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법무부에 한 발 앞서 호주제 폐지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안을 10일 내놓았다. 대법원의 안은 기존의 '호주' 중심의 가족 편제 기록에서 '개인' 중심으로 기록되는 '1인1적'제를 바탕으로 배우자-부모-자녀를 함께 표기하는 '가족부' 제도를 혼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대법원 '1인1적'제 중심의 개인신분등록제도 마련**
대법원의 안을 살펴보면, 우선 국민은 모두 자신이 중심이 되는 개개인의 신분등록부를 갖게 된다. 이 신분등록부에는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부모, 자녀의 신분정보를 포함하되, 신분변동사항은 본인 것만 기재해 개인정보유출을 막고 기본적인 가족관계만 알 수 있게 했다. 신분등록부는 본인 및 국가기관만 발급받을 수 있다. 기존의 호적은 제3자도 발급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재산상속 등의 분쟁이 있을 경우 가족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가족증명이나 혼인.입양증명 등은 개인신분등록이 전산화돼 있어 응용프로그램을 통해 목적별로 필요한 부분만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출생부, 사망부, 혼인부 등 목적별 신분등록부와 가족수첩 내지 가족대장을 편제해 관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호적정보가 모두 전산화 돼 있어 유럽과 같이 별도의 목절별 신분 등록부를 만들 필요 없이, 호적정보의 정리와 응용시스템 개발만으로도 목적별 신분 등록부를 만든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은 이번에 내놓은 안에 대해 "헌법이념과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안의 입법취지에 가장 부합한다"며 "가족부의 형태이므로 국민정서에도 반하지 않고 신분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시.유지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기존의 호적 사무를 담당하던 국가기관으로 이달 말경 토론회를 거쳐 대법원안을 확정한 뒤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1인1적' 중심의 새 제도로 자료를 이관하는데 드는 기간을 2년 6개월로 보고 있어 이르면 2007년 중순 이후 새로운 신분등록제가 본격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신분등록제도 개선위원회' 발족**
한편 법무부도 이날 정부와 학계, 법조계가 참여하는 '신분등록제도 개선위원회'를 열고 본격적인 새 신분제도 개선안 마련 작업에 돌입했다. 국회에서는 호주제 폐지 법안 처리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대법원과 법무부 양쪽에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한 바 있는데, 대법원이 한 발 빠른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호주제 이후의 신분등록제도 개선안에 대한 여론 선점을 위해 대법원이 먼저 독자적으로 안을 마련해 발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법무부와 대법원은 현재 대법원이 관장하고 있는 호적 사무 이관을 두고 갈등을 빚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신분등록에 관한 사무는 국가의 업무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었고, 대법원은 가족 관계에 관한 것은 법률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이 관리해야 하며, 특히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라도 신분에 관한 사무는 법원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무부는 현재 대법원과 같은 1인1적의 개인별 신분등록제와 가족부제를 두고 검토하고 있다. 가족부제는 가족별로 하나의 신분등록부를 편제하고 그 등록부 내에 개인의 신분변동사항을 기재하는 등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단위로 기재하는 방식으로 일본이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제가 폐지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고 부부 일방을 기준인으로 정하는 방식이 기준인 선정을 두고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 되고 있어, 채택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법무부가 기존의 호적제도와 좀 더 유사한 '가족부제'안을 채택할 경우 논란이 일 여지는 남아있다.
국회는 일달 말까지 대법원과 법무부의 안을 제출 받아 다음달 중순경 공청회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한 뒤 임시국회에서 호주제 폐지와 새로운 신분등록법안을 입법할 계획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