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의장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3일 오전 지도부 전원 사퇴를 결정했다. 이 의장과 함께 거취를 주목받았던 김덕룡 원내대표는 일단 입장표명을 미뤘다.
***이부영 "대화와 타협위해 당내 과격노선과 투쟁해야" **
이 의장은 이날 오전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이미 사표를 낸 천정배 원내대표와 함께 몇 개월 동안 당을 이끌어온 의장으로 내 역량이 매우 부족해 이런 결과밖에 내지 못하고 국민과 당원 앞에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 의장은 사퇴의 변을 밝히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국정을 주도하기 위해 우리당은 야당과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여야 과격 노선과 과감한 투쟁을 벌이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고 당내 강경파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의장은 "우리당 당원과 의원들이 이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올 한 해를 민생 경제 회복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화와 타협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혁규, 이미경, 한명숙 상임중앙위원도 이 의장과 동반 사퇴를 발표했다.
이미경 상임중앙위원은 "지도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해 당을 단합해 나가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김혁규 위원도 "1년 동안 국민의 여론에 의한, 국민의 정서에 부응하는 정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한다"며 사퇴의 변을 갈음했다.
한명숙 위원은 "지도부 사퇴가 당의 공백을 가져와 국민들 보기에 불안하고 당 안정을 해칠 수도 있음에도 우리가 사퇴를 결단한 것은 우리당이 체계적, 조직적으로 힘을 모아나가는 계기 되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퇴한 천정배 대표를 대신해 원내대표직을 대행케 된 홍재형 정책위의장은 "당원으로서 지도부 사퇴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반대를 했지만 당신들이 강력하게 피력해 그렇게 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당은 또 기획자문회의도 조만간 해체키로 했다.
임채정 기획자문위원장은 "기획자문위는 성격상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중심으로 회의를 해왔는데, 상임중앙위가 해체된 순간 기획자문위원회의도 기능을 잃었다. 해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위원장으로서 그런 방향으로 의견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 총사퇴를 발표한 이날 상임중앙위 회의에는 이미 사표를 낸 천정배 전원내대표와 이날 사퇴를 선언한 지도부를 포함, 홍재형 정책위의장, 임채정 기획자문위위원장, 문희상 기획자문위원 등이 참석했으며 특히 참석 자격이 없는 염동연 의원이 회의 중반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우리당 강경파 목소리 높아질 듯, '노심'이 최대변수**
우리당은 지도부 일괄 사퇴에 다라 비상대책위 구성 등 후속 대책을 5일로 예정된 의원총회와 중앙위원회의 연석회의에서 결정키로 했다.
회의후 임종석 대변인은 "5일 10시 의원총회와 중앙위원 연석회의를 소집했다"며 "비상대책위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은 중앙위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그러나 "중앙위원회의에서 사퇴한 지도부를 재신임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비대위는 우리당을 구성하고 있는 분들의 분포를 잘 감안해서 두루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될 것"이라고 말해, 당내 계파간 연합체로서의 성격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비대위 구성과 이달말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을 전후로 당내 당권경쟁이 조기에 가시화되는 것은 물론 중도온건파와 재야 강경파 의원들간의 노선투쟁도 가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이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의 대여 협상전술에 불만을 표해 온 강경파의 발언권이 크게 높아질 공산이 크다는게 중론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당의 강경기조 선회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전달하느냐가 원내대표 경선은 물론 향후 당내 권력지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당정 분리' 입장을 밝혀 당내에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내면서도, 올해를 '경제회복'에 치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우회적으로 당쟁 최소화 희망을 밝혀왔었다. 또한 노대통령은 연말 송년모임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올해를 '국민통합'의 해로 설정하며 당쟁을 가급적 피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혔었다.
***김덕룡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매는 지혜가 필요"**
한편 사의표명 여부가 주목됐던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직접적 언급을 피한 채,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고쳐 팽팽하게 맨다)"이라는 화두를 박근혜 대표에게 던졌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당사에서 열린 상임운영위회의에서 "교수들이 지난 해를 '당동벌이'라는 명예롭지 못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말로 규정했다"라면서 "금년은 해현경장(解弦更張)의 해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사실 개혁은 필요한데,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매는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강조, 거취 문제와 관련해 구구한 해석을 낳았다.
대체적으론 "다시 줄을 동여매고 시작한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원내대표직을 유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새 줄로 바꾼다'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원내사령탑을 바꿔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민생을 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만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정치력과 지도력을 발휘해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한해가 돼야 한다"라면서 "한나라당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우리도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그동안 4대 법 처리를 놓고 이견을 보여온 박근혜 대표에게 사태 수습의 공을 넘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대표는 4일 여야 의원들과 함께 11박 12일 일정으로 아프리카 의회 시찰에 나설 예정이어서 원내대표직 사퇴의사는 1월 중순 이후에나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대여 협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김 대표가 원내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크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근혜 대표는 "다들 고생이 많았다. 원내대표도 힘들었을 것"이라며 "한마음이 돼, 어려움을 이겨냈다. 새롭게 거듭나는 정당의 모습을 보이자"라고 김 대표 거취와 관련한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박 대표는 "하나에서 열까지 경제와 민생에 당력을 집중해, 국민들로 하여금 믿음직한 한나라당이 되도록 자리매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여당에서 한다고 휩쓸려 할 것은 아니다"**
이어 열린 비공개 회의 시간엔 당직 개편과 관련한 말들이 주를 이뤘다.
박 대표는 "전체 정기인사를 통해 당직을 개편할 것"이라며 "한쪽(열린우리당)에서 한다고 같이 휩쓸려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해, 서둘러 당직 개편을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대표는 "그 동안 원내대표는 물론이고 사무총장 등 당직자들이 너무 고생을 했다"라면서 "사무총장과 가벼운 얘기를 나눈 것이 확대보도된 것 같다. 당직은 정기개편 때 하는 것이니 더 이상 이런 얘기는 안나왔으면 한다"라고 김 총장 등의 사의를 반려했다. 박 대표가 이 같은 의사를 밝힘으로써 당직 개편은 2월초 경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사의를 표명했던 김형오 사무총장도 "그 동안에 상당한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 말씀 드렸을 뿐"이라며 "모든 것은 대표의 권한"이라고 화답했다.
이규택 최고위원도 "2월이 더 큰 문제다. 2월까지 똘똘 뭉쳐 나가자"라고, 심재철 기획위원장도 "대표가 큰 틀의 흐름을 정할 때까지 하나가 되자"라고 사의를 표명한 의원들을 만류했다.
사무총장 외에도 사의를 표명했던 진영 비서실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했지만, 임태희 대변인은 모습을 보이지 않아 임 대변인의 뜻이 굳혀진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한편, 당직과 관련한 얘기가 오간 비공개 회의시간에 김덕룡 원내대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해, 이르면 조만간 전격적인 사의 표명이 나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김 대표의 사퇴 시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보수 강경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여 우리당과 함께 신년 정국은 여야간 '강(强)대강(强)'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연초부터 정국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이럴 경우 정부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국민통합-경제주력-남북대화' 국정운영 방침에도 커다란 차질이 불가피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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