은 수백 점이다. 그 중 나는 70점을 고르면서 지하형의 난초그림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난초의 형식과 화제의 내용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다.
첫째는 시인다운 서정성 내지 시정의 난초그림이다. ‘이른 아침에’ ‘댕기 같은 꽃’ ‘거친 꿈 소롯한 꽃’ ‘바람 끝에’ ‘섬처럼’ 같은 작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김지하의 시를 보면 서정시라 할지라도 상징성, 사회성, 역사성이 강하듯 그의 시정성 난초그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영명(靈明)한 고구려 난’ ‘가비야운 고조선 난(古朝鮮蘭)’ 같은 그림에서 관객들은 화가의 역사성을 남김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이고, ‘바람에 홀로서다’ ‘거친 듯 간결한 곳에 님의 자리가’ 같은 작품에서는 그의 ‘황토(黃土)’ 같은 서정시집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벗어나기 힘든 슬픔이 신세대를 위협할 때’ 같은 작품의 상징성은 누구든 그 뜻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사색의 묵란이라고 말할 명상성이다. 이번 출품작 중에는 지하형 스스로 묵란의 사상을 말한 작품이 있으니 직접 들어볼 수 있다.
“카오스 시대의 난초는 표연란(飄然蘭)이니 그 핵심은 바람과 난초를 동시에 붙잡는 것이겠다.”
이는 그의 난초그림의 형식이 지향하는 바를 말한 것이다. 이를 내용적으로 풀어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화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카오스에 침잠하되 동시에 카오스를 빠져 나오는 카오스모스가 미래문화의 열쇠. 이는 이괘(離卦) 의 미묘처(微妙處)인 것.”
지하형은 항시 오늘의 세계는 천지인(天地人) 즉 인간, 사회, 자연의 대혼돈이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 내리면서 삼계(三界)를 아우르면서 혼돈을 타고 넘는 문화의 개벽만이 치유의 길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것이 곧 카오스에 침잠하되 카오스를 빠져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그 동안 김지하가 추구해온 예술과 사상의 핵인 것이다.
김지하 묵란의 세번째 유형은 난초그림 그 자체의 미학을 구현한 것이다. 지하형은 자신의 묵란은 '표연란(飄然蘭)'이라고 선언하였다. 표연히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난, 그것은 바람과 난초를 동시에 장악하는 난초그림이라는 것이다. 지하형은 자신의 '표연란'에 대해 이렇게 독백조로 말한 작품이 있다.
“소남(所南, 정사초, 원나라 때 화가)과 판교(板橋, 정섭, 청나라 때 화가) 이후에, 석파(石坡, 흥선대원군 이하응)와 완당(阮堂, 추사 김정희)과 원정(園丁, 운미 민영익) 이후에 동아(東亞)에 묵란의 명인이 없다고 나의 스승 무위당(无爲堂) 선생이 말씀하셨는데 그 까닭을 몰랐더니 오늘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이 장엽(長葉)의 표연(飄然)에 있고, 종국엔 흉중의 포한(抱恨)에 있더라. 한 없이 표연장엽 없으니.
일산에서 지하.“
여기서 지하형은 자신의 난초그림이 갖는 미학을 구체적으로 모두 말한 셈이다. 일찍이 추사 김정희는 "산수화에는 대가가 많지만 난초그림에는 대가가 드물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가슴속(胸中)에 난초를 담아낼 수 있는 정신적 무엇을 갖춘 이가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사초, 정판교, 진백정 같은 이의 난초그림이 뛰어난 것은 그들 인품이 고고하고 학식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이른바 책 5천권을 읽은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의 획득, 그리고 장인적(匠人的) 수련과 연찬 속에 얻어진 팔뚝 아래 금강저(金剛杵)가 아니면 난을 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지하형은 이제 "문기(文氣) 아닌 소산지기(疎散之氣)"로 바람과 난초를 모두 장악하는 표연란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흉중의 한(恨)을 그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지하형은 장엽난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 같다. 춤을 추는 듯한, 흐느적거리는 듯한, 바람결에 휘날리는 듯한 긴 난초잎을 통하여 존재와 상황을 압축적으로 장악하는 방법인 것이다.
지하형은 바로 여기서 오늘의 난초그림, 아니 자신의 난초그림이 지향할 형식의 틀을 발견했고, 그가 문학에서 그토록 추구했던 역사적 체험으로서 한(恨), 삶의 농축된 소망의 원형질로서 한(恨)을 담아낼 형식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김지하는 그 한(恨)을 발산하는 것으로 표연란을 그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공경(敬)하는 마음, 모시는(侍)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그의 난초그림을 보면 ‘지하 그리다’ 또는 ‘지하사(芝河寫)’가 아니라 ‘지하 모심’ ‘지하시(芝河侍)’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는 단호히 말하고 있다. "생존은 모심 한 글자에 있다(生存侍一字也)." 그리고 그 뜻을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난이다. 그러나 이 난에는 생존의 깊은 기쁨이 반짝이고 있다. 무엇인가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모심은 생명의 비밀이다.”
나는 지하형이 그런 모시는 마음으로 그리는 표연란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선보이게 됨을 누구 못지않게 기쁘게 생각한다. 지금도 지하형 하고 부를 때면 20대 청년 시절에 만났던 그 청춘의 맥박이 느껴지는데 벌써 형님은 환갑을 넘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캄캄하기만 하던 원주 시절, 당신의 작은 서재의 벽이 온통 먹으로 가득 칠해져 있던 그때부터 묵란의 연륜이 20년을 넘겼고 그 연륜 속에 가슴으로는 표연란의 미학을 품어안고 팔뚝 아래에는 금강저 같은 굳셈을 더해가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그리고 지난 세월 나 자신의 마음의 빚으로 삼고 있던 ‘김지하의 묵란에 대한 비평적 증언’이라는 글을 쓸 수 있게 된 그 홀가분함이 더없이 기쁘기만 하다. 그런 기쁨은 참으로 '긴긴 기다림'에서 얻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들뜬 마음으로 그의 전시회를 맞지는 않을 것이다. 지하형은 나에게,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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